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환
(아틀란타 한인교회 담임목사)
사람은 노인이 되면 “건강하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도 감사가 가능해집니다. 젊은 사람일 때는 건강이라는 것이 그냥 누구나가 다 누리는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입이 있으니 먹고, 두 눈과 귀가 있으니 보고 듣고, 그리고 두 다리가 있으니 걷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을 합니다. 그러나 “노인”이 되면 일단 멈칫하는 것들이 많아집니다. 입이 있어도 왕성하게 먹을 수 없고, 눈과 귀가 있어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두 팔과 다리도 자제하고 절제하지 않으면 반드시 무리가 생깁니다. 많은 노인들이 말합니다. “아프거나 움직이는데 불편하지만 않아도 감사할 뿐입니다.” 젊었을 때는 절대로 자신의 모습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코웃음 쳤던 것들이 어느 덧 시나브로 돌이킬 수 없는 자신의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먹지 않아도 좀처럼 배고프지 않고, 보이는 것이 뿌옇고 가물가물해도 불편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곳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도 자연스럽게 손사래를 치며 “젊은 사람들 가라”고 양보하게 됩니다. 이런 글을 적고 있는 저도 이제 머지않아 이런 현상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인생이 참 덧없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몇 주 전에 예배가 끝나고 목회자들의 카톡 방에 누군가가 “틀니”를 예배당 의자에 빼놓고 갔다는 광고가 올라왔습니다. 친절하게도 틀니의 사진까지 찍어서 올렸습니다. 입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니 누가 착용했던 것인지 생김새를 통해서는 도무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보정물에 치아가 여러 개 달린 것으로 보아 이 틀니가 없으면 음식을 먹는데 상당히 장애가 많을 것입니다. 치과 병원에 가서 다시 제작을 하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들텐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중학교 때 아주 큰 상악골 수술을 받은 이후 평생을 틀니를 착용하며 산 저로서는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잠시동안 주님께 이 틀니의 주인이 고통받지 않고 잘 찾아갈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매주일 예배가 끝난 후에는 실수로 놓고 간 분실물들을 찾는 분들의 전화가 끊이지 않습니다. 그 종류도 다양합니다. 휴대폰, 지갑 그리고 가방을 찾기도 하고, 자동차 키를 찾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연세 드신 어른들은 주로 안경이나 돋보기 그리고 보청기를 놓고 가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틀니”는 전혀 새로운 아이템입니다. 신선합니다.
“예배에서 얼마나 큰 은혜와 감동을 받았으면, 눈 빼놓고, 귀 떼어 놓고, 이제는 이빨까지 뽑아 놓고 가겠습니까? 우리 교회가 정말 좋은 교회라는 신호입니다” 썰렁한 유머를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권사님 한 분의 말씀에 웃기도 했지만, 잠시동안 머리 속이 먹먹해지는 허탈감도 느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신체의 각 부분마다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의료 장비들이 늘어나게 됩니다. 돋보기, 보청기, 틀니, 인플랜트, 그리고 가발에 이르기까지 많은 도우미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잘 가꾸어도 “겉 사람”은 결코 한 세기를 넘지 못하고 다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신경 써야 할 사람은 “속 사람”입니다. 겉 사람은 잃어버릴지라도 속 사람은 끝까지 잃지 말아야 합니다. 속사람을 지키는 사람이 진정으로 인생 승리를 이루는 사람입니다. 3월이 되면 우리에게 항상 “누나”로 기억되는 여성이 있습니다. 저의 아버지도 누나라고 불렀는데, 저도 누나라고 부르고, 저의 아들들도 누나라고 부릅니다. 영원히 늙지 않는 유관순 열사입니다. 올 해로 100년동안 그녀는 항상 누나였습니다. 주님을 향한 그녀의 믿음과 애국심이 겉 사람의 노화를 이긴 것입니다. 우리도 비록 돋보기에 틀니를 착용했다 할지라도 빛나는 속사람으로 인해 영원한 청년으로 기억되기를 소망합니다. 지금부터라도 젊고 크게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