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의 다수당 원내총무였다가 케네디의 부통영이 된 텍사스주 출신의 린든 존슨은 그의 전임자보다 더 유능한 정치가였다. 그는 연방의회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거기서 일을 해낼 수 있는 비상한 능력을 키웠다. 그는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간청하고, 구슬리거나, 아니면 으르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대통령으로서, 그는 빈곤을 없애고, 모든 사람들에게 번영의 혜택을 보급시키기 위해 권력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를 원했다.
존슨은 케네디 대통령이 추구한 법안들이 통과되도록 하기로 작심하고 취임했다. 시급한 우선순위 과제는 감세안과 민권보장 법안이었다. 1964년 존슨 대통령은 자기의 설득 기술을 이용할 뿐만 아니라, 암살된 대통령에 대한 의원들의 존경심에 호소하면서, 케네디 대통령이 제출한 민권법안을 통과시키는데 성공했다. 이 법안은 남북전쟁 직후의 재건기 이래 제정된 가장 원대한 민권법안이었다. 이윽고 존슨 대통령은 다른 문제들도 다루었다. 1964년 봄에 그는 자기의 개혁계획을 설명하기 위해 "위대한 사회"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 용어는 그 해의 대통령 선거에서 그가 보수적 공화당 대통령 후보 배리 골드워터를 누르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후 한층 더 잘 알려지게 되었다.
경제면에서, 존슨 대통령은 감세안을 성공적으로 추진시킨 다음, 케네디 대통령이 시작한 빈곤 퇴치 계획을 적극 추진했다. 그는 "오늘 이 자리에서 이 행정부는 미국의 빈곤에 대해 무조건의 선전포고를 한다"고 선언했다. 경제기회국(Office of Economic Oppoitunity)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직업훈련을 제공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이 주택, 보건, 교육 계획 등에서 발언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갖가지 지역사회 활동계획을 마련했다.
다음 순서는 의료보호 조치였다. 20여 년 전에 트루먼 대통령이 중앙에서 관리하는 의료보호 계획을 제안했었는데, 의회에서 통과되지 않았었다. 존슨 대통령의 영도하에서, 의회는 고령자들을 위한 의료보험 계획은 '메디케어'(Medicare)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의료 지원 계획인 '메디케이드'(Medicaid)를 법제화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존슨 대통령은 케네디 대통령이 실패한 초등 및 중등 교육 지원 노력에서도 성공했다. 법제화된 이 교육 지수법안은 저소득 가정 출신의 어린이 수를 기초로 해서 주에게 자금을 주었다. 이 자금은 공립학교 어린이나 사립학교 어린이들을 다같이 돕는데 사용될 수 있었다.
'위대한 사회' 계획은 한층 더 넓은 범위에까지 추진되었다. 신주택법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주택 임차료 보조비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주택·도시개발부를 신설했다. 1924년에 책정된 차별적인 이민쿼터는 마침내 이민법안과 대체되었다. 예술가들과 학자들의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연방정부가 그들에게 조력했다.
존슨 행정부는 또한 로비스트이자 컨설턴트인 젊은 변호사 랠프 네이더의 노력이 일부 도움이 되어 운송안전 문제를 다루었다. 네이더는 1965년의 그의 저서 "Unsafe at Any Speed: The Designed-In Dangers of the American Automobile"(어는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 미국 자동차의 예정되어 있는 위험성)에서, 많은 작은 자동차 사고에도 사망이나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네이더는 자동차 제조업자들이 자동차 스타일을 좋게 하기 위하여 안전에 필요한 것들을 희생시키고 있다고 말하고, 결함 많은 공학기술이 고속도로 사고사의 한 요인이 되고 있는 자동차형들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1966년 9월 존슨 대통령은 2개의 운송법안에 서명하여 이것들을 법률로 확정했다. 첫째 법안은 안전계획을 개발하기 위한 자금을 주정부와 지방 자치체에 제공했으며, 또 하나의 법안은 자동차 및 타이어의 연방 안전 기준을 설정했다.
총체적으로 보아서, '위대한 사회'는 뉴딜정책 이래 가장 많이 이루어진 입법활동이었다. 그러나 존슨 행정부정책에 대한 지지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으며, 많은 계획들이 충분한 자금을 공급받지 못했다. 하지만, '위대한 사회'는 1965년부터 1968년 사이에 빈곤을 어느 정도 감소시켰다. 예컨대, 흑인 가구 소득은 백인 가구 소득의 54%로부터 60%로 증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