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시편의 첫 번째 시를 통하여 표현하자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의 이 시대를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라 일컫습니다. 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의 현저한 정체성은 “절대성의 가치”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상대자의 절대화”를 통하여 개별적인 진리를 추구하며 사는 세상입니다. 그 부산물로서 사람들은 밤낮으로 “스마트 폰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절대성의 가치를 부인하게 됨으로써 그 속에 텅 빈 공허함을 채우려고 21세기 최첨단 컴퓨터의 기계적 희열을 찾아 모든 중요하고 긴급한 가치를 가장 무가치한 존재로 전락시키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한 곳에서 정착하는 것을 불만합니다. 똑 같이 연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에 식상해 합니다. 그래서, 항상 “새로운 패턴”을 찾아 끊임없이 방황하며 갈급한 세대가 지금의 포스터모더니즘의 세대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할 수 있는 이스라엘의 믿음의 조상들 가운데 작자 미상의 한 시인이 그 시대상의 모든 상대적 가치의 절대화로 유인하는 유혹을 뿌리치고 오직 하나의 가치를 절대화하여 그 절대화된 가치를 자신의 마음에 밤낮 주야로 거기에만 매달리며 살았습니다. 
그는 그러한 행위를 “묵상”이라는 단어로 압축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영혼을 송두리째 쏟아 부어서 온전히 거기에만 모든 생각을 집중하게 만든 것이 무엇일까요? 구약성서 가운데 “지혜문학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시편』 가운데 인류에게 영원히 회자되고 있는 시편 1편에서 그것을 절대자 여호와의 이름을 걸고 말씀하기를, “여호와의 율법”이라 했습니다. 이것을 “절대자 여호와가 기뻐하시는 모든 것”이라고 현대어 성경은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든 것을 단 한 단어로 함축해서 “여호와의 말씀”이라 한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그의 정신, 영혼, 몸의 모든 집중력을 오직 하나에 집중하는데 그것은 바로 이 우주 만물, 온 세상이 창조되게 만든 근본적인 원동력인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 가지가 잘 되게 만듭니다. 첫째는, 우리의 영혼이 잘 되게 합니다. 둘째는, 우리의 범사가 잘 되게 합니다. 셋째는, 우리의 건강이 잘 되게 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사도 요한은 그가 기록한 요한서신서 가운데, 요한3서 1장 2절에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역으로 말하면, 영혼이 잘못 되면, 이 한 가지만 잘못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들이 헝클어지고 뒤죽박죽이 됩니다. 
모든 일이 무질서하게 되는 순간, 그가 아무리 모든 일들을 잘 되게 만들려고 밤낮주야로 애를 쓴다 해도, 오히려 그것이 부작용을 일으키게 됨으로써 그의 건강도 다 망가지고 만다는 말씀입니다. 시대가 과학첨단기술의 지름길로 전속도로 달린다할지라도 절대자 하나님의 말씀은 그보다 더 앞질러 갑니다. 
과학이 시행착오를 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때, 온 우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일점일획도 실수가 없으신 정확무오하신 말씀으로 역사하십니다. 히브리서 13:8절에, 하늘의 하나님과 세상의 인간 사이에 최초의 인간 아담의 타락(창세기 3장)으로 인하여 찾아온 자범죄와 질병과 죽음으로 인한 죄의 장애물이 이 둘 사이를 분리시킨 것을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는 대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의 벌어진 간격을 화해자로서 화평의 관계로 바꾸신 것을 한 마디로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시대의 변화가 아무리 거듭하고 또 거듭한다 하여도 이 진리는 변함없이 영원합니다. 
첫 번째 시편의 저자인 시인은 이 진리를 밤낮으로 붙들고 그것만을 절대적 가치로 묵상하는 자를 “복 있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공허함을 메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공허하고 우울함이 떠날 날이 없는 이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길입니다. 
시인은 노래합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늘 푸른 나무에 비유합니다. 잎사귀는 언제나 시들지 않고, 계절에 따라 가장 적절한 결실로서 열매를 맺는다고 노래합니다. 이 복 된 노래의 주인공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 공허한 시대에, 이 우울한 시대에 언제나 행복자로서 승리자로서 살아가시지 않겠습니까? “복 있는 사람”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