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 ) 권명오.
수필가. 칼럼니스트.
Ⅰ. 한국 38년(14)
가족과 재회
철환이 형은 친구들을 만나 당분간 문산에 머물겠다고 해 나 혼자 고향 가월리를 향했다. 집으로 가는 시골 50리 길을 걸으며 이런 저런 상상의 날개를 펼쳤다. 마을과 집이 불 바다가 됐다는 것이 사실일까 아닐까, 아버지 어머니 형과 동생은 무사 할까 . 문산도 무사 한 것을 보니 가월리도 우리집도 아무 이상이 없을 것이라고 자문자답 했다.
6.25 남침을 통해 갖은 고난을 다 겪어 가면서 그동안 많은것을 배웠고 겁이 많고 주변머리 없던 성격도 많이 변해 버렸다. 여호와의 증인도 무서운 것도 대도시에 대한 공포중도 없어지고 강해졌다. 혼자 50리 길을 걸어도 자신이 넘치고 가족을 만날 생각 때문인지 힘이 넘쳤다. 2시간 후 꼬부꼬불한 숲속 고개를 오르며 진형구 아저씨집 가정부 처녀를 생각 했다. 그녀가 청소를 하며 혼자 들릴듯 말듯 부른 노래가 아리랑 인데 왜 어떻게 해서 아리랑을 부르게 됐는지 그녀만의 사연이 있을 것이다. 주인들은 안전한 곳으로 피난을 가고 없는 빈 집에서 포탄이 터지고 세상이 변했어도 말 없이 자기가 하던 일과 해야 될 일을 묵묵히 하던 그 모습이 아름답고 훌륭했다.
그런데 그런 그녀를 가련하고 불쌍하게만 보았던 내가 부족했고 무지했다. 그녀에게 항상 행운이 함께 하기를 기원하며 뒤지리 고개 정상에 오르게 됐다. 다섯 발자국만 더 오르면 우리집과 마을이 보이게 된다. 가슴이 두근 거린다. 어떤 모습이 나타날까, 잿더미 쑥대 밭으로 변한 집과 마을이 보일까, 불안과 초조속에 고개 정상에 오르니 와 ! 우리 집이 보인다. 우리 마을 가월리가 보인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우리 마을 아버지와 어머니 형과 누이 동생이 있고 소꼽 친구들과 정든 이웃들이 있다. 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단숨에 달려 가니 마을 사람들이 나를 반기며 빨리 집으로 가라면서 아버지 어머니가 너 때문에 병이 났다고 했다. 집으로 달려가 대문 안을 들어 서니 대청 마루에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있던 아버지 어머니가 뛰쳐 나와 얼싸안고 어쩔줄 몰라 했고 사럼들이 나를 에워싸고 환영했다. 한동안 재회의 기쁨으로 눈물을 흘리는 벅찬 순간이었다. 그 동안 피난을 다니며 얼마나 애타게 찾고 기다리고 걱정을 했으며 생사를 알 길이 없어 근심 했던 가족들 인가. 유언비어 때문에 고생도 많았다. 모두 다 무사해 다행이고 감사하다.
마을은 예전이나 다름이 없는데 왠지 불안한 먹구름이 모여드는 느낌이다. 인민군 치하에 내무소원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그래도 인민군들이 탱크를 몰고 남침을 하면서 건너온 임진강은 아무 말없이 흐르고 있다. 내무소원들이 마을을 휘젓고 반동분자들을 색출 해 처벌 하겠다고 떠들어 댄다. 그 중에는 국민학교 동창생도 있고 한때 우리집 머슴 이였던 사람도 내무소원이 됐다. 8월이 되자 문산 중학교에서는 개학이 시작 되니 등교를 하라고 연락이 왔으나 포기 했다. 가월리에 있는 적성 국민학교는 개학이 되자 공산당 ( 빨갱이 ) 교장이 새로 부임했고 학교에서는 각 가지 궐기 대회와 강연회가 계속 개최 됐다. 강연 내용은 북한 인민 공화국과 위대한 김일성 장군 찬양 일색이었다. 교장의 주 임무는 북한 찬양과 선전이였다. 그리고 미 제국주의 규탄과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성토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