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의 민속명절이 다가오면 민족대이동이 떠올랐지만 이번 설날은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색다른 명절 모습이 연출될 것 같은 기대가 움칠댄다. 세계 여러나라에서 모인 선수들의 눈에 비친 한국 명절이며 전통풍습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내보이고 싶은 심정이랄까. 자태고운 한복으로 단장하고 세배다니는 설날 풍경이 어떻게 비쳐질까. 전쟁의 폐허 위에 의연하게 이루어낸 번영으로 IT강국, 첨단기술의 나라로 부상한 우리의 고국이라서 고유 문화와 5천년 유구한 역사를 가진 민족 혼에 흐르는 유유한 본질의 우수성이 널리 널리 알려졌으면 싶다.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있는 개성있는 우아미와 숭고미로 한국적인 미가 담겨있는 고전의상이며 토속적인 전통음식들과 예로부터 가지고 있는 특유한 민족성의 천성인 정(情)의 본질을 과연 얼마나 발견할 것이며 높이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를 마음껏 열어두어도 좋을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싶어서이다. 


 명절이 되면 고국 산하를 만나보고 싶은 그리움이 더욱이 간절해진다. 낯선 땅에서 고향을 두고온 외로운 이민자끼리 어깨를 기대며 살아온 이방인의 고단한 삶이었다. 갈피마다 끼어드는 향수 같은 건 사치라며 가만히 밀어두고 분주한 삶을 이어왔던 탓에 고향을 잊은 채 살아온 것이나 진배없다. 이민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 땅의 명절도 고국의 명절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반기고 지켜내지도 못하고 누려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느 것에도 깊은 동참이 어렵고 어정쩡한 스탠스가 피할 수 없는 숙명의 자세라는할 수 밖에. 삼십여년 전엔 아이들에게 명절옷을 입히고 가까운 분들께 세배드리고 떡국을 나누며 명절풍속 명맥을 고수하려했지만 아이들이 대학생활로 흩어지기 시작하고 결혼을 하면서 어언 그 풍속마저 아슴푸레하게 된지 오래이다. 다지털 시대의 흐름에 실려 명절 풍경이 깃든 영상이나 문자를 전화기에 올리는 것으로 고작 명절풍습을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명절날 풍속도의 근원은 가족의 결집이요 이웃을 돌아보는 나눔의 실천이다. 아무래도 민속명절하면 한가위 보다는 설인것 같다. 일년을 수고한 보람들이 곳간 가득하고 해가 바뀌는 길목에서 친족과 친지 이웃을 향한 풍성함을 나눌 수 있는 계제요, 새해다짐을 더욱 견고히 새기는 계기로 삼을수 있는 여유로움을 지닐 수 있음이라서 일제 강정기시대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에도 꿋꿋이 지켜내려온 구정 설날이 더욱 정이 간다.


민속 전통명절이면 유년의 설날 풍경이 떠오르곤 한다. 푸짐한 음식이 부엌에 즐비하고 음식에서 풍겨나는 풍미도 즐거움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집안 어른들께 큰 절을 올리고 새뱃 돈을 받는 세배 풍경이며 어머님이 손수 바느질하신 설빔을 입고 새배를 다니던 즐거움이 할머니가 된 지금까지도 고운 추억으로 남겨져있다. 사촌과 또래들끼리 어울려 동네 일가친척들께 새배를 올리고 푸짐한 상차림으로 과식을 하면서도 연신 어울려다녔던 기억까지. 한바탕 세배퍼레이드를 끝내고나면 남자 아이들은 재기시합이며, 쥐불놀이, 팽이치기, 연줄을 자르는 연 싸움, 썰매경주로 우루루 몰려다녔고 여자 아이들은 널뛰기로 한 껏  흥을 돋우며 밀려다녔다. 집안에선 윷놀이 판으로 편을 나누어 응원전 까지 곁들인 재미와 즐거움과 풍요가 설날의 설레임의 정점을 찍는다. 한 해를 살아온 삶의 등짐을 모두 내려놓으며 벗어버릴 수 있는 세시 풍속의 지혜로움을 엿보게 된다.


설날 전날 밤 제야에 잠을 자면 눈썹이 새얗게 센다는 말에 졸음을 참았던 습속이 떠오른다. 섣달 그믐 밤 부터 대문을 사통팔달 열어둔다. 해가 지면 아낙들의 대문출입이 통제되었던 시절의 묵은 야사거리다. 새벽이면 복조리꾼들이 골목 골목을 돌며 복조리를 담장 너머로 마당으로 던지며 ‘복들어 갑니다’하는 외침들이 이른 새벽을 쩌렁쩌렁 울리고 다녔다. 농경시대의 풍습으로 식량이 넉넉하기를 바램했던 민족정서의 유래였다. 설날의 설의 어원의 비롯 또한 몸을 사리다에 어근을 두고있기에 조심성있게 경계한다는 뜻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설날 아침을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사리듯 맞이하는 것으로 발 길은 닿지 못하지만 고향 설날 정서를 되새김 해야 할 것 같다. 이국에서 맞는 설날 풍경은 친지들과 정겨운 안부와 덕담을 나누며 훈훈한 설맞이를 하는 것으로 족해야할 듯하다. 이방인으로 지낸 햇수가 깊어갈수록 고향 설날 풍경은 노구의 눈 앞을 가리는 안개처럼 서서히 사위어 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