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배우자나 남자친구인 척 섹스

일부 주는 강간 요건에 해당 안돼 무죄


상호 합의에 대한 통일된 정의 없지만

위계에 의한 경우‘법적 처벌대상’대세



아비가일 핀니는 퍼듀대 신입생이었던 2017년 남자친구의 기숙사 방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한밤중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녀는 몸을 밀착해오는 상대와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문제의 남성은 남자친구가 아니라 그의 친구였다.

이런 케이스는 강간에 해당할까? 그가 가슴을 더듬었을 때 핀니가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고 호응했으니 ‘동의’를 한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어둠을 이용해 ‘목적’을 달성한 도널드 워드(당시 19세)는 자신이 그녀의 남친인 양 속임수를 썼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결국 두 건의 강간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워드는 2018년 무죄방면 됐고, 법원의 명령에 따라 기소기록마저 삭제됐다. 인디애나 주의 관련법은 거짓말과 속임수에 의한 성관계를 강간으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변호인 측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인 결과다. 주 의회는 뒤늦게 속임수를 강간구성 요건에 포함시키고, 상호 합의(consent) 없이 이루어진 일체의 성적행위를 강간으로 규정하는 두 건의 법안을 발의했으나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성폭행 예방사이트 컨센트 어웨어니스 닷넷을 운영하는 조이스 쇼트(70)는 강간여부의 판단기준인 쌍방 합의에 대한 공통된 정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합의를 “상황과 상대에 대한 확실한 정보와 정확한 지식을 바탕으로 자유의사에 따라 이루어진 쌍방의 동의(agreement)”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녀에 따르면 합의와 달리 동의는 “어느 한편이 제공한 표면적인 정보에 바탕한 호응”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상대방을 속여 성관계를 맺었다면 설사 행위 전에 상대의 동의를 구했다 하더라도 위계에 의한 강간으로 보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미국이 경우 합의에 대한 통일된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미주리 주는 “폭력이나 속임수에 의한 성행위는 상대의 사전 승인(assent)을 얻은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관련 법조항을 갖고 있다. 

테네시의 주법은 “속임수를 이용한 (성기) 삽입”을 강간으로 규정하고 있고 앨라배마는 사기 혹은 계략에 의해 상대의 동의를 취득하는 행위를 “성적 비행”으로 다스린다.  

인디애나를 제외한 일부 주에서는 배우자나 파트너 시늉을 하며 성관계를 맺은 사람을 ‘기만에 의한 강간’(rape by deception)으로 처벌한다. 미국 여자체조대표팀의 팀 닥터였던 래리 나사르처럼 의료인 특권을 이용해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저지르는 것 역시 기만에 의한 강간에 해당한다.  

HIV 보균자임을 밝히지 않고 성관계를 할 경우에는 연방법에 의해 전국 어디에서건 형사상의 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헤르페스 등 다른 성병에 걸린 사실을 사전에 알리지 않았을 경우의 처벌 여부는 주에 따라 다르다.

잠재적 성행위 상대에게 출생시 자신이 지니고 태어난 선천적 성(gender)을 제대로 밝히지 않는 이른바 ‘젠더 사기’의 위법성 여부는 여전히 ‘회색지대’로 남아있다. 

온라인상에서 신분을 속이고 만난 상대와 섹스를 한 경우 처벌 여부는 가해자가 속임수를 이용해 부당한 금전적 이익을 취했는지에 초점이 맞춰진다. 실제로 지난 2014년 자신을 영국 스파이라고 속인 남성과 잠자리를 가진 여성이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뒤늦게 가해자를 고발했지만, 법원은 그녀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사실 위계에 의한 성행위의 범위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지는 골칫거리다. 어디에 합법과 불법의 선을 그을지 난처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모르게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며 양다리를 걸쳤다거나, 보톡스로 미간의 주름을 편 사진을 데이트 알선 사이트에 게재해 나이를 속이고 파트너를 구한 행동을 법으로 다스릴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단지 섹스만을 목적으로 “사랑한다”고 거짓말을 한 것 역시 위계에 의한 강간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까? 

이처럼 법의 잣대를 들이대기 힘든 케이스가 수두룩하지만 그래도 강간법을 강화하고 적용 범위를 확대하려는 주정부 차원의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법대 교수인 콜린 밀러는 “현재 거의 모든 주가 형법으로 다스리는 위계에 의한 납치는 기본적으로 위계에 의한 강간과 다를 바 없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상대에게 거짓말을 해 어딘가로 데려가는 것을 범죄행위로 간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배우자나 남자친구인 것처럼 속여 성행위를 갖는 것 역시 법적인 제재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쇼트는 “그 누구도 속임수, 강압, 폭력, 마취약, 알코올 등에 의한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어선 안 된다”며 “우리 모두에게 상대와 상황에 대한 확실하고 명료한 지식과 정보에 근거해 성적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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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타주 브리검 영 대학 학생들이 지난달 캠퍼스에서 교내 성폭행 가해자에 대한 처벌 규정 강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