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 권명오
수필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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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한국 38년(71)
이민을 선택한 사연과 배우에 대한 고민
꿈에도생각해 보지 않은 이민을 선택하게 된 동기는 은사님이신 윤복현 선생님 때문이다. 왠지 모르지만 선생님의 가르침과 뜻을 따를 수 밖에 없는 나는 선생님께서 추천 하신대로 배우가 됐고 또 이민병이란 바이러스가 전염됐다.
그리고 이민을 선택 해야하는 이유를 정리했다. 첫째, 크고 넓고 지하자원이 풍부한 미지의 대국으로 이주 해 꿈과 희망을 활짝 펼쳐 보자는 야망이었고 둘째, 자녀들의 교육과 미래 때문이고 셋째, 군사정권과 유신체제 및 만연된 부정부패다. 넷째, 빈곤과 경제적 불안정 때문에 탤런트와 배우의 미래가 암담했기 때문이다. 다섯째, 유전무좌와 무전유죄인 현실과 권력과 돈이 제일인 사회상 때문이다. 여섯째, 비겁하고 죄송하고 한심한 이유지만 솔직히 말하면 전쟁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그 당시 북한 김신조 일당이 대통령을 저격하기 위해 청와대 앞까지 침입하고 판문점에서는 도끼 만행이 자행되고 또 북한 잠수함 침투와 동해안 무장공비 침투 등 예측 할 수 없는 위기상황 이였다. 나는 6.25 동란중 처참한 전쟁의 비극을 너무 많이 체험 했고 또 생사의 고비를 수 없이 넘나들며 구사일생 살아난 과거가 있어 전쟁이 너무나 끔직하고 저주스러웠다. 그 때문에 조국을 버리고 떠나는 도피성 이민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이제사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용서를 빌고 양심의 고백을 하는 것이다.
위에 열거한 여섯가지 이유가 모두 다 이민병 때문에 생긴 결과다. 고약한 이민병 때문에 긍정과 부정이 교차되면서 연극과 탤런트 생활에 대망의 꿈이 회의적으로 변하고 연기생활 그 자체가 지겹고 싫고 짜증이 나 고민을 하면서 자문자답을 하게 됐다. 탤런트라는 배우의 직업이 과연 값지고 순수하고 고고한 예술이며 아름답고 뜻 깊은 천직인가, 아니면 먹고 살기위한 피치 못할 행위인가, 냉정하게 머리를 짜내며 연구 검토를 했다.
당시 일일 연속극 6일분 녹화를 하루에 다 해야 되는데 3회분 극본 ( 씨나라오 )은 녹화 당일 배우들에게 배부 된다. 그래도 현장에서 연기자들은 그 많은 분량의 대사들을 다 외우고 6회분 녹화를 끝내는 기적 같은 실상이다. 그런 한국 TV 제작 조건에 적응 해야하는 탤런트들은 천재들이고 재주꾼인 동시에 기계와 같은 존재들이다. 맡은 역활에 지나치게 깊이 파고 들면 낭패를 당하게 된다. 잔재주와 임기웅변 순발력이 최고다. 녹화 현장도 열악해 여름에 겨울 장면을 녹화 할 때는 두꺼운 겨울옷을 입고 특수 분장에 수염까지 잔뜩 붙이고 아침부터 밤이 새도록 뜨거운 조명불 밑에서 숨이 막히는 비지땀을 흘러야 하는 정신적 육체적 중노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