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메리카에 자리잡게 되는 최초의 영국 식민지의 하나는 제임스타운이었다. 제임스 1세가 버지니아(또는 런던)회사에 부여한 특허를 토대로 해서 1607년에 약 100명의 이민이 체사피크만을 향해 떠났다. 그들은 스페인인들과의 충돌을 피해 제임스江 하구로부터 약 60킬로미터 상류에 정착촌의 터를 잡았다. 도회지 사람들과, 농업보다는 황금을 찾는데 더 관심이 많은 모험가들의 집단인 이들은 그 기질이나 능력에 있어서 황무지에서의 완전히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기에는 부적합했다. 그들 중 존 스미드 선장이 단연 유력한 인사로 나타났다.
정착민 간의 싸움, 굶주림 그리고 인디언들의 습격에도 불구하고 스미드 선장의 통솔 능력으로 해서 이들 정착민 집단은 첫 해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1609년에 스미드 선장이 영국으로 돌아가서 없는 동안에 이 식민촌은 무정부 상태로 되고 말았다. 1609~1610년의 겨울 동안에 이들 정착민들의 대부분이 질병으로 죽고 말았다. 1610년 5월 현재로 살아남은 사람은 300명의 정착민 중 겨우 60명 뿐이었다. 그해에 제임스강을 좀더 거슬러 올라간 지점에 헨리코 (지금의 리치몬드) 읍이 건설되었다.
. 1612년에 존 롤프가 서인도제도로부터 들여온 연초의 씨앗을 아메리카 토착의 식물과 교배하기 시작하여 유럽인의 취향에 맞는 신품종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이 연초의 첫 출하물은 1614년에 런던에 도착했다. 그로부터 10년 이내에 이 연초는 버지니아의 주수입원이 되었다.
그러나 번영은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질병과 인디언들의 습격으로 말미암은 사망률은 여전히 엄청나게 높았다. 1607년~1624년 간에 약 1만 4,000명이 버지니아로 이주했으나 1624년 현재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의 수는 겨우 1,132명 뿐이었다. 영국왕이 위촉한 위원회의 건의에 따라 영국왕은 버지니아 회사를 해체하고, 그해에 그것을 왕립 회사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