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8일부터 27일까지 아내와 함께 애틀랜타에서 출발 동서형님 부부를 포함해서 한국에서 온 29명의 관광객 가족들과 파리에서 합류해서 대형버스로 파리를 출발 남 프랑스를 돌아보았다. 남의 문화와 역사를 직접 확인하고 나와 다른 민족들이 살아온 삶을 돌아본다는 사실은 나에게 늘 말할 수 없는 설렘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그래서인지 미국문학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마크 트웨인은 “인간은 배우기 위해서 여행을 해야 한다” 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스인들이 겔트족이라고 부른 프랑스를 로마는 라틴어로 갈리아라고 불다. 사실 프랑스는 켈트족의 일파인 골(Gaul)족이 기원 전 5세기부터 살던 곳으로 gallus(수탉)라는 켈트 어에서 유래했는데 외국인 혹은 별난 사람들 이란 뜻으로 서방 스키타이 인들과 연관이 있는 훈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닭이 동아시아에서 왔다고 라틴어를 포함한 서양의 모든 사전에 기록되어 있으며 프랑스의 상징동물이 닭이다. 이곳을 당시 로마의 집정관이었던 키이사르는 갈리아 총독으로 임명되어서 직접 군대를 이끌고 기원전 58년부터 8 년간 치열한 전투 끝에 갈리아를 굴복시킨 후 8권으로 된 갈리아 전기를 저술했다. 

일행은 버스로 파리를 출발 서쪽 방향으로 5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몽생미셸(Mont Saint Michel, 성 미카엘 대천사의 산) 수도원으로 향했다. 마이크를 잡은 우리의 여행 가이드 박 수자 씨는 몽생 미셸 수도원은 기원 후 708 년경 수백 에이커를 차지한 높이 80 미터의 바위섬 위에 미카엘 대 천사를 찬양할 의도로 피라미드 형태의 성당을 세우면서 시작되었고 10 세기 중반 경 베네딕트 수도원이 추가로 세워졌다고 설명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옥구슬이 은쟁반위에서 구르듯이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연상하게 하는 그곳은 천년의 요새와 같았으며 중세에 가장 인기있는 성지순례지 였다고 하는데 당시 로마 교황의 위엄을 느낄 수 있었다. 중세에 종말이 곧 오리라는 막연한 두려움속에 살던 몽매한 민중들에게 성지순례를 함으로서 천당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은 아마도 누구도 거부 할 수 없는 확실한 생명보험이었을 것이다. 

다음날 남쪽으로 5시간 거리에 있는 르와르 라는 지역에 도착했다. 프랑스 르네상스의 불을 당긴 프랑수아 1세는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초청해서 저택과 금화 700냥에 달하는 보조금을 매년 지원해 주면서 그의 창작을 후원했다고 한다. 다빈치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고 하는데 아름다운 클로뤼세 성의 레오나르도 공원을 산책하며 인생 말년 3 년 동안에 운하의 작동원리와 낙하산, 선개교, 헬리콥터, 기차, 자동차, 비행기가 날 수 있는 원리 등등 수백가지의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개발 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하며 그가 그린 모나리자도 이곳 클로뤼세 성에서 완성했다고 한다 있다. 나는 다빈치가 창작을 위해서 쓰던 기구들과 캔버스, 그가 남긴 메모와 글, 기체가 날 수 있는 이론을 정리하고 사람이 타고있는 모형까지 달려있는 비행기 등등 고스란히 보관된 작업실을 찬찬히 둘러보며 다빈치가 살았던 고귀한 삶의 체취를 느낄 수 있었다“. 늘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으로 사물을 보고, 눈에 보이는 세계보다 안보이는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고 말한 다빈치의 위대함은 어찌 말로 다 형언 할 수 있겠는가. 다빈치 공원을 나서면서 나는 한 인간의 위대함에 탄복하면서 나 자신이 그렇게 왜소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과연 나는 이세상에 태어나서 나를 길러준 천지자연(天地自然)의 은혜에 무슨 보답을 하고 가는 것일까? 불교에서 모든 인간은 카르마를 갖고 태어난다고 말하는데 과연 다빈치는 전생에 좋은 카르마를 갖고 태어난 것일까? 나는 동의하는 쪽을 택했다. 사실 카르마 란 현대적인 표현으로 DNA 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오후에 우리 일행은 클로뤼세 성에서 멀지않은 곳에 있는 쉬농소성을 방문했다. 이곳은 1574년 앙리 2세가 자신이 사랑하던 애첩 디안 드 푸아티에 에게 기증했다는 쉐르 강가의 웅장한 성채인데 한 여인에 대한 선물 치고는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도보로 거의 1만 3천 보를 걸어 다닌 우리 일행은 버스에 몸을 싣고 4 세기 이후 한 때 프랑스의 수도였던 뚜르로 향했다. 뚜르의 번화가에 있는 멋진 노천 식당 마리(Marie)에서 모두들 시원한 알작스 로렌 산 생맥주와 함께 저녁식사를 즐기며 여수를 즐겼다.      

.<다음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