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   권명오

 수필가··칼럼니스트.

Ⅰ한국  38년(55회)

                                                   

불공정한 군생활


군대라는 특수 단체의 조직과 규율과 억압에 따른 심리적 고달픔 때문인지 시간만 나면 각 가지 고민과 상념에 날개가 펼쳐져 그때마다 문학 소녀에게 생각 나는대로 이런 저런 글을 썼고 많이도 썼다.  아무 이해 관계없이 부담없이 쓴 글이라 내용이 신선했다.  돌이켜 보건데 그때 쓴 글들이 최고의 문장이었고 산문인 것 같다.  위생병들은 비교적 시간도 많고 또 군사우편은 무료라 때도 시도 없이 편지를 썼다.  그 때문에 어떤 때는 같은 날 편지가 두통 세통씩 배달 된 일도 있다.  여학생복을 입고 찍은 사진 이외엔 아무것도 모르는 문학 소녀와 따뜻하고 향기가 가득한 세상 이야기와 문학과 예술과 서울 이야기 등을 나누고 군대의 각 가지 실상들과 전방의 삭막한 현실과 전투 훈련에 따른 에피소드 등을 열거하며 따분하고 지루한 군 생활을 보람있게 장식했다.  훗날 결혼한 우리는 그때 쓴 편지를 읽으며 그 당시 어떻게 그 많은 편지를 썼는지 믿을 수가 없을 정도 였다.  그런데 그 귀중한 편지들을 미국 이민을 떠날때 모두 다 버려  후회 막금이다.  사라진 편지들을 찾을 길도 없고 다시 그런 글을 쓸 수도 없고 써 질 수도 없다.  

해가 가면 기울듯 편하고 좋은 파견 생활도 다른 부대와 교대가 돼 끝이 나게 됐다.  다시 전방 의무중대로 복귀 해 고참병들과 신경전을 계속 하다가 대대 의무대로 파견 근무케 됐다.  의무중대보다 훨씬 편하고 시간도 많아 책을 읽고 편지를 쓰면서 상상의 날개를 실컷 펼쳤다.  그 순간들이 나에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시간들이었다.  생활이 고달프고 힘들지라도 꿈이 있고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있으면 역경과 난간을 극복 할 수가 있다.  

1950년대 말 대학 재학생들이 군에 입대하면 군 복무기간  12 개월이라는 특혜가 주어졌다.  군 복무기간  36개월 군인들과는 달리 대학 재학중 입대한 군인들에겐 군번이 00 번호로부터 시작돼 그들을  빵빵 군인 이라고 했다.  1년 복무 빵빵 군인들은 전방 보병부대에 배치돼 근무하다  1년 후 대학에 복교하게 돼있다.  그런 특별 대우 때문에 그들은 일반 군인들의 불만과 질시와 증오의 대상이 됐다.  좋은 집안과 환경에서 태어나 공부만 하다 군대에 들어온 놈들이 불공평하게  1년 복무 특혜를 받은것이니 귀하신 몸들 고생좀하고 쓴맛좀 봐야 한다며 갖은 모욕과 기압과 고통을 주고 학대하면서 배운놈들의 정신 상태가 썪었다는 등 비열한 갖은 욕설과 횡포를 마구 강행했다.  

그 때문에 빵빵 군인들의  1년 복무는  3년 군 복무보다 더욱 가혹했다.  군은 계급이고 밥그릇 이라며 전봇대로 이를 쑤시라면 쑤셔야 된다고 악을 쓰며 대학까지 다닌놈들이 그것도 모르냐며 비아냥 대면서 구타를 했다.  개중에는 동상에 걸려 신음하면서 인간 이하의 군 생활을 했다.  위생병인 나는 주말이면 보병중대 인사계나 선임 하사들에게 부탁해 빵빵 군인들과 함께 외출을 나가 막걸리를 나누며 그들의 고통을 위로 해 주었다.  군 생활을 안 해본 사람과 후방 요직에서 편히 생활한 군인들은 모르지만 그 당시 최 전방 보병들과 빵빵 군인들의 근무조건과 일상은  생지옥이나 다름없는 피눈물나는 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