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한국 38년 (10)                                                                   


야밤 서울을 향해.


지천(   ) 권명오 

수필가·칼럼니스트. 



어둠이 깔린 금촌시 사람 하나 없는 밤 거리를 방향도 모르고 걸어 가다가 지나는 군인과 마주 쳤는데 뜻밖에 그 분이 고향 형뻘 되는 시람이었다.  반갑기가 이를데가 없었고 그 분이 어떻게 여기 왔냐고 물어 상황을 간단히 설명 한 후 봉일천 국민학교에 적성 가월리 피난만이 있다는데 사실이냐고 물으니 전혀 모른다며 그 보다 지금 저 앞 다락 고개에서 치열한 전투가 시작 될 것이니 빨리 여기를 떠나라며 이 길을 따라 가면 서울이라고 하면서 급히 가 버렸다.  

나는 어쩔수 없이 서울울 향해 무조건 걸었다.  사람 하나 없는 밤길 인데도 위기에 처하니 겁도 안나고 무서움도 없어졌다.  가다 보니 길 옆에 큰 운동장과 학교가 나타나고 봉일천 국민학교라고 쓴 푯말이 있는데 사람이 없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학교로 들어가 살펴보니 피난민은 고사하고 사람 그림자 조차 없다.  헛 소문에 속은 것이다.  전시에는 그런 헛소문 때문에 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당했다.  

발길을 돌려 다시 서울울 향해 걸으며 생각하니 앞일이 막막하다.  여호와의 증인도 천국도 지상낙원도 없고 갈 곳도 없다.  서울을 가든 어디를 가든 잠자리도 목적지도 반겨 줄 사람도 없는데 무조건 서을을 향해 가고 있는 자신이 한심할 뿐이다.  남,북한 군인이 전투를 하고 있는 북으로 갈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걷다보니 어둠속에 희미하게 사람의 모습이 보여 가까이 가보니 피난민 두 사람이 짐을 내려놓고 쉬고있다.  너무나 반갑고 기뻤다.  인사를 하고 보니 그 중 한 사람이 문산농업 교복과 모자를 쓴 선배였다.  사람이 그리웠던 탓인지 마치 친형이나 구세주를 만난 것 같았다.  나는 그 두분을 의지하고 함께 서울로 향했다.  그 분들은 대구에 있는 누님집으로 피난을 간다며 나에게 갈곳이 있냐고 물었고 내가 갈 곳이 없다고 하니 그러면 우리와 함께 대구로 가자고 해 너무나 고마웠다.  

밤이 깊어 더이상 못가고 인근 공릉 사당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 눈을 붙이게 됐다.  새벽녘 사람들이 떠들며 어디론가 급히 가고 있어 그들에게 “무슨 일입니까?", "예,산 밑 건너 마을에 인민군이 쳐들어와 사람을 마구 죽이고 부녀자들을 마구 끌고 갑니다.  빨리 오지 않고 뭘해 ,  가요 가" 떠들며 허겁지겁 달려들 갔다.  우리도 급히 짐을 챙겨 뒤를 따라 갔다.  국도를 따라 벽제 인근에 도착 해 보니 인민군이 들어 왔다는 것이 헛소문 이였다.  

오후 3시경 서울 녹번리 고개 위에 도착 했을 때 피난민을 살피고 있는 소방관이 보여 가까이 가보니 기적과 같이 그 분이 우리 가월리에 살던 형님뻘 되는 사람이였다.  서로 반갑게 손을 마주 잡고 전후 사정을 이야기 했다.  그 분은 피난민들이 서울로 몰려오자  38선 인근에 사는 가족을 찾기 위해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며 나에게  어디로 가는 길 이냐고 물었다.  내가 갈 곳이 없다고 하니 입장이 난처 한 듯 한참을 생각하다 혹시 진형구 아저씨 집을 아느냐고 하면서 모르면 자기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진형구 아저씨는 아버지의 친구이고 일제시 우리집으로 피난을 왔을 때 아저씨 가족을 편히 생활 할 수 있도록 모든것을 제공 해준 일이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따라 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