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여름 사이는 언제나처럼 두루뭉술 어물쩍 넘겨지고 만다. 입하가 들어서고 어느새 소만 절기도 여상스레 지나가고 햇보리를 먹게되는 망종이 코 앞이다. 아침 저녁으론 서늘하지만 한 낮이면 여름이 성큼 들어선 것 같다. 봄 기운은 스치듯 홀연히 사라지고 산이며 들녘은 푸름이 가득하고 개구리 우는 소리도 간간히 들려온다. 산책길 길섶에서 쑥이 무성하게 자라고있어 반갑기 그지없다. 볕살이 넉넉하게 내려앉는다. 만상이 윤택을 입고 아쉬울 것 하나없는 족함에 들떠있다. 들판에 질펀한 들풀들도 꽃을 피우고 풍성한 여름으로 들어설 준비로 풍족으로 하루들을 세워나간다. 5월은 타박받을 이유없을 만큼 화창함의 극치를 이루더니 하리케인 영향으로 비와 뇌우가 봄 뒷자락 붙드는 시늉을 한다. 한 순간에 천지가 푸름으로 덧입혀진듯 신록이 아름다움의 적기로 접어들었다. 짙푸른 초록으로하여 가슴뛰는 감동이 아릿한 흥분으로 다가온다. 우수 경칩이 데불고온 묘한 훈기를 타고 꽃잎이 열리기 시작될 무렵 할 일 없이 봄비가 내리는 동안 길손처럼 머물다 가버린 멋쩍음이 봄이 남긴 흔적이다. 아스라히 봄 기운을 흘리고는 주섬주섬 떠날채비를 하는 봄을 더는 붙들 수 없으매 봄이 남기려는 유추여행을 떠나보기로 했다. 


달리고 있는 차 속에서 뒤돌아본 풍경이 낯선 풍경으로 멀어져간다. 다가오는 풍경과 뒤돌아 본 풍경은 어느새 낯선 풍경처럼 남겨진다. 달려온 인생길과 돌아본 인생길의 차이 처럼. 타성이려니 해보지만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낯섦은 줄어들지 않고 아쉬움을 끼고 살아가는 이방인의 습성인가 보다. 아지랑이 속 봄이 남긴 흔적이 뒤돌아보아지는 것 처럼. 비몽사몽 흘러가듯 이제 봄날은 갔다. 인생의 굴곡을 미쳐 모르는 청춘의 계절이라서 은근스레 넘겨지기엔 상실감이 큰 봄 날이다. 맑은 하늘이 기다려준 것만도 감격이다. 힘찬 물소리를 뿜어내고 흐르는 폭포의 경관이며, 맑고 깨끗한 공기에 어우러진 청청한 물소리가 경쾌하게 산야로 퍼져나간다. 천지에 드리워진 푸름의 풍요로움에 감복하게 된다. 느릿느릿한 산야의 몸짓들이 서로의 섞임을 유인하듯 눈짓을 주고 받기에 분망해 보인다. 푸름으로 뒤덮인 나무들 사이로 안개가 감기고 분분하게 꽃잎을 날리던 가지들도 어릿어릿 넘겨지는 계절의 능선을 무연한듯 지켜보고 있다.  


짙은 흙냄새와 달큰한 나무 냄새가 축축한 공기에 실려 물씬 풍겨온다. 산 냄새, 숲 내음, 흙내음은 생명의 내음이다. 씨줄 날줄로 엮어낸 관계에서 강세에 짓눌린 심리를 부드럽고 유화시켜주기도 하고, 예고치 않았던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 마음졸이는 상태를 느슨하게 완화시켜주는 완충의 은혜를 나누는 천혜의 보고다. 흙내음을 맡으면 군중 속의 외로움도 희석되고 해이된 삶의 질서가 주는 긴장감 까지 용납 받을 수 있게된다. 풍진 세상을 살아낼 적응력을 얻어낼 만큼 격정을 누그러지게 만드는 신묘한 품이다. 봄과 여름 사이에 만난 흙내음은 예술의 경지다. 산과 숲이 일궈낸 자연의 품이 없었다면 치밀하지 못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사람은 세상이란 바다에서 삶의 진통을 소롯이 감당해야할 밖에. 흙내음을 깊이 들이킨다. 지금보다 더 허름한 바보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이 무섭도록 소란하고 분주할수록 보잘 것 없어 엉성하고 빈틈 많은 사람은 가슴 아플일이 많아진다. 무심하고 소홀한 것이 세상 인정이라서 허름한 마음이면 어떠랴, 어설픈 몸짓이면 어떠랴. 받은 상처를 흙내음이 이완시켜주기 위해 얼마든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애연한 상흔을 어쩔줄몰라 숲내음을 찾게되고 흙내음을 맡으며 깊디 깊은 산자락에 묻혀 살고 싶어진다. 세상이 던져주는 작은 눈짓 하나에도 흠집이 나고 그 생채기가 아물날이 상거도 멀다. 숲내음, 산내음은 하늘의 깊음을 품고 흙내음 위에 숲내음이 머물고 숲 내음 위에 산내음이 요동하고 산내음의 휘둘림에 새소리 바람소리가 생명의 소리를 실어 나른다. 생명의 원천이 흙에 있음이며 숨겨진 사랑이 있다. 천지창조로 부터 부여받은 불가사의하고 심묘한 치유의 힘이다. 창조주의 뜻이라서 흙내음이 사랑과 은혜를 한 껏 천지 가득 실어나른다. 흙내음이 상이된 마음자국을 더는 쓸쓸하게 하지 않으리라 따듯한 눈짓을 건네준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향수란 허허로움을 안고 동쪽 한반도로 귀를 쫑긋 세우고 살아가는 우리네들. 봄과 여름 사이에 빚어지는 작은 연민마저도 그저 흘려보내지 못하고 기웃대다 문득 문득 밀려드는 망향곡은 어이하려는지. 봄이 남기고 간 충만함으로 풍요한 여름의 기적을 기대할 수 밖에. 울다가 웃는 아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