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한국 38년 (7)                                                                   

이산 가족의 불행


지천(   ) 권명오 

수필가·칼럼니스트. 


                                                                                                              

일본 사람들은 북한에서 쫓겨나 38선을 넘어 온 피난민들이다. 김일성은 친일파를 숙청하고 일본인들을 강제로 추방했다.  일본 피난민들은 38선을 넘어 임진강을 건넌 후 안심을 하고  잠자리를 구하려고 우리 마을로 들어왔다. 인정이 많은 마을 사람들은 지난날 일제하에서 당한 압박과 설움을 뒤로하고 그들을 가엾고 불상하게 생각하고 친절하게 잠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 해주고 무사히 목적지 인 일본으로 돌아 가게 도와 주었다.  

그 후 일본인들은 무사히 부산에 도착 해 배를 타고 일본으로 귀국했다. 그들은 우리 마을을 떠날 때 머리가 땅에 닿도록 허리를 굽히고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를 했고 개중에는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일본인도 있었다.  그런데 그 일본 사람들이 은혜를 잊었는지 아니면 그들의 감사와 눈물은 모두 거짓 이었는지 일본은 과거를 잊은 채 역사를 외곡하고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억지와 함께 침략의 야욕을 다시 드러내고 있다.  

갑자기 일본에 살던 작은아버지가 작은 어머니와  딸 화자와 아들 정기를 데리고 귀국했다.  작은아버지는 일본이 패망한 다음 더이상 재기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급히 귀국을 한 것이다. 큰아버지와 아버지와 가족들이 작은아버지를 환영하고 재회의 기쁨을 나누면서  큰아버지와 아버지는 작은아버지의 거처를 마련한 다음 정착할 농지도 제공했다. 그러나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는 농사일을 할 줄 모르고 또 작은어머니와 화자와 정기는 한국말을 못하기 때문에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정신적인 고통이 많았다.  그 때문에 불만과 불화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큰아버지와 아버지와도 의견 충돌이 심해져 작은아버지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 가기로 결심하고 일본가는 배를 타기위해 부산으로 떠났다.  불행하게도 그것이 이산 가족이 되는 첫 단추였다.  작은아버지는 배를 타려고 하다가 한국 국적이란 이유로 거절을 당해 할수없이 작은어머니와 화자와 정기만 일본으로 보내고 돌아왔다.  그라고 곧 뒤따라 갈 계획을 세웠으나 한,일 외교 관계상 불가능해 밀항을 시도 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 했으나 실패를 했고 6.25 동란으로 인한 처절한 전쟁과 한,일 외교관계 악화로 일본행이 완전히 좌절 되고 말랐다.  

가족과 생이별을 한 작은아버지는 계속 재회의 꿈을 위해 노력하면서 애닲은 사연을 담은 눈물겨운 편지를 보냈다.  그렇게  2년이 지난 후 작은어머니의 답장이 끊겼고 소식도 완전히 끊어져 버렸다.  작은아버지는 애타게 소식을 기다리며 가족을 그리워 했지만 끝내 일본도 못가고 소식도 끊어져 버려 어쩔 수 없이 혼자 가슴을 치면서 애처럽게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작은 아버지의 한을 풀어 드리고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기 전 일본 작은어머니의 주소를 찾아내 장문의 사연을 담은 편지를 써서 그동안 작은아버지가 어떻게 살았으며 얼마나 애타게 작은어머니와 화자와 정기를 그리워 했는지를 소상히 나열하고 가까운 혈육이 만날수 없는 현실일지라도 서로 서신 교환이라도 하면서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하소연 했으나 끝내 답이 없었다.  잔인하게 천륜의 인연을 끊어 버린 작은어머니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일본에 있는 사촌 형제들은 우리와 인연이 끊긴 완전한 일본인들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