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찾아나선 낯선 공원 후미진 둔덕에서 할미꽃을 만났다. 딸네집을 찾아다니다 눈 속에서 얼어버린 채 돌아가신 할머니의 전설이 서린 꽃이다. 등굽은 수줍은 몸 짓으로 곱게 피었는데 왜 하필 할미꽃이란 부름을 얻게되었을까. 들녘이나 무덤가에 자생할 뿐 아니라 검붉은 자주색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암술의 날개가 긴 은발마냥 아래로 늘어져 있다가 열매가 익으면 하얗게 부풀어올라 백발을 풀어헤친 형국이 되는터라 할미꽃이란 부름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일듯 하지만 겸손을 심상하며 아름다움을 지칭하는 이름을 얻을 수도 있었을 터인데 수묘한 생각에 머물게된다. 봄을 유난히 꽃이 피는 계절이라 불러주지만 실은 사계절을 아우르며 꽃은 피고 진다. 꽃이라는 통칭은 아름다움을 표상하는 대명사로 쓰임받고 있지만 인생의 괴로움과 인고의 진액이 응축되어 종국에는 생의 정점을 아름다운 꽃처럼 피워내는 것 조차도 자연계의 꽃피움과 진배없음을 보게된다. 인생의 고통이, 생의 옹이가 꽃으로 표현되기도 하는것은, 존재하는 생명의 고뇌가 진주처럼 여물어 오묘한 결실로 피어나는 것이라서 세상의 고통과 멍에는 파국엔 꽃으로 피어나는 승화를 맞게되는 것이 자연의 순리요 우주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역설적 표현법이긴 하지만 구체적인 실상은 외로움이나 고단한 인생 노정의 번민의 휘달림 조차도 꽃으로 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자아의 방어기제로 누추함을 가치있는 것으로 치환하여 충족시키려는 충동의 기저라고도 할 수 있겠다. 


꽃이라 널리 이르는 표현을 둘러보게 되면 유년기를 꽃봉오리로, 청년기를 만개한 꽃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인간사에도 꽃처럼 피어나는 시기가 있고, 지는 시기가 있음도 새삼 눈여겨 보게 된다. 남은 날들이 까마득한 것만은 아니라서 나이듦을 미화하고 순화시키고 싶은 감각의 향상으로 인정 해주고 싶다. 꽃이 만개한 길목마다 그  뿜어내는 향내와 아리따운 자태로 하여 세상이 고취되듯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어둠침침함에서 밝음으로, 악다구니의 살벌함에서 부드러움으로, 어수선하고 혼잡함에서 가지런하고 정연한 질서의 결로 이끌어내고 있음을 보게된다. 꽃 피움이 냉담한 세상시류에서 온후한 다사로움으로, 어지러움과 흐린 세정을 맑고 투철함으로 세상을 투사하고 있다. 돌봄을 받지 못한 일그러진 것들이 오롯하고 숭엄한 존엄으로 새롭게 태생하는 신비를 드러내는 힘을 응집케하고, 불가사의하고 심오한 사명감 같은 투영을 보게된다. 여린 꽃 송이가 세상을 순화시키는 힘이 실로 오묘하다. 다부진 투지의 선양에 세상이 고무되고 있다. 


등 굽은 할미 꽃 마음을 노래해 본다. ‘ 할미꽃도 꽃이오니 꽃이라 불러주오. 왜루하고 애잔함이 그지없음이라서, 쉬 띠이지 않는 초라함으로, 울분과 상처, 온갖 풍상, 쓰라림, 어려움을 죄다 넘어섰다오. 아름다움에 미숙하고 화려함에 불숙하고 향내 또한 어설퍼서 서투른 몸짓까지 어이 한스럽지 않았을까요. 어줍고 부담없는 꽃이라하여 부대끼지 않는 세월만 있었으리요. 피어나기까지 정제된 씨알로 어둡고 딱딱하고 차가운 흙더미와의 동거도 마다않으며 긴 운둔의 시간을 순수와 올바름으로 꿋꿋이 지켜왔네요. 흙의 정감이 무한의 기운으로 순정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꽃피움만 바라봄이 아니라 고초의 응결을 꽃이라 불러주어야 할 것 같네요. 여하간에 등 굽은 할미꽃도 꽃으로 피어났으매 부르기 좋고 듣기 좋은 꽃이라 불러주오.’ 할미꽃의 노래가 오랜 여운을 끌고갈 것 같다.


응고의 시간들을 들먹이거나 논하지 않는 꽃의 아름다움이여. 감탄해 주지 않아도 깊은 눈 길을 주지 않아도 주어진 자태를 지켜내고 있다. 세상을 지적질하거나 함부로 비판하거나 관망하듯 도외시 해버리지도 않았거니와 세상을 발고하는 일 또한 상관없이 꽃 피움에만 열중해있다. 예뻐해주지 않든 외면을 받든 관여치 않으며 쓸쓸하고 차가운 세상을 따습게 하는 것이 본분이요 맡껴진 임무로 보내진 것이라 믿으며 충직과 성실로 꽃피움을 헌신해 온 것이다. 찬찬히 들여다 보면 세상을 따습게 만드는 일에 몰두해온 소중하고 귀한 꽃이 아니었던가. 각박한 세상살이에 부대끼며 바둥거려야만 생존할 수 있는 세상의 치열함 앞에 꽃이 지닌 생명의 신선함을, 맑음을 포착하라는 자연의 품새를 교훈으로 받아들이는 지혜를 붙들어야 하리라. 한 세상 도드라지지 않으며 할미꽃처럼 현적하고 평범하게 산다는 것도 황홀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