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로 하여 전세계가 불안과 공포심리 확대로 긴장하고 있는 시점이라서 키보드 보내기를 누르기까지 망설임과 조심스러움이 겹겹이 몰려왔음을 조심스레 밝히며 양지를 구하려 한다. 마치 집안에 우환이 있는데 눈치없는 생일날이 꾸역꾸역 다가온 느낌이다.
오늘이 ‘행복한 아침’을 500번째로 한국일보에 올리는 날이라서. 2010년 3월 20일 ‘도전에서 이룸까지’란 제호로 김연아 선수 이야기를 시작으로 ‘행복한 아침’이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의 성상을 건너왔다. 어눌하고 미욱한 글의 시작이었지만 부족한 글을 거두어주신 한국일보사와 팔삭동이같은 글을 아껴주신 독자분들의 사랑으로 하여 500회라는 게재가 가능했던 것이리라. 애틀랜타와 조지아에 국한되지 않으며 미 전역과 한국 독자분들의 격려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일보 전자신문 파급효과의 영향력을 효시로 삼고싶다.
또한 코로나 위기를 대처하기 위해 미 전역과 조지아 지역의 코로나19 현황을 일목요연하게 유효적절한 상황을 실시간 업데이트로 알려주고 있어 한인사회의 어려움을 지혜롭게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했다. 하물며 금세기에 들어서서야 세상이 달리는 속도가 심상치 않음이라서 작금의 현실을 신선한 필체로 감탄을 자아낼만큼의 묘사를 해내는 표출력이나 표현을 이끌어내기에는 필력의 기량이 역불급이라 새삼 인과자책을 하게 된다. 언어로 드러내는 능력의 한계를 일찌감치 자송하고 있었기에 누추한 글쓰기로 추락하기 전에 정들었던 행복한 아침과의 고별을 염두에 두며 망설임의 궁태를 부린 적도 있었다. 마트나 음식점, 한인들이 모이는 공원에서 ‘행복한 아침’란에 곁들여진 손톱만한 사진으로 어떻게 알아 보셨는지 인사를 건네시던 독자님들 앞에선 낯없고 무색하기 이를데 없었지만 듣고 보고 느낀 것들을 글로 풀어대니까 스트레스는 없겠다던 역성 또한 여직 귓가에 맴돌고 있다. 뒤웅박 속에 갇힌 것 같은 이방인이 되어, 지지고 볶고 살아가는 것인데 글을 쓴다고 해서 신선놀음으로 세상과 별리된 삶을 살 수 만은 없는 터이라서 평범한 여인네로 대부분 혼자 삭이고 일상에 떠밀리느라 잊어버리기도 하면서 세월을 엮어내지만 시냇가 댓돌처럼 동그마니 물 위로 떠오르는 부분들이 글로 남겨지기도 한다. 갖고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 하노라곤 하지만 자랑으로 받아 들이는 분들 앞에서는 입에 자갈을 문다. 감정이 직조되는 인간인지라 감성의 손실이 두려워 묵상으로 묵언의 사유로 견뎌내곤 한다. 이러한 일상들이 어쩌면 삶의 진면목이요 한 번쯤은 겪어내야하는 사연들의 즐비라 여기면서.
유년의 추억을 건질 수 있었다며 손수 쓰신 손편지를 전해주신 분이며, 간간히 정겨운 팬레터를 건네주시는 분, 수필 500편을 스크랩을 해오신 분, 미처 신문을 챙기지 못해 속상해 하시던 독자분들의 엽엽한 모습들이 지금껏 행복한 아침을 이어올 수 있었던 동력이 되어주었고 에너지원이 되어 주었다. 가까이에서 멀리서 훈훈한 위로와 따끔한 채찍까지 눈물어린 보살핌으로 행복한 아침을 지켜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만선한 고깃배 처럼 푸근한 다사로움으로 잠시 기항지에 들어선 느낌이다. 아직도 가야할 정점이, 선착할 나루터가 아득해 보이지만 기억 속에 계신 독자님 한 분 한 분 얼굴을 떠올리며 멈추지 않고 느린 걸음이지만 한결같이 달려가리라 마음을 붙든다. 더 나은 글쓰기를 향해 더 많이 사유하고 더 훌륭하고 뛰어난 글들을 가까이하며 더 낮은 자리를 눈여겨 보면서.
행복한 아침 애독자 몇몇 분들께서 그 간 써온 글의 출판을 권면해오신 분들이 계신다. 최근에는 타주에서 이주해오신 분들 중에서도 지면에 게재된 글을 읽으신다면서 출판된 책은 없는지 물어오시는 분도 계셨다. 출판을 글을 쓰는 이들의 통상적인 징검다리 쯤으로 화자되는 풍조가 만연해 있는 시대상이 왠지 씁쓸하다. 책으로 남길 만큼의 필력도 되지 않거니와 글을 쓴다는 기쁨 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수 있음이라서 두고두고 자손에게 전해져야할 시대적 소명이 있는 책이라면 모르거니와 시류에 편승하는 개운치 않은 일에는 물러서고 싶음이다. 남은 삶을 평안의 항구에 닻을 내리고 지금처럼만 가꾸어 갔으면 싶은데. 어떤 책을 출간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어떤 삶을 살아낸 사람인가가 선행 되어야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10년 동안 매주 마감일을 지켜낸 것이 무엇보다 뿌듯하다. ‘500회’라는 시간의 부피 앞에 ‘수고 많았다’라는 울림이 공명되고 다시금 되울려 번져가듯 감개가 마음을 휘저어 놓는다. 침전된 눈물이 분수처럼 피어난다.
‘감사했습니다’ 라는 말보다 더 따뜻하고 강도 높은 말로 일일이 손을 붙잡으며 고개 숙여 감사함의 의향을 나누고 싶지만 미흡하더래도 지면을 통해 허리 굽혀 감사의 심중을 감동어린 마음에 얹어서 전해 올립니다.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행복한 아침’을 실어주신 한국일보로 하여 행복했습니다. 한국일보사의 번영과 발전이 무궁하기를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