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을 탐독하고 손에서 책을 놓을 때면 글쓰는 사람이란 이름표가 무색해지곤 한다. 이름표에 어울리는 글을 써가고 있는지, 작가라는 자리를 지켜낼 만큼의 영향력있는 삶을 살았으며 그에 반한 글쓰기를 감당해내고 있는지, 염치없는 낯 부끄러운 일을 해대고 있는 건 아닌지, 객관적 시선으로 돌아보게 된다. 논 밭의 식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 했듯, 글 또한 경작하는 농부의 노고와 기쁨처럼 작가의 손 끝에서 빚어져 나오는 땀과 정성의 결정체이다. 글과 동행하는 길은 파도가 훑고간 촉촉한 모래톱에 발자국을 한켜 한켜 남겨가는 것이다. 치밀하지 못해 빈틈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노년의 아낙에게서 삶의 이삭줍기처럼, 인생의 길동무가될 수 있을만큼의 참신한 감성으로 탄력성있는 글을 빚어왔던가. 소신을 가진 글은 과단성있는 삶에서 비롯되는 것이라서 삶 속의 결단성 있는 신념이 자리잡고 있아야 가능한 것이다. 약한 모습으로 각인되는 것이 싫어 분주히 달음질 하는 현대인들이 실로 능하고 강한 사람으로 인정 받을 수 있을까. 푸수수 의문이 인다.
세상 시선으론 초라해 보일수도 있겠으나 그것에 조차도 무심한 소홀이 오히려 느긋하고 편하다. 낡은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자칫 몰아애(沒我愛)에 빠질 위험으로 부터 구조받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니까. 걸림없이 편안하게 읽어지며 은은한 여운이 남겨지는 좋은 글과 행복을 공유하고 누릴 수 있는 편안한 삶의 상관관계는 공통점이 깊을 수 밖에 없을것이다. 품위있는 글은 작가의 인격과 견문이 두루 겸비된, 끝없이 요구되는 혜안과 감성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이라서 삶의 질에도 깊은 관여가 적용될것이다. 영혼을 치유받을 수 있는, 마음을 움직일수 있는 글이라면 몇 줄의 시로도 충분할 것이나 영혼의 평안이 안착할 수 있는 글은 마치 수채화같은 은은함에서 우러나오는 평안을 얻게 될 것이다. 다시 읽고싶은 편안한 글은 형식에 매이지않으며 단어들의 넓은 집합 속에서도 간결함이 돋보이듯, 좋은 삶 또한 간결해야 한다. 권력이나 부로, 명품으로 포장된 삶은 이미 탄력을 잃은 것이다. 물질만능을 자랑 삼는 것은 무엇으로도 내세울만한 자신이 없을때 남발하는 초라함의 본능이기에. 모처럼 만난 심원한 풍경 앞에서, 시간을 잊을만큼 흠뻑 빠져드는 정경앞에서 아무런 감동이나 가슴 저리지않는 사람이라면, 지독히 강하거나, 외로운 사람일 것이라 단정짓고 싶음은 영혼의 평안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론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강함은 상대에게 위협이 될 수 있음이요, 지독한 외로움은 상대를 불편케 하는 의식의 비좁음이 드러날 것이라서 편안한 삶을 이끌어 내기에는 역부족일 가능성이 크다. 참되고 꾸밈이나 거짓 없는 순수라야 좋은 삶의 기조가 될 수 있지만, 흉내내거나 눈가림 같은 헛짓으로 만들어 낸 표정, 동작이라면 나란히 걷거나 마주 바라보는 대상으로는 탐탁치 않을 수도 있을것이다. 또한 자기 확신이 강할수록 완강해 보일 뿐 아니라 주변을 경직하게 만들기에 사람의 머무름이 소삽할 뿐이다. 침착하고 따스하고 여유로움이 깃든 유연한 삶을 유존하시는 분들 곁에는 사람들의 머무름이 융성하다. 평안을 불러들이는 언어들을 압축한 정교한 글은 인간만이 사용하는 지적 도구라서 작가들의 자존으로 내세울 수 있는 글쓰기의 묘미로 부각된다. 문학에 대한 치열함은 오직 한 길을 달려가는 묵묵한 성찰과 자각에 게으르지 아니하는 눈부신 생명력에 이끌려가는 것이라 했다.
글 쓰는 일이 삶의 축이 되어 마치 중력으로 작용하는 것과 같음은, 산책길을 걸을 때도 설겆이를 할 때도 때로는 차 속에서도 때와 장소 가릴 것 없이 일상을 비집고 들어선다는 것이다. 글의 나열이, 어쩌면 문장의 씨줄과 날줄이 생각 속을 헤집고 다니고있어 글 쓰기에 휘둘리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책 속에 묻혀 있던 문장이, 특별한 일상에서 빚어진 일들이며, 풍경을 만나면서 얻게되는 정감, 언뜻 지나쳤지만 귓속을 맴도는 말 한마디들이 삶 속에 무지근한 추를 달은 듯 삶을 움직이는 여지가 되어 숙성된 글로 빚어지게 된다. 나이라는 삶의 추도 어찌하지 못하는 긴박한 삶의 뼈대가 되어주는 소재로 쓰임받게 되는 것이라서 삶과 글은 함께 숨쉬고 동고동락 한다. 작가가 죽어도 독자의 기억 속에 여전히 살아있다면 글은 작가와 함께 살아 숨쉬고 있음이나 진배 없음 이다. 종국엔 어찌 살아야 편안한 좋은 글을 남길 수 있을까로 축약된다. 좋은 죽음을 위해 좋은 삶이어야 한다. 마지막은 누구에게나 예고 없는 길이요 돌아서지 못하는 길이기에 마지막 시점에서 돌아보았을 때, 길목 마다에서 지우고 닦으며 수정하는 일에, 부끄러움에서 되돌리는 일에 게으르지 않았는지, 두려움으로 조신함으로 옷깃을 여민다. 맑은 심성에서 배어나온 삶의 진액이 응집된 보석같은 결정이 빚어낸 편안한 글을 빚어내고 싶다. 거르지 않으시고 한국일보 행복한 아침을 열독해주시는 존경하는 독자님들께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로 인도받는 편안한 삶을 누리시는데 일조하고 싶은 마음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