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대학교(Virginia University)의 사회학자 헌터(J. Hunter)의 연구에 의하면, 미국 복음주의 신학생의 35%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는 실태입니다. 그리고 George Barna의 연구에 의하면, 현 미국 보수 복음주의 개신교도들 중의 35%가 “하나님은 모든 선한 사람들이 죽을 때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었는가에 관계없이 구원하실 것이다”는 주장에 동의한 심각한 현실입니다. 이것이 21세기의 'Postmodernism'의 실제상황의 한 단면입니다. 이 역사의 아이러니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던 2천 년 전의 상황과도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아이러니를 대변하듯이 예수님 당시나 오늘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나 인간은 예수님을 긍정하고 순복하기보다는 부정하고 불복종하는 서글픈 현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은 예수님이 스스로 자신을 가리켜서 "길(THE WAY, ὁδὸς , 그리스어로 '호도스')"과 "진리(THE TRUTH, ἀλήθεια 그리스어로 '알레쎄이아')"와 "생명(THE LIFE, ζωή 그리스어로 '조에')"라 말씀하십니다.

먼저 "길"이란 독립된 '두 존재' 사이의 연결, 즉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연결을 말합니다. 

인간의 길을 생각하면, 인도의 간디가 살았던 "비폭력무저항주의(Nonviolent resistance)"의 길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간디 스스로 주장하기를, “무살생(Non-killing), 비폭력(Ahimsa)은 가장 위대한 사랑이다. 그것은 최상의 법칙이다. 이것만이 인류를 구하는 유일한 길이다. 비폭력을 믿는 사람은 살아 있는 신을 믿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살아있는 신이신 그리스도를 인류구원의 유일한 길임을 입증하신 예수님께서 간디의 주장이 있기 이미 2천 년 전에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길을 걷기 위해 평생을 "기도와 말씀과 삶"으로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의(Self-righteousness)'입니다. 이 자기 의는 하나님의 최대의 적이라고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선포합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10:2-3)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자기의 의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는 성도는 가능성이 있는 성도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의’의 심각성을 알아야 십자가 앞으로 나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백성들 중에 대다수가 자기들의 의를 세우려고 힘써서 하나님의 의를 복종하지 않았던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지적한 “힘써”라는 단어를 주의해서 보아야합니다. 그냥 하나님의 의와 멀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의로움'을 세우려고 열정적으로 ‘하나님의 의’를 멀리 합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자기 의에 착념한 바리새인과 하나님의 의에 굶주린 세리의 기도"가 나옵니다. 바리새인은 상대평가의 유혹에 빠진 채로 심지어는 기도로 세리에 대한 직접적인 말로,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라고 토설한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자이신 그리스도는 절대평가의 중심이 있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상대평가를 다른 말로 한다면 비교의식입니다. 절대평가를 다른 말로 한다면 창조의식입니다. 절대자이시며 창조주이신 그리스도가 가지고 계시는 유일한 의, 창조적인 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에 대한 절대평가의 중심을 한마디로 말씀하십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길 되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제시하시는 길은 하나님의 의에 갈증을 느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람이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진리에 대하여 그리스도는 스스로 말씀하십니다. "나는 진리다."(요14:6) 예수님께서 자신을 "진리"라고 선포하실 때,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악한 자들의 거짓말이 막대한 승리를 거둘 때였습니다. 진리는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에서 예수님의 완전한 신뢰를 상기시킵니다. 또 예수님은 스스로를 "생명"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임종을 앞두고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부활과 생명이다." 몇 시간 안에 예수님 자신의 시체가 무덤으로 들어갈 그런 시점에 하신 말씀입니다. "인생"은 단순한 육체적 존재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사도 요한은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강력하게 선포합니다. "아들이 있는 사람에게는 생명이 있다."(요일 5:12)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존재유무에 따라 “하나님의 선택(선택받은 자)”과 “유기(버림받은 자)”의 기준이 된다고 합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고후 13:5) 생명의 귀중함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혼/魂)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혼/魂)과 바꾸겠느냐."(막8:36-37). 

이제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오직 예수 이름으로!’ 살 것인가?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으로 살 것인가? 전자(前者)는 생명을 목표로 살겠다는 선택이요, 후자는 죽음을 목표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예수만이 구원을 주시는 유일한 이름입니다. 오직 예수, 그분은 지금 우리에게 선택의 기로에서 갈팡질팡 헤매는 이 포스트모더니즘 세대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