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그토록 아끼던 세 명의 수제자들(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십자가 죽으심을 앞두고, ‘천국의 성도의 영화(Glorification as Transfiguration)’를 “미리(Already)” 보여주고 싶으셨으며, ‘율법과 선지자의 대강령의 완성’ 이심을 보여주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먼저 예수님의 변형된 모습(마17: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을 통해서 천국의 영화가 어떻게 변형되어지는지를 “먼저(Already)” 보여주셨으며, “또한(Already)”, 먼저 천국에 가 있는 모세와 엘리야 역시 예수님과 동일한 모습으로 변형됨을 보여주셨습니다.
(눅9:30~31,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변모산, 헬몬산(The Mountain of Transfiguration) 산정에서 예수님이 미리 보여주신 성도의 “천국의 영화의 변모(Already But Not Yet)”를 모세와 엘리야를 대동한 3인의 스승의 모습으로 보여주신 목적은 三人行必有我師의 성취를 보여주시고자 위함입니다. 즉 모세는 율법의 대표, 엘리야는 구약 39권 가운데 나타난 선지자들의 대표로서 회동함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가장 위대한 스승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율법>과 <선지자들의 예언>의 <완성자(Fulfillment)>이심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시고 마태복음 16장에서 그리고 마태복음 17장에서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베드로의 거듭 되는 실수)’ 앞에서 그리고, 그 헐몬산 꼭대기의 변형의 기적 앞에 서 있던 산 위의 세 제자와 산 아래 제자들과 함께 새 힘을 얻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헐몬산의 변형 앞에서 헐몬산 등정의 목적 가운데 십자가를 앞두고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마17:5,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을 듣고 새 힘을 얻으시려는 것이 변모산 등정의 가장 뚜렷한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단 한 번도 목적이 없는 맹목적인 삶을 사신 적이 없으십니다. 예수님과 사람의 뚜렷한 차이는 “목적이 이끄는 삶(The Purpose-Driven Life)”과 “맹목적인 삶(Purposeless Life)”의 차이입니다.
지금,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의연하게 보여주신 기도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 그 산(The Mountain of Transfiguration)으로 다시 올라가야 합니다. 두려움과 겁에 질려서 어찌할 줄 몰라 하는 변모산 꼭대기의 얼치기 제자들과 COVID-19 Pandemic 앞에서 두려움과 겁에 질려 우왕좌왕하는 21세기의 얼치기 제자들이여, 예수님의 어루만져주심과 조용한 음성(마17:7,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이 기다리고 있는 그 산으로 다시 올라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