세상사 가고 오듯 한국사람이 떠나니 또 다른 한국사람이 왔다. 어느날 가발을 사러 온 손님(간호사)이 시립병원에 Dr.“도” 라는 한국 의사가 있다고 전화번호를 가르쳐 줘 만나게 됐다. Dr.도(도상탁)는 가족은 한국에 있고 한국에서는 남대문병원 원장 이었는데 미국 의학계에서 더 많은 견문을 넓히고 또 자녀들 교육문제를 깊이 고심한 끝에 미국이민을 결정한 후 이곳 시립병원 인턴으로 오게된 열성적인 학구파다. 일제시 일본제국대학 의과를 졸업한 분이라 경험이 풍부한 인생 선배다.
한국사람이 없는 소도시에서 만났기 때문에 서로 외로움을 달래며 가족처럼 지냈다. 그분은 혼자 생활했기 때문에 자주 우리집에서 식사를 했다. 그러던 어느날 USL(남부 루이지애나 주립대학) 유학생 오한식군이 가발상회를 찾아왔다. 오한식군은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USL컴퓨터 학과가 유명해 유학을 온 학생이다. 그런데 기숙사와 아파트를 구하지 못한 딱한 처지였다.
Dr.도는 훗날 이민 올 가족을 위해 방 3개짜리 아파트를 임대해 살고 있었다. 나는 Dr.도와 Mr.오를 집으로 초대해 저녁을 함께 나누며 고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면서 Dr.도에게 Mr.오에 대한 딱하고 절박한 처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거처를 의논한 결과 감사 하게도 Dr.도가 자기의 아파트에서 생활할 수 있게 흔쾌히 허락해 Mr.오의 거처 문제가 해결됐다.
머나먼 미국땅에서 우연히 만난 동포들의 기쁨이 넘치는 뜻 깊은 저녁이었다. 그 후 두 사람은 자주 우리집에서 함께 저녁을 나누고 주말이면 주위에 있는 명승고적들을 찾아 다니면서 미국생활을 함께 펼쳤다.
일년 후 Dr.도의 가족이 이민을 오게 됐을 때 Mr.오는 나에게 유학을 온 동기는 공부 때문이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목적은 미국에 정착하기 위한 것이라고 실토 하면서 어떻게 좋은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학과 컴퓨터사이언스는 사학과를 전공했던 자신과는 너무나 차이가 크고 적성에 맞지도 않아 학과를 변경하거나 전학을 해야겠다고 했다.
나는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시민권자나 영주권자와 결혼하는 것이다. 그러니 일단 한국사람이 많은 LA에 있는 대학으로 전학을 하는 것이 어떠냐 그 곳에는 한국 여성들도 많으니 배필을 찾기가 쉬울 것이라고 했다. Mr.오는 내 의견에 따라 LA에 있는 대학으로 전학 수속을 하고 학기말이 끝나면 방학을 이용해 LA로 떠날 계획을 세웠다. 정든 오한식군이 떠나는 것이 싫고 붙잡고 싶었지만 막을 수가 없는 일이다. 떠나기 전 혼자몸일때 미국 일주 여행을 하라고 권했다. 그 당시 그레이하운드 버스회사에서는 미국 일주 특별 세일을 실시 했는데 50달러짜리 티켓을 사면 미국 어느 곳이나 다닐 수가 있다.
Mr.오는 운좋게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LA를 향해 미주 일주 여행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