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에서 인디언들과 갈등을 빚어냈던 것처럼, 광산업자, 목축업자 및 정착민들의 서부의 평원과 산으로 팽창해 나아감으로써 서부의 인디언들과의 갈등이 점점 더 많이 빚어졌다. 서부의 대분지(Great Basin)의 유티스 족에서 아이다호의 네즈 피세즈 족에 이르는 여러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들이 수시로 백인들과 싸움을 벌였다. 그 중에서도 북부평원의 수 족과 남서부의 아파치 족이 변경 개척자들의 진출을 가장 크게 가로막았다. '레드 클라우드', '크레이지 호스'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유능한 지도자들이 이끄는 수 족은 특히 기마전에 능숙했다. 아파치 족은 수 족 만큼이나 전투에 능했고 교묘하게 상대를 기만하곤 했는데, 주로 그들의 생활 환경인 사막과 협곡에서 전투를 벌였다.
대평원의 인디언들과의 갈등은 1862년에 백인들의 수 족 인디언들에 의해 학살당함으로써 빚어졌는데, 남북전쟁 기간 전체를 통해 갈등은 계속 되었다. 수 족과의 마지막 대전투는 다코타에서 일어난 금광열기로 광부들이 블랙 힐즈 지역으로 침투해 들어간 1876년에 벌어졌다. 육군은 광부들이 수 족의 !! 지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을 책임이 있었으나 인디언의 땅을 보호하는 대책이 거의 취해지지 않았다. 그런데 (미 합중국과) 체결한 조약상의 권리에 따라 수렵 지역에서 사냥을 하고 있던 인디언들을 공격하도록 명령이 내려지자 육군은 활발하게 움직였다.
1876년에, 서너 차례에 걸친 수 족과의 승패를 가름할 수 없는 회전이 있은 후, 조지 커스터장군은 '리틀 빅 호온' 강변에 잇는 수족과 그들의 동맹부족의 주야영지를 발견했다. 분유대 분대에서 갈라진 그와 그의 부하들은 이곳에서 벌어진 인디언들과의 전투에서 전멸당했다. 그 후 1890년에, 사우드다코타주 운디드니의 북부 수족 보호구역에서 벌어진 "고스트 댄스"(사자의 혼령과의 교신을 위한 종교적 춤) 의식은 인디언들의 봉기와 마침내는 수백 명의 수족 남녀와 어린이들의 죽음으로 끝난 비극적인 충돌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이전에 평원 인디언들의 생활 양식은 (백인들에 의한) 들소의 대량 도살로 파괴되었는데, 들소는 1870년 이후의 10년 동안에 무차별 수렵으로 거의 별종되었다. 한편 남서부의 아프치족과의 전투는 이 부족의 마지막 !장인 제로니모가 1885년에 사로잡힐 때 까지 질질 오래 끌었다.
인디언 문제에 관한 먼로행정부 이래의 정부 정책은 인디언들을 백인들의 변경 개척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옮겨 놓는 정책이었다. 그러나 인디언 보호 구역은 불가피하게 점점 더 작아지고, 좁은 공간에 인원을 더 많이 수용하게 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대우를 항의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서부에서 살았던 동부인인 헬렌 헌트 잭슨은 1881년에 <불명예로운 한 세기>(A Centry of Dishonor)라는 책을 저술했는데, 이 책은 인디언들이 처한 곤경을 극적으로 표현하여 이 나라의 양심에 와닿게 했다. 대부분의 개혁자들은 인디언들이 지배적인 문화에 동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방정부는 인디언 젊은이들에게 백인들의 가치관과 신념을 심어주기 위한기도에서 펜실베이니아주의 칼리일에 학교를 세우기까지 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 지금까지 낳은 가장 우수한 운동선수라고 간주하는 짐 터르프가 20세기 초에 명성을 날린 것도 그가 이 학교에 재학중이었을 때였다.)
1887년에 (헨리 로렌스 도우즈가 제안한) '도우즈법'은 미국의 인디언정책을 뒤엎어 놓았는데, 이 법률은 대통령이 인더언 부족들의 전용지를 나누어주고, 인디언 세대주마다 65헥타르의 토지를 분배할 수 있게 하였다. 이처럼 할당된 토지는 25년 동안 이를 정부에 信託하고, 이 기간이 끝나면 소유자가 완전한 권리와 시민권을 차지하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분배되지 않고 남아있는 토지는 정착민들이 이를 구입할 수 있게 하였다. 제 아무리 선의에서 나왔다고는 하지만 이 정책은 재난을 몰고 온 정책이었음이 밝혀졌다. 이 정책은인디언 토지에 대한 가일층의 약탈을 가능하게 했으며, 인디언 부족들의 공동생활체 조직을 파괴함으로써 그들의 전통 문화를 가일층 와해 시켰기 때문이다. 1934년에 미국의 인디언 정책은 '인디언 재조직법'에 의해 다시 반전되었는데, 이 법률은 인디언 보호 구역 안에서의 그들의 부족적 및 공동체적 생활의 영위를 보호하고자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