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바람도 하늘빛이다./사랑하는 사람들 끼리/주고받는 말들도/기도의 말들도/ 모두 너무 투명해서/두려운 가을빛이다./들국화와 억새풀이 바람 속에/그리움을 풀어 헤친 언덕길에서/우린 모두 말을 아끼며 깊어지고 싶다.”<가을 빛> “이해인” 수녀님의 시.
애틀랜타의 가을 빛 찬란한 향연이 마음을 한없이 풍요롭게 하는 때이다.
가을 빛 그윽한 풍경 속에서 마음이 깊어지고 싶다.
가을의 해맑은 햇살이 비껴드는 아늑한 분위기의 실내에는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가 감미롭게 흐르고 있다.
“리처드 클라이더만”이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는 느낌을 손끝의 미세한 떨림으로 표현한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피아노의 선율은 감성의 극치를 이루는 투명한 사랑의 시어이다.
정다운 사람과 깊은 마음을 나누는 시간은 꿈결처럼 감미롭고 아늑하다.
가을 빛 고운 선율이 영혼의 순수한 기쁨으로 가득 채우며 가슴에 곱게 채색 되는 날들이었으면 하는 소망이다.
“색채는 빛의 고통이다.” 문호 “괴테”가 한 말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모든 색채가 빛의 고통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빛의 고통은 어둠이 아니라 아름다움이라고” 시인 정호승의 산문집에서 나오는 한 구절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는 과정에 자연이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은 빛의 고통에 의한 것이기에 겸허한 마음이 든다.
어쩌면, 인간 삶의 고통도 인간의 원숙한 인격을 키워내는 고결한 삶의 흔적일 수 있으며 고통의 의미를 승화 시킬 때, 빛을 발하는 삶의 그윽한 향기로 남을 수 있다.
비르투오소(대가) 정경화도 바이올린의 빛나는 명연주자로서 오늘이 있기까지의, 정신적 심적 고통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승화 시킨 고결한 인품의 연주자이다,
그에겐, “여성과 동양인이라는 편견과 싸워야했던” 고통스러운 날들이 있었다.
“연주 중 한 음이라도 틀렸을 경우 20시간 이상 피 눈물 나는 연습을 거듭했던” 불굴의 의지로 세계 정상에 우뚝 선 바이올린의 대가가 되었다.
그는 “재능이란, 조심스럽게 키워져야 하며 일생동안 갈고 닦아야 한다.”라고 언젠가 술회한 적이 있다.
이 가을에 색채의 향연을 더욱 풍요롭게 할 그의 명연주를 꼽는다면, <맥스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스코틀랜드 환상곡>이다.
“루돌프 켐페”가 지휘하는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정경화의 전설적인 명반이다.
이곡 <스코틀랜드 환상곡>의 제1악장은 관현악의 환상적 울림, 꿈길 같은 바이올린의 서정적인 선율은 고색창연함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악장이다.
하프의 투명한 울림은 신비로움을 더 하고 바이올린의 낭만적(몽환적)인 선율은 풍만한 음색으로 노래한다.
정경화는 겸손을 아는 연주자이다. 그는 아직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을 녹음 하지 않고 있다. “모차르트” 음악은 아직 도전할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격정적인 연주 “브루흐” “시벨리우스” “차이코프스키”곡에서 보여주는 열정적이고 현란한 운궁과 매혹적인 풍만한 선율, 절묘한 기량은 환상적인 낭만의 진수를 선사하고 있다. “맥스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과 함께 수록된 이곡은 1972년(20대)에 영국 “데카”음반 회사에서 기획 녹음한 연주로서 지금도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명연주이다. “루돌프 켐페”는 애석하게 일찍 타계한 지휘자이다.
정경화와 그가 빚어내는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색채감 넘치는 유려한 연주는 “브루흐”의 낭만성을 마음껏 뿜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