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에 기쁨이 있습니까?"하고 누군가 질문한다면 거기에 걸맞는 대답은 이것입니다. 지금도 당신의 삶에는 기쁨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이 조각조각 무수히 들어 있습니다. 가까운 숲속에, 여러분의 가정에, 심지어 콘크리트 정글 속에, 혹은 친구와의 대화 속에 숨어 있습니다. 이 빛나는 신비 가운데 하나가 오늘 당신만의 것입니다. 얼른 당신의 영혼의 카메라 셔터를 열고 찰칵 누르십시오.  기쁨을 빛의 추적경로를 찾아가보면 발견할 수 있는 너무나 소박한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을 본문 스바냐 3:17절에서는 "Rejoice"라 합니다. 이 기쁨을 원어의 뜻으로는 "With Gladness"입니다.  기쁨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은 기쁨을 우리 삶에 직접 가져다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우울한 나의 삶 속으로 직접 찾아오셔서 내 손에 내 어깨에 내 머리에 내 가슴에 직접 개입하셔서 기쁨을 안겨다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프랑스어로 "Rejoice"는 "Rejouir"입니다.  이 말의 뿌리는 Re(Again. More)+ jouir(joy, like, love, please). 본문에 보면,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He will take great delight in you)."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He will rejoice over you with singing)."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말미암아  "끊임없이(거듭 거듭)" 기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도 기뻐하시고, 내일도 기뻐하시고, 영원토록 기뻐하시겠다는 약속의 기쁨, 언약의 기쁨을 우리에게 보장하십니다.

누가 우리 자신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억제할 수 없다 말합니까? 하나님 외에 누가 이런 기쁨을 우리들에게 표현합니까?  스바냐 3:17절의 말씀을 NIV 성경으로 볼 때 말씀 속에서 <큰 신비의 축복>을 발견하게 됩니다. 스바냐 3:17의 첫 서두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NIV 영문성경에서는 "THE LORD your God is with you"라 말씀하십니다.  Hebrew 성경에서는 "THE LORD your God is in your midst"라 말씀하십니다.  이 두 성경의 번역을 종합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너와 함께, 너의 인생 가운데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가운데 등장하는 "With You"의 뜻이 참으로 심오합니다. 이 말씀은 '(1) 직접 도와준다.  (2) 어려울 때 도와준다. (3) 직접 개입해서 도와준다'는  뜻입니다. "너의 가운데 계신다. 우리 가운데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끊임없는 기쁨을 주신다." 그런데, 세상이 주는 기쁨과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왜 다를까? 그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바로 내 곁에서 나를 직접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내가 어려울 때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나를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내 삶에 직접 개입하셔서 나를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에 어떤 부분에 개입하신다 말일까요? 오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구원을 베푸시는 전능자"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원어성경에서는 "승리를 주시는 전사(戰士)"라 표현합니다. 이 말씀의 뜻은 내가 직접 나서서 문제해결을 하려고 발버둥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직접 나타나셔서 대신 싸워주시고 마침내 나에게 승리를 안겨주신다 는 엄청난 축복의 메시지가 들어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 땅에 'Holy War(영적 전투)'를 위해 무려 30명에 가까운 선지자들을 이 땅에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전히 완악하고 목이 뻣뻣하여 <불순종과 불신앙>으로 일관했습니다. (1) 통일왕국시대( 사무엘, 나단, 갓, 아히야, 잇도)-- 5명. (2) 분열왕국시대: 남 유다(아히야, 예후, 엘리야, 미가야, 엘리사, 호세아, 아모스, 요나, 오뎃)--9명.  북 이스라엘(스마야, 아사랴, 하나니, 예후, 아하시엘, 엘리에셀, 엘리야, 스가랴, 요엘,  이사야, 미가, 나훔, 하박국, 여두둔, 훌다, 스바냐, 예레미야)-- 17명. (3) 포로시대: 에스겔, 오바댜, 예레미야, 다니엘-- 4명. (4) 귀환시대: 학개, 스가랴, 말라기-- 3명.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더욱 더 완악하고 교만하고 우매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하나님은 용단을 내리십니다. 하나님이 직접 이 땅에 내려와야 되겠다는 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그 극단의 조치가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성자 예수님이 직접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십자가 사건은 오늘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한 것입니다.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이 역사에 직접 개입하신 사건입니다(His Blood).  그래서, 오늘 본문은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라 말씀하십니다. "승리의 전사"는 <하나님>이십니다. 마귀를 대적하여 싸워서 죽음을 생명으로, 절망을 소망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지옥행을 천국행으로, 하루살이 인생을 영원한 천국맨션 인생으로 승리의 면류관을 우리에게 씌워주신 대장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직접 도와주셔서 우리에게 기쁨을 주십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영원한 내일이 없기 때문에 모두가 우울증에 빠져있습니다. 바로 이 우울한 마음에 가장 특효약인 <기쁨을 주시겠다!>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기쁨의 샘물이 솟아나게 하시겠다!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셔서 사랑의 기갈, 사랑의 기근에 시달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직접 사랑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우리가 만일 이 사랑을 모르고 이 사랑을 배척한다면 이보다 더 비참하고 불행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또 다른 약속은 하나님의 찬양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셔서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즐거워하시며 그 즐거움을 큰 소리로 하나님께서 직접 찬양을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기쁨의 영성학자, Mike Mason은 그의 저서, "내 영혼의 샴페인"에서 기쁨의 실제체험담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습니다.: "기쁨은 호흡과 같다. 들이쉬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내쉬기도 해야 한다. 한마디로, 기뻐하라! 당신의 기쁨을 퍼뜨리라. 누군가를 안아 주라. 춤추라. 힘이 되는 말을 해주라. 편지나 책을 쓰라. 행복에 대해 생각만 하지 말고 행복하게 살라! 기쁨은 몸으로 표현되고 실연(實演)되고 생활화되기를 갈망하고 있다. "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기쁨은 세상이 기쁨과 같지 아니하니라."(요14:27) 왜 그럴까요? 세상은 유한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유한합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인생은 유한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주는 기쁨도 유한합니다. 유효기간이 너무 짧습니다. 그래서 세상으로 말미암은 기쁨은 아무리 행복해 보여도 그것은 다 허상(虛像)뿐입니다. <집>을 소유하면 기쁠까요? <차>를 소유하면 기쁠까요? <돈>을 소유하면 기쁠까요? <건강>을 소유하면 기쁠까요? <명예나 지식>을 소유하면 기쁠까요? 이 모든 것은 실상이 아닙니다. 다 허상들입니다. 뜬 구름입니다. 오직 실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실체는 하나님이 주시는 내 영혼의 샴페인인 기쁨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에는 "With You"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십니다. 내가 힘들고, 지치고, 외롭고, 어려울 때 하나님은 내게 오셔서 직접 도와주십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