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달력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새해가 어영부영 한달여 흘러가버렸다. 새해 앞에 옷깃을 여민 각오나 포부, 다짐들이 용두사미가 된 것 같은 아쉬움이 밀려들 무렵에 설날이란 반가운 명절이 우뚝 다가왔다. 우선 반갑다. 새해 다짐을 다시 한 번 추스릴 수 있어 다행스럽고 감사하다. 나같은 사람이 어쩌면 몇 분은 계실 것 같은 얇은 고무(鼓舞)가 위로를 불러들인다. 작심 3일을 독려하듯 구정이란 명절이 미소를 띠며 스스로를 향한 실망을 토닥여주듯 ‘그럴수도 있지’ 라며 자괴감을 덜어준다. 마치 패자 부활전처럼. 이국 땅에서 견디어낸 세월을 고향이 짚어주지 않는다는 투정 도 잠재워야할 것 같다. 그리워하던 고향도, 명절도 세월에 시달렸을 것이라는 생각을 놓치고 있었다. 고향 사람들도 세월에 시달렸을 것이고 고향을 지켜온 아름드리 느티나무도 어쩔 수 없는 세정 흐름을 밀어내지 못하고 뿌리채 뽑혀야 했던 고통도 수반했을 것이라서 고향땅에서 밀려난 목마름이 이민자의 향수와 비견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측은지심이 인다. 가지에서 떨어져 나온 것 같았던 이국살이는 설날도 없이 쉬지않고 하루 매상에 매달리는 것 조차에도 감사하며 버티어온 이방인의 삶이지만 그럼에도 고유의 명절날을 기억하며 만두를 빚고 떡국 거리를 준비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에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넉넉함이 행복일것이다.
설 명절이 다가온다는 것에 어찌 이리 마음이 설레일까. 명절이 다가오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설빔을 기다렸던 소녀가 이국이라는 서글픈 외지에서 명절이라는 명분과 절의를 되새김 하듯 깊숙히 숨겨져있는 기억들을 들추어내고 있다. 설 명절에만 지켜지고 있는 세배라는 풍속의 아름다움이 새삼 돋보인다. 가족을 향한 존경심으로, 동기간의 우의를 다지는 명절 행사로 이민자들에게는 고향을 향한 애틋한 한풀이요 아름다운 전래 전통을 지켜내려는 안깐힘의 바램이기에 고이 전승되어 지켜내기를 기대해본다. 세대마다 기억하고 있는 명절 추억이며 풍경들이 있음을 할머니가 된 무렵에야 발견하게 되었다. 손주들이 기억하고 있는 명절이란 개념과 유년의 어린나이에 부모 따라 이국으로 건너온 이민1.5세들이 간직하고 있는 명절 모습들에서 극명한 차이를 엿보게 되더라는 것이다. 어느 50대 부부의 하소연이다. 오랜만에 찾아나선 고국 방문이었는데 재개발 붐을 타고 변모된 마을이며 고향 길까지 유년의 그리움과 추상마저 잃어버린 것 같다는 푸념이었다.
‘새배 받으세요’ 란 말 속에 스민 명절 내음이 노년에 임한 이민 1세들은 고국이나, 고향이라는 말로는 대체할 수 없는 아리고 아린 이민자의 고달픔이 고여있다. 명절이란 말에는 동심, 그리움, 유년의 뒷동산 흙내음이며, 회고와 회상의 쉼터 같은 향기가 배여 있다. 옛 고향 풍경은 사라져도 그 날들의 순간순간들은 영원한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 고향이라서 고향은 내내 그리움일 수 밖에 없음이다. 명절을 보내기 위해 고향으로 가는 발걸음이 도로를 가득 메우는 모습은 비단 고국에서 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추수감사절기가 돌아오면 고향을 찾아 명절을 보내고 다시 생존지로 회귀하는 도로 풍경이 뉴스거리로 등장한지도 오래된 일이다. 1박2일, 2박3일의 노정을 감수해가며 고향을 찾는 분들을 뵈올때면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행복할 수 밖에 없음이 여실히 드러나 보인다.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가족이 있음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돌아갈 곳이 있어서 행복한 행복 보유자들이다. 가족을 향한 각별한 애착을 마음껏 존대해드리고 싶다.
새해도 설날도 매냥 추위 속에서 만나진다. 해서 항상 따스하게 맞을 준비를 하게되는 창조주의 깊으신 섭리를 알 것만 같다. 세상이 냉랭하고 각박하고 무거웁기에 따습게 슬기롭게 착하게 살아야겠다 싶다. 해서 추위 속에서 만나는 설날이 더욱 의미롭다. 새해나 설날을 항상 추위 속에서 만날 수 밖에 없음이 축복이다. 설날은 달력으로 찾아오는 것도 아니요 산을 넘는다고 바다를 건넌다고 우리네 마음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스스로 새로워지기를 기도하며 한 알의 밀알로 심겨져서 좌절로 패인 세상 깊숙한 곳에 소망의 씨앗을 뿌리며 세상을 평안으로 이끄는데 일조하다 보면 얼음 속으로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요, 빈 벌판을 건너온 겨울바람 향기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차갑고 냉혹하다지만 한다발 꽃 묶음 같은 시심일랑은 부디 잃지 않기를 소망드린다. 모든 이들에게 해마다 새해가 열리고 설날이 다가오고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해주지만 어느 누구도 어느 것 하나도 영원한 것이란 없다. 하지만 영원한 소망이요, 돌아갈 본향이 있는 자는 이 땅에서도 행복한 삶을 보장 받을 뿐 아니라 영원한 처소를 향하여 오늘도 한 걸음씩 내딛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인생들에게 영원한 처소로 영접받을 소망이 있기에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것이다. 명절마다 고향을 찾지는 못하지만 찾아갈 곳이, 먼 바다 건너에 고국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네는 얼마든지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없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