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받은 이-메일)
- 안녕하세요?
아아, 이렇게 문득 이-메일을 보내도 되는 것인지..
제 소개는 어찌 드려야 할지 몰라서 며칠을 망설였는데,
남편의 응원으로 조심스레 인사 드립니다.
저는 어렸을 적에 서울 * *동 에서 자랐고 28년 전에 미국 와서 플로리다에
정착하고 사는 김옥미에요 20년 전에 이름을 필명으로 바꾸어 아리수로 살고 있습니다.
늘 향기로운 꽃처럼 아름다우셨던 ‘아줌마’로 제 가슴에 살아계셨어요
어쩌면 영웅처럼..
아줌마란 표현이 좀 불편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철없을 적에 제 기억이 그러 했어요.
때때로 보고 싶고 어디 사시는지도 궁금했습니다.
물론 훈이 오빠도 말이에요
제가 휴스턴에 남편 출장 따라와 있습니다. 그리운 목소리 조심스레 기대해봅니다 -
최근 인터넷에서 내 이-멜 주소를 찾아 나타난 사람이 벌써 네 번째다.
작년 여름에 처음으로 나를 찾는 사람은 20대 새댁시절에 옆집 중학교 남학생이었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글을 읽다가 사진을 보니 그 시절의 아줌마라며
벌써 자기가 일흔 살이 되었다고 한다.
그 학생이름이 기억이 나서 한참 통화를 하였다
물론 부모님은 다 돌아가시고 나와 동갑내기 큰 누나도 벌써 병사하였다고..
젊은 시절 TV드라마를 보면서는 용기가 없어서 전화도 못했다고 한다.
애틀랜타에 출장을 다녀갔다며 만나지 못 한 것을 서운해 하였다
두 번째는 지금 뉴질랜드에 산다며 옛 은사님의 따님이 나를 찾았다
성악을 전공한 그녀는 지금 화가로 변신해있다 친정식구들은 모두 떠나셨고....
우리는 옛 생각으로 한참을 흐느꼈다.
세 번째는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죽지 않고 살아있어 연락이 닿았고
인터넷이 이렇게 쉽게 내 이-멜 아이디까지 나올 줄은 까맣게 몰랐다
난청이라 겨우 통화하였다 기막힌 세상... 무서운 세상 ...
어제 받은 이-멜은 모르는 이름이기에 하마터면 삭제할 뻔 했다 50년 전
한마당에 살던 집 막내딸 이름이다 당시 초등 2학년생이었고 내 아들은 3학년 이었다.
자기가 그 시절 내 아들 (훈이오빠)를 좋아했다고 한다
고 어린것이 ... 그럴 수 도 있겠지 ... 흠흠 ..
밤 11시 넘어 까지 한 시간을 통화하였다 플로리다에서 28년을 살고 있으며 남편이 미국사람이란다 사진까지 바로 보내왔다
얼굴이 희미하게 기억이 나고 그 가족들이 떠올라 모두 안부를 물으니
어른들은 다 떠나셨다고 한다. 그 당시 그의 부친께서는 공무원이셨는데
구봉서씨가 중학교 동기라고 하셨고 친구들이 구봉서를 매우 좋아했다고 했다
매일 한 가지 이상 재미있는 얘기로 한바탕씩 웃겼다고 하였다
그 무렵 구봉서씨는 당대 톱 코미디언이었다.
단발머리 어린이였던 아이가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가 젊은이답게 인터넷으로 바로 찾았다.
이제부터 나를 어머니라 부르겠다며 착하게도......
애틀랜타에 시누이가 있어 가끔 온다니 내 집에도 오겠고 나도 플로리다에 못 갔는데 갈 기회가 있을 것 같다.
그 어린애가 내년이 환갑이 라고 한다. 아!
오래 살고 보니 이렇게 좋은 세상이 되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이 기쁜 얘기들을 말할 사람이 없다 남편이 살아있다면
그 시절을 물론 기억 못하겠지만 이런 얘기를 얼마나 재미있게 들을 것인데....
이런 얘기를 꼭 글로 쓰라고 하였겠는데..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남편이 내 얘기를 재미있게 듣는 것처럼은
그렇게 글을 쉽게 재미있게 쓰기는 어렵다
장 이 탈이 나서 열흘 이상 잘 먹지 못하고 힘이 빠져 있다가
어제 기쁜 통화를 끝내고부터 힘이 솟아났다 그때 나는 발랄한 30대 초반이었다
연극을 전공한 나는 항상 무대를 꿈꾸며 살고 있던 때다.
아! 옛날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