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쉽게 누그러들지 않을 기세라 서늘하고 산뜻한 추석맞이가 되진 않더라도 고향 명절은 고국을 향한 그리움과 향수로 피어난다. 이국땅이라 마음 놓고 명절을 즐길순 없지만 마음만은 마냥 넉넉한 심성이 된다. 고향을 떠나온 나그네라서 민족 고유의 명절이 다가오면 어쩔 수 없이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고향이다. 한 민족의 순박한 마음과 풍성하고 훈훈한 인정의 대명사로 고향은 언제나 마음은 저리게 한다. 고향은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네에겐 묘한 마력 같은 것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질퍽한 이국살이에서 꿋꿋이 살아가라며 든든한 버팀목으로 절절한 위로가 되어주기도 했었고, 더는 버텨나갈 탄력을 잃은 마음 위에 위안을 베풀어주기도 했었다. 타국에 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재외동포들은 고향을 품고 살아간다.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한가위가 되면 지나가는 나그네에게도 마음을 나누는 선조들의 푸짐한 인심으로 나눔의 온정을 이어온 중추절이었기에 우리네들은 포근한 고향 모습을 떠올리며 다사로움을 전이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게 된다. 우리 민족은 어디든 정착하면 씨족사회를 이루고 친인척이 모여살았던 습속을 이어온 민족이라서 고향이라는 것에 유난한 집착을 지니고 살아가는 터라서 한인 밀집지역이라는 말이 세계 어디를 가든 생소하지가 않다. 한인이라는 단어 하나로 우리 모두는 존재 자체로 서로에게 소중하고 살가운 존재성을 지니고있다. 만월의 넉넉한 빛둘레를 바라보며, 그리운 얼굴들을 만나고, 고인 마음들을 터놓고, 송편을 빚으며 정을 나누고 풍요를 감사하는 정경을 연출해 낼 수 있는 한가위 이기를 바램해본다. 인류의 가슴에 온화와 화해와 평화와 사랑을 심어주려는 달의 마음을 마음의 달로 촉수를 밝혀내며.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창을 열어두고 휘영청 떠오른 달을 바라보고 앉았다. 한가위 맞이를 할 둥근달이 맑은 밤 하늘에 두둥 떠올라 있다. 고향에서도 떠올랐을 고향 달을 보고 있노라면 앞 뒤에 놓여있는 세상사들이 뒷걸음질을 한다. 뚝뚝하던 마음이 은은해 진다. 우주에서 제일 친근하고 유년시절 동경의 대상이요 우주 규모의 상징처럼 가까이에서 먼 신비를 바라보았던 달이다. 인류의 발걸음이 머문 곳이라서 더욱 친근감으로 바라보게 된다. 어릴 적에 적어 두었던 동시가 문득 생각난다. ‘달은 제 모습을 어디에다 비추어 볼까.’ 하는 궁금증을 안고 있었는데 시골 큰집을 다니러 갔다가 산자락 곁에 있는 넓은 호수에 떠있는 보름달을 보고는 호수가 달의 거울도 되어지고 하늘의 거울도 되어진다고 썼던 동심이 소롯이 그리워진다. 달은 왜 높은 산꼭대기에서만  솟아 오를까. 왜 달은 번번히 가늘어졌다 풍성해졌다 할까. 어떻게 떠오르는 시간이 제맘대로 일까. 노년으로 들어선 자리에까지 세월 흐름을 거스르며 유년의 달 단상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우주의 광원이 고여있는 허공을 의식한다면 인간사의 다사다난도 잠재워질 것이고 열리지 않는 마음들도 다림질해놓은 이불호청처럼 매끄럽게 펴질 것을. 유리창 얼룩처럼 지우고 싶은 관계의 얼룩들 조차도 달 빛 자장가에 잠드는 어린 아기의 편안한 표정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을. 결속이 필요한 곳에 달의 둥긂을 닮아간다면 흩어지고도 다시 흩어지려는 모래의 속성에서 결집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을. 보름달을 감싸고 있는 빛살의 부드러움을 닮아 마음의 달을 밝혀보리라. 세상사의 둥긂을 바램하면서. 한가위 보름달이 떠올랐다고 함께 둥근 달을 바라보자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싶은 깊은 밤이다. 


밤이 깊은 시간이라 길 위에 사람도 없고 다니는 차도 드물다. 달빛은 아늑하고 천지는 고요하다. 달빛을 둥불삼아 밤길을 걸었던 포근한 그리움을 안고 도시의 밤 길을 거닐고 싶어진다. 연륜이 채곡채곡 재워지듯이 달을 바라보는 마음의 부피도 가슴 뻐근하도록 소록소록 피어오르고 있다. 이민살이가 힘겨웠을 때 얼음처럼 차고 흰 달이 마음의 달로 떠오를 때도 있었다. 추석으로 다가갈수록 달의 위상은 숙성되듯 차 오를 것이다. 다사다난한 일상을 잠시 비켜나서 이 번 한가위에는 둥근 보름달을 바라보자. 언제 달빛의 흐름을 만나보려 했으며, 언제쯤 하늘을 올려다 보았던가. 새끼들 앞날을 위해 계산기 두드리느라 여백이 없었고, 보다 더 나은 차로 바꾸어야 하기에 뒷 목이 뻣뻣해지고, 한 식구 쯤 더 어울려 살아도 될만한 집을 더 늘려야 겠다며 초조한 일상을 꾸려내느라  언제 달을 떠올리며 살았던가. 보름달이 아닌 반달이라도 마음에 담아보자. 하늘을 두려워할 줄 알아서, 하늘 빛을 사모할 줄 알아서, 영혼의 성화을 위해 정결과 진리를 따를줄 알아서, 하늘 사랑으로 마음의 달을 빚어내며 누추한 생을 그 어디나 하늘나라로 만들어내는 한가위가 되었으면 좋으련만. 고향을 그리는 마음의 달이 생의 등불처럼 이민자들의 가슴 가슴에 떠올라 서로를 바라보는 마음이 한가위 만월처럼 순하고 부드러워지기를. 탐하는 마음, 모난 마음, 편견, 이기가 달처럼 풍요로운 둥긂으로 영글어져 둥근 보름달이 마음에 떠오르는 한가위, 추석이 되어지기를 하늘 우르러며 간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