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  )    권명오

수필가. 칼럼니스트


                                                                                        

Ⅰ한국 38년(23) 

                                           

다시 돌아온 영국군 탱크 부대


휴전후 적성면 설마리 비룡계곡에는 영국군 전투 기념비가 세워지고 영국 정부 관계자들이 참배를 하고 해마다  4 월 22일 설마리 전투를 기념하고 있다. 우리도 그 날을 기념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영국군 포로들이 북으로 연행돼 간 다음날 사촌 형수네 방공호 인근 나무 숲속에 영국군 장갑차가 숨겨져 있고 옆에는 영국군 운전사가 중공군 감시하에 넋을 잃고 앉아 있었다. 애처롭기 이를데가 없었으나 도울 길이 없다. 중공군의 눈치를 보아야 하고 영어도 할 줄 모르니 어쩔수가 없었다. 그들은 저녁이 되면 어디론가 떠났다가 아침이 되면 다시 장갑차를 숨겨놓고 있었다. 

자주 보게 되니 무언의 교감이 생겨 중공군에게 영국군에게 밥을 주어도 되느냐고 손짓 발짓으로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며 주라고 해 밥을 갖다주니 영국군은 밥을 남김없이 맛있게 다 먹어 치웠다.  얼마나 굶주렸을까. 불쌍하고 안타깝기 이룰데가 없었다. 밥을 맛있게 먹으면서 말이 통하지 않아 서로 바라만 보았던 그가 또 밤이되자 어디론가 떠난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 후 어떻게 됐는지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고 휴전 후 무사히 포로 교환으로 영국으로 돌아 갔는지 만약 살아 있다면 90이 넘었을 것이다.  

우리는 만리타향 한국 땅에 와 자유와 평화를 위해 참전한 UN 군들과 희생자들의 은혜를 잊어서는 절대로 안될 것이다. 우리는 계속 숨을 죽이며 방공호에서 UN 군이 다시 진격해 오기를 기다리며 불안에 떠는 생활을 계속 해야 됐다.  엎치락 뒷치락 하는 격전지의 중심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치다 지쳐 무신경해진 상태일 때 주인없는 군마들이 들판을 헤매고 있는 것을 마을 친구가 산모퉁이로 끌고가 도살을 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덕에 생전 처음 말 고기를 실컷 먹게 됐고 굶주리고 궁한 탓이 였는지 그 당시 말고기가 너무나 맛 있었다.  중공군들도 떠나고 없고 말 주인도 없어 계속 말을 잡아 포식을 했다.  말 못하는 말에게는 가혹한 행위였지만 전시엔 한가하게 그런 것까지 깊이 생각 할 상황이 아니였다.  

전쟁은 산하를 갈갈이 찢고 부수고 동물과 물고기까지 포탄을 퍼부어 죽게하는 최악의 비극이다. 그래도 봄은 오고 새싹이 힘차게 흙을 박차고 나와 웃고있다. 인해전술을 펼쳐가며 영국군과 싸우면서 중공군이 당한 피해가 너무 크고 UN 군의 강력한 반격과 화력을 당하지 못하고 서울을 향해 진격 하다가 패배를 하고 또 다시 중공군들이 야밤에 우리 마을을 통해 임진강을 건너 후퇴를 했다. 그렇게 며칠간 중공군이 후퇴를 한 후 조용해진 다음날 기다리는 영국군들이 탱크를 앞세우고 다시 들어 왔다. 우리는 암흑 세계에서 또 다시 광명의 세계를 맞이하게 됐다. 다행히 이번에도 중공군들은 우리를 해치지 않았고 자신들은 옥수수, 수수 가루를 먹으면서도 민간인들의 식량을 강탈 하지않고 피해를 주지 않고 조용히 후퇴를 했다. 솔직히  6.25 당시 우리 국군들이 나쁜 행위를 많이 했고 또 동족인 인민군들의 만행이 한층 더 악랄하고 가혹했다. 국군과 UN군과 싸운 중공군들이 나쁘고 저주스럽지만 그들이 민간인들을 해치지 않고 보호해 준 것은 적이었지만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