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은 만약의 사태 우려 붙들지만

‘자의퇴원서’ 쓰거나 무단 귀가 늘어나

 

 

노인은 한사코 퇴원하겠다고 우기는데 병원 측은 안 된다고 만류한다. 환자는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성화를 부리지만 의사들은 규정을 지켜야 한다며 꿈쩍도 하지 않는다.  병원에서 더러 접할 수 있는 광경이다. 의사의 권유를 뿌리치고 환자의 임의대로 귀가하는 이른바 자의퇴원(A.M.A.)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기어이 나가려면 “자율적 판단에 따라 의사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는 내용의 문서에 서명을 해야 한다. 퇴원 후 발생할지 모를 상황에 대한 책임소재를 확실히 밝혀두는 작업이다.   

 

 

 

우선 윌리엄 캘러한의 사례부터 살펴보자. 뉴저지 외곽에 거주하는 그는 지난봄 걸어 이웃집으로 향하던 중 거의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당시 82세였던 그는 심장 병력을 지니고 있었고 수년째 치매가 진행된 상태였으나 거동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고 성격도 사교적이었다.   

캘러한은 금방 정신을 차렸지만 이웃은 불안한 마음에 911에 신고했다.  연락을 받은 그의 장녀 에일린 캘러한은 부랴부랴 지역 병원의 응급실로 달려갔다. 에일린은 뉴욕 마운트 사이나이 병원의 노인병 전문의다.  딸이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윌리엄은 멀쩡한 모습으로 침대에 앉아 주변사람들과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CT스캔과 혈액검사 결과, 심장박동, 바이털 사인 등 모두가 정상이었다. 에일린은 아버지가 탈수증을 일으켰던 것이라 판단했다. 

윌리엄이 집으로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자 에일린은 응급실 의사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힌 후 “내가 직접 밤새 지켜볼 터이니 아버지를 퇴원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응급실 의사는 “하룻밤 더 경과를 지켜보고 아침에 심장전문의의 소견을 들은 후에 퇴원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며 막무가내로 버티었다.  

병원에 그대로 두면 아버지가 익숙지 못한 환경에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섬망에 시달리거나 낙상을 입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에일린으로서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날 밤 윌리엄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병실에서 몇 시간을 서성거리며 보냈고, 급기야 가슴에 부착한 심장모니터 장치를 자신이 직접 떼어내는 등 심한 불안 증세를 보였다. 게다가 다음날 아침 일찍 올 것이라던 심장전문의는 오후가 지나도록 코빼기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아버지가 거의 발작상태에 도달하자 에일린의 여동생은 뉴욕으로 돌아간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버지를 퇴원시켜야 한다”며 아우성을 쳤다.  

결국 그녀는 다시 병원을 찾아가 아버지를 대신해 자의퇴원 서식에 서명을 했다. 

이런 일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난다.  주로 젊은 환자들 사이에 자의퇴원이 많지만 2013년도 전국차원의 대규모 샘플을 분석한 노인병학회 저널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입원환자들 가운데 5만 650명이 의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병원 문을 나섰다.  

보고서의 주 저자인 마운트 사이나이 아이칸 의과대학 역학전문의 반트 포에란 박사는 “실제 숫자는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자의퇴원서에 서명조차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응급실을 걸어 나가 사라져버린 환자들의 수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계속 그 숫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자의퇴원서를 제출한 노인환자는 4만 5,535명이었다. 퍼센티지로 환산하면 0.37%에서 0.42%로 증가한 셈이다.  

위스콘신 메디컬 컬리지 생명윤리학 센터 디렉터인 아서 더스 박사는 “이 문제는 병원이 직면한 최대의 딜렘마”라고 지적했다. 도움이 필요해서 병원을 찾은 환자가 자의퇴원을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갑자기 몸 상태가 호전됐거나 의사가 설명해준 치료절차에 덜컥 겁을 집어 먹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자의퇴원 결정에 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게 문제다. 마운트 사이나이 자체 조사에서도 저소득자들 가운데 자의퇴원이 유난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의료진에게 묵직한 윤리적 부담감을 얹혀준다. 돈 때문에 자의퇴원 한 환자들은 일반적으로 사망률과 재입원률이 높다. 설상가상으로 메디케어는 환자의 재입원 비율이 높은 병원에 벌칙을 가한다. 병원으로선 이래저래 자의퇴원을 기를 쓰고 막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이것이 자의퇴원서가 중요한 이유다. 자의퇴원서에는 의사가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을만큼 명료한 의식을 지닌 환자, 혹은 그 대리인에게 자의 퇴원에 따르는 위험을 충분히 설명해주었고 확인을 받았다는 조항이 담겨 있다. 

따라서 행여 환자가 퇴원 후 사망했을 경우 예상되는 소송을 피해갈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법원은 자의퇴원서에 큰 무게를 두지 않는다. 법정에서 자의퇴원서의 비중은 “없는 것 보다는 낫다”는 정도에 그친다.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상당수의 의사들은 고집을 세우거나 따지듯 대드는 환자를 못마땅해 한다. 그리고 이런 감정은 곧잘 환자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이렇게 되면 의사와 환자 사이에 불신과 갈등이 비집고 들어선다. 그리고 환자의 나이가 많을수록 이런 충돌은 잦아진다. 

설령 처음 병원을 찾았던 문제를 해결했다 하더라도 입원은 노인 환자들에게 상당한 리스크를 안겨주기 마련이다. 

꼭 돈 문제가 아니더라도 노인들에게는 퇴원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노인병 전문의들도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고령 환자들의 입원치료를 원치 않는다. 그 중 한명인 에일린 박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이든 환자들을 병원 밖에 머물게 하는 것이 우리의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높다.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 소재 하이랜드 병원의 코델리아 스턴스 박사는 “자의퇴원을 한 환자들은 같은 병이 재발했을 경우 다시 병원에 오기를 꺼리는 경향을 보인다”며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추가 스캔을 위해 하루 이틀 병원에 더 머무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퇴원하겠다고 조바심을 내는 환자에게 그가 집에서 키우는 앵무새를 데려다 주자 금방 안정을 되찾았다”고 소개하고 “자의퇴원과 관련해 우리에겐 좀 더 유연한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시카고에 거주하는 시인 바바라 바그는 버스정거장에서 쓰러진 뒤 인근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그녀는 바로 병원 앞에 있는 자신의 주치의에게서 치료를 받기 원했지만 병원 측은 그녀의 퇴원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진출처: Whitten Sabbatini/뉴욕타임스>
시카고에 거주하는 시인 바바라 바그는 버스정거장에서 쓰러진 뒤 인근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그녀는 바로 병원 앞에 있는 자신의 주치의에게서 치료를 받기 원했지만 병원 측은 그녀의 퇴원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진출처: Whitten Sabbatini/뉴욕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