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 권명오
수필가 · 칼럼니스트
Ⅰ한국 38년(68)
주택 신축과 '여로' 녹화와 '파라호'
삼양동 인근 주택 단지에 신축한 집을 팔고 셋방살이를 하면서 신학대학 앞에 구입한 땅에다 점포 3개와 방 4개를 곁들인 집을 짓고 2년 후 이층으로 증축해 객실 20개를 만들어 모텔업을 시작했다. 그 후 생활이 안정되고 여유가 생겨 편하게 방송생활을 하면서 PD들의 눈치 안 보고 술 안 사는 배우가 됐다. 그리고 계속 운좋게 방송 출연이 이어지고 최고 인기 연속극 '여로'에 출연하게 돼 일 년 이상 방송을 하며 수입을 올렸다.
'여로'의 작가며 연출자인 이남섭씨와 최정훈씨 그리고 나와 일부 출연진들은 일주일분(6회) '여로' 녹화를 끝내고 다음날 낚싯대를 챙겨 춘천 파라호를 향해 달렸다. 높은산 밑으로 펼쳐진 산속의 바다 같은 파라호는 천하 절경이다. 배를 타고 2시간 가량 북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화전민 집에 짐을 풀고 각자 호숫가에 낚싯대를 던져 놓고 월척의 꿈을 펼쳤다. 눈을 크게 뜨고 고기가 잡히기를 기다리다 밤 12시경 물가 언덕 숲속에 걸터 앉아 밤참으로 끓여 먹는 라면 맛은 그야말로 천하일미다. 밤이 새도록 월척은 고사하고 붕어새끼 하나 못 잡아도 즐겁고 좋아 매주 녹화가 끝나면 파라호를 찾아갔다. 이른 새벽 안개가 산봉우리들을 휘감고 호수위에 물안개가 아름답게 피어 오르는 고요와 평화의 엄숙한 절경에 책 가방을 멘 어린 아이를 태운 조각배를 노젓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림같이 아름답고 거룩했다. 화전민의 아이 일 것이다. 우리는 그런 아름다움 때문에 매주 파라호를 찾는지 모른다.
고기를 잡든 못잡든 즐거운 시간을 만끽하고 아쉽게 돌아서 귀경길에 춘천 막국수에 장떡 곁들여 막걸리 한잔 걸치고 코스모스 만발한 경춘 국도를 달렸던 추억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때가 참 좋았다. '여로' 작가와 연출자였던 이남섭씨는 일주일에 한번씩 파라호를 다녀와야 작품이 잘 써지고 연출도 잘 된다고 했다. 그는 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깊은 산속 파라호에서 작품을 구상하고 연출 플랜을 짠 것이었다.
우리는 열심히 일주일분 '여로' 녹화를 위해 전력을 다 했다. 그 당시 연속극 '여로'가 최고의 인기 작품이었고 시청률 1위를 차지 했기 때문에 '여로' 방송 시간에는 텔레비전이 있는 집으로 몰려 들었고 또 '여로' 출연 텔런트들은 어디를 가나 인기 만점이었다. 아 ! 옛날이여 . 그때가 그립다. 미국으로 이민 온 먼 훗날 절친했던 작가 이남섭씨가 세생을 떠났고 나와 연극 '안토니오 크레오파트라'를 함께 했던 그의 부인 김난영씨도 세상을 떠났다. 어느날 텔런트 실에서 이순재씨와 바둑에 열중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고 해 받아보니 은사님이신 낙양공고 (현 중대부고) 교감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6시 이후 시간이 있으면 만나자고 했다. 그동안 나는 선생님을 한번도 찾아뵙지 못한 까닭에 주저 없이 약속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