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 ) 권명오
수필가·칼럼니스트
Ⅰ한국 38년(40)
새로운 도전
체육선생 지도 하에 기초 훈련을 끝내고 인천에서 부평까지 뛰는 왕복훈련을 1개월 이상 열심히 노력하고 총력을 다 했지만 큰 변화와 발전이 없다. 뛰면서 깨달은 것은 마라톤 선수와 운동 선수를 누구나 다 할 수 있는것이 아니고 피나는 노력과 인내와 함께 신체 및 경제적 조건도 잘 조화가 돼야 가능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각가지 의문과 문제점을 자문자답 하면서 뛰는데 숨은 차고 땀은 비 오듯 흘러 눈과 귀까지 온통 범벅이 돼 참을 수가 없고 견딜 수가 없다. 세상사 말처럼 노력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마라톤 선수로 대성 할 수 없고 내가 갈 길이 아니라면 빨리 길을 바꿔야 한다고 결정 한 순간 나는 국도변 깊은 연못으로 뛰어 들었다. 그렇게 물속에 몸을 담그고 난 후 마라톤 선수에 대한 허황된 꿈을 완전히 끝냈다.
그 당시는 누구나 전쟁의 폐허에서 재기해 새 터전을 닦느라 굶주리면서 허덕일 때였고 가난과 무질서한 어려운 시기였다. 학생들의 미래도 불투명 했다. 졸업 후에도 직장에 대한 보장이 거의 없는 상태라 학교를 다니면서도 기약없는 미래에 대한 고민 때문에 어떻게 하면 학업을 빨리 끝내고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 그것만 생각 할뿐 공부를 열심히 해 이웃과 사회와 국가를 위해 또 인류사회를 위해 공헌해야 겠다는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였던 국가현실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1 학년이었지만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닌 동기생들은 고등학교 졸업반 이였다. 나이와 경제적인 조건을 생각하면 고등학교를 빨리 졸업하고 대학을 가든지 살 길을 찾아야 할 형편이다. 그 때문에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 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살 길을 개척 할 수 있을까 그것이 더 중요했다. 우연히 알게된 최제갑 군의 사촌형이 서울 유명 고등학교 교감 선생 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그의 형이 황해도에서 헤어진 동생이 혼자 피난 나와서 고생을 하면서 고학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항상 안타깝게 생각해 찾아 오라고 했다. 그래서 최제갑 군에게 바람을 넣기 시작했고 형을 찾아가 야간에 하던 미군부대 일을 청산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해 책 장사를 하려고 하는데 각 학교에 책을 팔 수있게 도와 달라고 부탁하고 책 장사를 할 장소로 성남 고등학교와 서울 공업고등학교가 있는 대방동으로 정하고 전학 문제까지 부탁하라고 설득했다.
최제갑 군은 내 말대로 했고 며칠 후 우리는 대방동 교감 선생을 찾아가 자세한 사업 계획을 설명하니 그의 형이 적극 도와 주겠다고 했다. 그 분은 교육자였지 사업가는 아니다. 사업을 잘 모르고 자기가 잘 아는 출판사와 각 학교 교감 선생들에게 부탁하면 쉽게 성사 될 것이라고 믿고 동생에게 자신있게 도와 주겠다고 한 것이다. 우리는 그 분의 순수한 말만 듣고 겁도 없이 대박의 꿈에 취해 책 장사 사업에 올인을 하게 됐다. 최제갑 군과 나는 자금을 공동 투자해 대방동에 책방을 내기로 결정하고 전학준비를 했다. 나는 또 무리하게 담임 선생을 찾아가 억지로 고등학교 2학년 재학증명서를 만들어 부정한 방법으로 교감 선생의 추천을 받아 낙양공고 ( 현 중대부고 ) 2 학년생으로 전학을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