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경찰의 무릎에 목이 짓눌려 흑인이 사망하는 사건으로 미 전역에서 시위가 격화하며 혼돈이 심화하고 있으나 상황 안정을 위한 리더십은 실종 상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태 수습을 주도해야 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특유의 분열 조장 행보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위험도 벗지 못한 미국을 더욱 아수라장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CNN방송은 1일 오전 홈페이지 상단을 ‘위기에 빠진 미국’이라는 제목으로 채웠다. 백인 경찰의 비인간적 대응으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목숨을 잃는 사건으로 미 전역에서 격렬한 시위가 계속되고 각 지역의 부분적 경제정상화 계획과 맞물린 코로나19 확산 여부로 미국에 날마다 긴장감이 고조되는 상황을 짧은 제목에 압축한 것이다.

세계 각지에서 연대 시위가 열리는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산 책임을 물어 중국과의 신냉전도 마다치 않겠다는 태세를 보이면서 미국의 위상을 둘러싼 위기도 감지되는 실정이라고 CNN은 짚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대응으로 신음하는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발을 빼버린 사건 역시 미국의 리더십이라는 개념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고 CNN은 덧붙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재선에 득이 될 정치적 계산에 몰두하면서 특유의 분열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플로이드 사건의 바탕에 뿌리 깊은 인종차별이 놓여있는데도 본질적 문제에 접근하기보다는 시위대를 폭력배로 칭하고 급진적 배후세력의 존재를 연일 거론하면서 가뜩이나 격화한 민심에 기름을 끼얹는 형국이다.

전날엔 특히 ‘안티파’로 불리는 극좌파가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며 이들을 테러조직으로 지정하겠다고 공언했는데 대통령에게 그럴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을 인용한 미 언론의 평가다.

보통의 대통령 같으면 집무실에서의 대국민 연설을 검토하면서 국민에게 침착을 당부하고 사태 수습을 도모해 나가는 것이 수순인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급진적 배후세력을 집중 거론하고 민주당을 뒤섞어 비난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이득을 얻는 데 몰두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부실 대응이나 흑인에 대한 구조적 차별이라는 문제의 핵심을 과격시위의 문제로 덮어버리고 전선을 분명히 함으로써 지지층을 한층 결집해내는 효과를 누리는 셈이다.

CNN은 “대통령은 위기 대처로 평가되는데 개인적으로 정치적 이득을 추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습관적 방식은 쏟아지는 위기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백악관 역시 대응책을 두고 갈팡질팡을 면치 못하고 있다. 마크 메도스 비서실장은 대국민 공식 연설을 하라고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고 있으나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은 11월 대선을 앞두고 강성 지지층이 떨어져 나갈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고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가 최근 가능한 한 신속한 미국의 경제 정상화에 집중됐는데 공식 연설로 인해 초점이 흩어질 수 있다는 점도 쿠슈너 선임보좌관을 비롯한 참모들이 우려하는 대목이라고 한다.

CNN은 “일부 참모는 침착을 당부하는 공식 연설을 대통령에 권고하고 있으나 다른 참모들은 폭동과 약탈을 더 강력히 규탄하거나 중도층을 잃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본능 및 후자를 따르기로 한 것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코로나19 대응을 놓고 집무실 대국민 연설을 했으나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