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선냄비 종소리와 흥겨운 캐럴이 어우러지는 세밑 무렵이라 발걸음을 종종거리게 만든다. 송구영신에 기웃대는 마음들이 설레임으로 물드는 햇살이 따사로운 어느 오후, 모처럼 지인들과 차를 마시며 느긋한 한담을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여담 틈새를 비집고 ‘지금을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넌즈시 질문을 던져보았다. 웬 생뚱맞은 화제를 꺼내느냐며 황당하다는 표정들을 짓는다. 지금까지 한 번도 살아야하는 이유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살았노라고 얼굴을 붉히시는 분이 계신가하면 그런 골치 아픈 걸 왜 물어부느냐며 숨을 쉬니까, 살아있으니까 살지라며 퉁명스런 대답을 던지기도 한다. 질문의 진의에는 관심이 없으신 표정이다. 살아온 경험들이며 자신이 가진 것들을 나누기 위해서라며 살아야 하는 이유를 성의있게 풀어내시는 분도 계셨고, 주어진 소명이 있기에 살아간다는 분도 계셨다. 대화가 오가는 동안 신앙의 농도가 유연하게 부각된 셈이 된다. 뜻밖의 또다른 옆모습 들이었다. 한 해 동안 주어진 삶을 얼마나 충실하게 살아냈는지. 어떻게 살아야 반듯하고 바람직한 삶일까에 집중하며 고민은 해보았는지, 삶을 일컫고 논해온 수많은 메시지나 글이 우리네 삶에 얼마나 반향을 일으켰으며 일상에 적용하며 살아왔는지. 한해가 기울 무렵이라 사유의 오솔길을 함께 찾아보며 감응을 나누고 싶어서 였는데. 

 

삶의 길목에서 고통과 불안으로 좌절하며 살아가야 했던 시간들을 보내면서도 살아야 할 이유에 끊이없이 매달이며 살아온 족적도 있을 것이다. 지금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행복이나 미래를 추구하기 보다 아름다운 삶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살아가는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온 족적도 있을 것이다. 훈훈한 보람의 흔적을 남겨온 삶이라면 지금을 살아가는 모습도 맑고 바람직할 것이요, 미래 또한 균형과 조화를 이룬 훌륭한 삶일 수 있을 것이다. 세상과 역사가 강요해온 생존원리에 더는 메이지 말며 모든 것을 내려놓음의 댓돌위에 나란히 놓아두고 평안이 깃드는 나날들을 성의있는 독실함으로 체워간다면 밝고 희망찬 날들이 채곡채곡 쌓여감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시작이나 마무리는 완벽치 못한 미완성일지라도 꿈을 향해 가는 것은 선택이라서 각자의 부피를 안고 걸어가게 된다. 

 

돌아보면 노력을 넘어서는 행운은 없었고 도전 없는 경험 또한 존재할 수 없었다. 모든 꿈과 열정을 동원해 하루 하루를 달려가는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고 싶을만큼 힘든 시기가 있기 마련이라서 보잘것 없는 인생이라 자기비하에 빠져들게도 되지만 비교 의식에 사로잡혀 주변 눈치에 긍긍하지도 말 것이다. 겹질러진 고통을 혼자 만의 것인듯 좌절하지 말것이며, 의기소침해서도 아니될 것이요, 위축될 필요도 없음이다. 지금껏 살아온 것 만으로도 충분히 괜찮다고 자화자찬해도 무방할 것이다. 생의 소용돌이 가운데서도 삶이 빚어내는 신음과 환희에도 적당한 음조를 낼줄 알아야 용기를 잃지 않을 것이다. 무수히 많은 여건들 속에서 오로지 콘트롤할 수 있는건 자신뿐이니까. 종내 궁극적으로 지금을 살아내야 할 이유는 닥칠 곤경과 어려움을 위해서가 아닐까 한다. 삶에 지치거나 외로우신 분들, 살아가야할 향방을 상실했거나 잠깐 곁길로 접어든 어려운 분들의 회복을 위해 위로와 격려로 고무적인 마음을 나누는 따뜻한 송구영신 절기가 되어지기를 소망으로 올려드린다. 세모 앞이라 더욱 각별한 마음이 된다.

 

줄 어드는 기억력은 살아온 날들을 탈색해 가고 있지만 이 또한 담담하게 받아 들이려 한다. 채곡채곡 꽂혀있는 사진첩을 꺼내보며 딸네들의 유년이 서려있는 그리움들을 돌아보기도 하고 집안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딸내 가족사진들을 찬찬히 둘러보기도 한다. 세월을 넘어 훌쩍 커버린 손주들의 숨결과 호흡이 곁에서 느껴지는 듯도 하다. 손주라는 푸른 나무들의 훈훈한 숨결을 호흡하며 노년의 보람으로 지켜내고 있음이 스스로 대견해 보인다. 여유 없고 융통성 없는 세상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 열 여섯 가족이 모여있는 대형 가족사진 속에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이 깃든 우리들만의 이야기가 자연스러움의 귀결처럼 아우러져 있다. 비할데 없는 절후함으로 더불어온 동행의 명화이다. 가족사진 액자 속엔 지금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알알이 영글어 있다. 가족사진 속엔 빈틈없이 가꾸어낸 정원도 보이지 않으며 꿈처럼 그려왔던 설계도 보이진 않지만 가족들이 분출해낸 소망과 행복, 평안과 기쁨으로 충만하다. 그것 만으로도 넘치는 행운을 누림이요 다시 없는 삶의 진한 향내가 고여있음이다. 사진을 대하고 있노라면 문득문득 떠오르는 영상이 시(詩)가 되고 풍경이 담긴 이야기로 구상되기도 하면서 어느새 편안하고 넉넉한 누림을 선물처럼 얻게도 된다. 가족이 모여있는 액자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내가 살아온 이유요,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지금을 살아야 하는 이유 또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두기 위해서라고 마침표를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