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한국 38년 (8)
6.25 남침
지천( ) 권명오
수필가·칼럼니스트.
생전에 작은아버지는 일본 작은어머니 친정집이 부유한 편이라 한국 사위를 싫어 했다며 그 때문에 편지가 끊어졌고 추측 하건데 작은어머니가 재혼을 한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화자와 정기를 완전히 일본 사람으로 만들려는 것 같다고 하면서 한숨 짓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유 여하간 천륜까지 매정하게 끊는 일본인들의 비인간적인 행위가 소름 끼치도록 무섭고 가증 스럽다.
이웃 일본과 중국은 한국에 대한 침략과 압박과 박해를 참회하고 뉘우칠 줄 모르는 고약하고 악랄하고 야비한 이웃 나라들 임을 잊지 말아야 우리 민족의 안전과 평화와 영광을 누릴 수가 있을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주고 받는 정확하고 확실한 정책만 필요 할 뿐 인간적으로 신뢰해서는 절대 안될 이웃들이다. 하지만 멀리 할수도 버릴 수도 없이 공생 해야 될 공동 운명인 가장 가깝고도 먼 이웃 사촌이 중국과 일본이다.
여호와의 증인 영균이 형은 계속 예언자처럼 말세가 다가 왔다며 세상은 곧 멸망하고 하나님의 새 천국이 올 것이며 여호와의 증인들의 새 낙원이 펼쳐 질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믿고 일도 공부도 고민도 없는 새 세상에 대한 환상에 완전히 도취됐다. 그 때문에 자의반 타의반 지겨운 중학 생활을 하면서 6월을 맞이했다. 6월 24일 피곤도하고 일이 있어 매주 가던 집에 가지않고 문산에 있게 됐다. 그날 저녁 이상하게 계속 울리는 포성 때문에 잠을 설치다가 일어나니 새벽 3시였다. 포성은 계속 됐고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그 동안 38 선상에서 소규모 전투가 자주 있었기 때문에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과 달리 포성이 계속 되고 있어 철환이 형도 무어인가 심상치 않다고 불안해 했다.
날이 밝아 북쪽 방향 선유리 고갯길로 나가니 보따리를 이고 지고 넘어 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38선 인근에서 오는 피난민 들 이였다. 그 때 마침 버스 한대가 고개를 넘어 왔는데 그 차가 바로 적성 가월리에서 오는 버스였다. 일주일에 한번 다니는 목탄 버스 였는데 포탄이 쏟아지고 전쟁이 시작되자 피난민을 싣고 급히 달려 온 것이다. 그들은 우리집이 있는 가월리가 불 바다가 되고 쑥대밭이 됐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어 반신 반의 하면서 피난민들이 넘어오는 선유리 고개를 넘어가 가족과 고향 사람들을 찿고 기다렸다. 오후가 돼도 피난민들만 계속 밀려올 뿐 우리 가족은 보이지 않고 소식초차 없다. 포성은 계속 커지고 피난민은 줄을 잇는데 가족의 생사를 알길이 없어 애가 타고 불안해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헌병들은 군 트럭과 피난민들을 안내하고 북으로 향하는 국군 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피난민들에게 인민군 애들이 함부로 까불다가 우리의 용감 무쌍한 국군들에게 혼줄이 나고 도망 갈 것이니 걱정 말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여유 만만한 헌병들의 말을 믿었다. 간혹 국군들을 태운 트럭이 한 두대씩 전방으로 달려갔고 군인들은 군가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를 소리 높이 외치면서 전선인 사지로 향했다. 인민군 대 병력과 막강한 화력과 탱크의 위력을 전혀 모르고 불나비처럼 인민군과 싸우겠다고 달려 간 것이다. 지금도 군가를 부르며 전선으로 향하던 군인들의 모습이 가슴에 사무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