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은 역사의 뒤안길로 갔습니다. 이제 대망의 새해, 2018년 새날 새아침을 멋지게 기쁘게 맞이하도록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메시지는  "다시 서기"입니다. 본문 출3:5절은 모세가 실패의 인생으로 광야에서 40년을 허송한 다음에 호렙 산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시기입니다. 지난 세월, 그의 인생 초반 40년은 화려하고 '번쩍번쩍'하는 세월이었습니다.

화려한 왕궁에서 왕자로 귀족생활 40년, 그 후 후반 40년,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빈털터리 나그네 신세로 40년, 이 각고의 세월을 겪게 하신 하나님께서 다시금 하나님 앞에서 "코람데오의 축복(Blessing of KORAMDEO)"을 주신 것입니다. 바로 그 자리, '타지 않는 관목의 불꽃 앞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신 것입니다.  

대체로 인생이 넘어지는 경우는 대략 통계적으로 다음과 같은 경우에 넘어집니다. ▲인생이 절망의 수렁에 빠졌을 때 입니다. 어떤 자들이 이 절망의 수렁에 빠질까요? 존 번연(John Bunyan)은 그의 명저(名著), "천로역정(天路歷程, Pilgrim Progress)"에서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이 절망의 수렁에 잘 빠진다."고 말합니다. 

그에 의하면, '변덕쟁이와 크리스천'이 이 진흙수렁에 잘 빠집니다. 그 진흙수렁의 이름이 '절망의 수렁'입니다. 절망의 수렁은 예수를 믿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시험을 말합니다. 죄의 질책으로 영적 각성이 일어나서, 하나님께 용서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그리스도를 찾아갈 때, 일어나는 '의심과 회의'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절망의 수렁이란 인생이 나약해졌을 때, 받는 세 가지, 즉, "마음의 시험과 의심과 회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율법주의 및 형식주의에 빠졌을 때 

일반적으로 완벽주의자들이 취하는 삶의 패턴입니다. 진정한 기독교인(참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형식주의적 도덕성과의 결별을 뜻합니다. 갈라디아서는 "할례 받는 일은 무익한  일이니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21세기 오늘날의 할례는 무엇이 할례일까요? '김 교신'이라는 학자는 "모든 '율법주의, 의식주의, 형식주의'는 이 할례의 이명(異名)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써 이 율법주의, 형식주의, 의식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선택의 문제 앞에 섰을 때 

모세는 지금 하나님 앞에서 불타는 관목 가시떨기 나무 앞에서 '과거'로 돌아갈 것인가? 비전과 소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 기로 앞에 서 있습니다. 

인생이 자빠지는 경우는 이런 선택의 기로 앞에 서 있을 때, 마치 햄릿처럼 "To be or not to be, that is question(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러므로,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는 자들이 이 미궁에 잘 빠집니다. 

▲무거운 짐으로 넘어질 때

모세가 왕궁에 살면서도 그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다름이 아니라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자국인이 불이익을 당하고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 학대와 멸시 속에 빠진 것을 보고 그는 "갈등과 번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결국, 자기 스스로 가진 힘을 발휘하다 그는 그 무거운 짐으로 인하여 넘어졌습니다. 살해는 곧 도망자의 신세로 실패자의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습을 바로 지적하셨습니다. "무거운 짐 진 자". 이 무거운 짐이 마침내 "자기소진(自己消盡)" 소위 "Burn out"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시험의 산에 올랐을 때

깨어있는 자는 시험의 산에 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총애를 각별히 받았던 세 명의 제자,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께서 지적하셨던 것처럼, "졸다가 자다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게 됨으로써 그들은 시험에 들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준비가 없이는 반드시 이 시험의 산에 오르게 된다는 것을 우리 예수님께서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극단적 '위기상황'에 있을 때

누구나 돌발 상황, 예측불허의 상황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극단적 위기상황"이라 합니다. 왕궁에서 호위 호식하며 편안하게 지내던 모세에게 "도망자의 신세, 광야의 떠돌이 신세"가 될 줄은 꿈에도 상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12-13에서 "비천에 처할 줄을 알라. 풍부에 처할 줄을 알라. 배부름과 배고픔과 궁핍에 처할 줄 알라. 이로써 일체의 비결을 배운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극단적 위기상황은 불현듯, 부지불식(不知不識)중에 찾아온다는 것을 모르는 자는 이 위기 상황에서 결코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허영심에 넘어졌을 때

헛된 교만과 자만심이 바로 허영심입니다. 허영심은 궁색함의 위장이요, 마음의 배고픔입니다. 허영심으로 인해 인생은 넘어집니다. 허영심의 끝은 인생의 종말입니다. 함께 주의 일을 감당하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서로 생각이 다르고 우선순위가 달라도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마음, 나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나를 우위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더욱 존중하고 세워주는 마음이 이 마음이 결여될 때, 사람의 인생은 바닥으로 치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2:3에서, "아무 일에든지 허영으로 하지말라!"고 한 것입니다. 

▲실수투성이 일 때

고전10:12에,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약한 자들이 넘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강한 자들도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들은 더욱 크게 다칠 수가 있는데, 넘어지는 것에 대하여 익숙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방비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하는 일마다 연속적으로 실수로 이어진다면 사람은 그가 누구든 서 있을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지적한대로, 서 있다고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한 순간인 것입니다. 

▲의심으로 흔들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세가 호렙 산 불타는 가시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 앞에 홀로 섰을 때, 그는 자신감을 잃어버린 상태, 가슴은 답답하고 머리는 무겁고 눈앞이 캄캄한 때였습니다. 이와 같은 연약한 인생의 모습은 인생이 비전과 소망을 상실했을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기도의 대석학, E.M. 바운즈"는 '인생이 의심으로 흔들릴 때가 언제인가? 

그리고, 이 의심으로 흔들리는 자신을 무엇으로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진단해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 역사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시는 한 기적도 살아 움직인다. 기적이 바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의심으로 비틀거리거나 두려움에서 비롯된 "뒷걸음질 때문에" 흔들릴 때, '기도는 난쟁이처럼 위축되고 마른 가지처럼 말라 죽으며 돌처럼 단단해진다'"고 경고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와 같이 인생이 바닥으로 칠 때, 어떻게 다시 서기를 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 모든 해결책을 단번에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신은 곧 우리의 과거입니다. 신은 곧 우리의 현재입니다.

신은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는 앞으로도 바꾸지 않을 우리의 막연한 미래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원하십니다. 바닥으로 치닫았던 과거, 바닥으로 치닫고 있는 현재, 바닥으로 치닫을 막연한 미래와 결별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 21세기의 모세인 우리는, 아직도 바닥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에게, 우리가 서있는 이곳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로 세우실, 다시 세우실 "거룩한 땅"입니다. 2018년도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기적"으로 다시 세우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