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에 영국에서 활동했던 위대한 복음의 일꾼 중에 탐레이디라고 하는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라는 찬송가 가사를 지은 분입니다. 불행하게도 그는 폐결핵으로 인해 3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불후의 찬송시는 우리 믿는 성도들의 가슴을 영원토록 울려 줄 것입니다. 그가 쓴 찬송시 중에 우리가 즐겨 부르는 503장 찬송이 있습니다. 그 찬송 1절 가사는 이렇습니다. “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주 내게 순풍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이어서 2절은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라고 노래합니다. 1절에서는 이 세상을 순풍 만난 듯이 살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고백합니다. 2절에서는 큰 풍랑이 일어나서 몹시 힘들지만 그 가운데서도 천국 향해 가는 발걸음을 늦추어지지 않게 하시니 참 감사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탑레이디 목사님의 찬송시가 말해주고 있듯이 우리의 인생에는 순풍과 역경이 있기 마련입니다. 기쁨과 즐거움도 있지만 고난과 고통 또한 피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한 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한번 진지하게 들여다 봅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행복보다는 불행이. 형통보다는 고난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느 종교에서는 생노병사를 기본으로 해서 8고, 16고, 32고, 64고, 128고, 등의 여러가지 고난을 풀어나가는 고의 철학을 가르칩니다.
사람의 한 평생을 수많은 고난의 연속으로 보는 것은 분명히 일리가 있습니다. 이것을 놓고 너무 비관적인 태도가 아니냐 하고 의의를 제기할 분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 누구가 이 세상을 고통 없이 살 수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도 이 사실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이 땅에서 고통을 면제 받고 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예측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당혹하게 만듭니다. 언제 어디서 그 흉한 모습을 드러낼지 모르는 것이 고난입니다.
고난이 갖는 이 예측 불허심을 우리는 욥의 사건을 통해서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습니다. 욥기 1장 13절을 보면 제일 앞에 “하루는”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에는 굉장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루에”라고 한 그 어느 날에 정말 무서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욥의 운명이 하루 아침에 바뀌는 날벼락이 덜어진 것입니다. 그 날에 그처럼 기막힌 일이 생길 것이라고 욥이 꿈엔들 알았겠습니까? 그 날은 그의 자녀들이 맏형의 집에 모여 잔치하며 먹고 마시는 날이었습니다. 얼마나 흐뭇하고 화기애애한 사건들이 흐르고 있었을까요? 그러나 불행은 노크 없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예측 할 수 없는 고난이 찿아 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욥 처럼 묵묵히 하나님만 바라보는 인내의 신앙이 필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