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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마음 여백

지역뉴스 | | 2020-08-01 12:12:26

김정자,행복한아침,마음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

 

여럿이 둘레둘레 어울렸던 것 보다 조용하고 소박한 하루들을 오붓하게 보내는 시간들에 익숙해지고 있음이 신비롭다. 고즈넉한 분위기에 젖어드는 시간의 윤택이 일상 속으로 자연스레 이입되고 있다. 과잉 방역 후유증 같기도 하지만 주변에 항상 사람이 북적거렸던 것이 보람이요 가치있는 삶이란 착각에서 깨어난 셈이다. 노년의 존재 의미를 살피며 잔잔하고 단순한 일상에서 얻어지는 마음의 여백을 찾아나선 걸음이 이렇듯 홀가분할 줄이야. 베풂과 호의의 극한점에서 혼자이고 싶었을 때가 있었으니까. 신경 쓰이는 대상, 신경 써야하는 관계의 굴레에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한계 상황으로 벽에 부딪히곤 했던 번복이 없어지고 심신의 혹사가 줄어든 것이다. 

웬만한 잡담이 얼크러진 하얀 소음 속에서도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과민에서 벗어나고 있다. 마음의 여백에 꺾자를 그리듯 정체성의 질서가 흔들리는 주변을 투명하게 투시할 수 있는 담대함도 자리잡아 가고있다. 마음의 여백을 누릴 수 있는 평안의 본질을 찾아나선 것이다. 여백은 그저 비어있거나 비워둔 것이 아니라서 살아가는 노정에서 비워낸 빈자리에서 누릴 수 있는, 느껴지는 아름다움의 구성력은 삶의 에너지원으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힘껏 베풀었어도 관계가 버겁고 곤비해져 사람만나는것 조차 설겅거릴때 신발 뒤축을 접어신고는 매무새도 다듬지 않은 채로 문을 노크 할 수 있었던 오랜 친구가 그리워진다. 언제든 문을 두드리면 환하게 반기며 허물없이 따스한 안방 온돌에 다리를 묻고 미음의 추위까지 풀어냈던 시간들이 아슴하다. 감출 것 없이 풀어놓고 나면 마음이 평안해지는 오랜 친구가 그립고 아쉽다. 허물 없고 뒷담화 조차 없는 그런 사람이 쉬 떠오르지 않는 이국에서 여태껏 다듬어온 정(情)의 주거지가 겹겹이 쌓인 건초더미로 보인다. 방문의사를 알리고, 스케줄 조정 후에야 만날 수 있는, 거실이라는 한정 된 공간만이 방문객에게 허락되는 낯선 문화가 이국살이를 고단하고 정떨어지게 몰고가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서른 다섯해를 훌쩍 보내버린 그 즈음, 이민 보따리를 하나씩 풀어내던 그 때는 그랬었다. 묵은 아파트이긴 했어도 김치 겉절이 한보시기 들고 앞 집 옆 집 찾아다니며, 커피 한 잔에 情을 나누었고, 청국장 끓여놓고도 어울리며 마실다니던 이웃들이 그립다. 세월에 서리가 내리고 관계의 각질이 두터워지면서 입술은 친절한데 눈동자는 싸늘해져 가고 있다. 하기사 이땅에 먼저 건너와 터 닦은 같은 겨레끼리의 정서가 이질적으로 다가 왔었으니까. 우리네 고유의 끈끈한 情이 물에 기름처럼 겉돌았고 이국살이의 연조가 보이지 않는 눈금으로 적용되었던 터라 배타적이며 이기적인 면이 쉽게 받아 들여지지 않을 수 밖에. ‘저들보다 더 긴 시간을 이땅에 머물더라도 저들처럼은 되지 말아야지’리며 다짐을 했었는데 ‘긴 시간을 지내다 보니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네, 어찌 보면 그렇게 사는 것이 이성적이겠다’ 까지 변천사를 겪게 되었다. 합리적인 것을 앞세우는 이 땅 정서라서 어쩔 수 없음이라 누추한 변명을 해보지만 분명히 우리네 情은 피사의 사탑마냥 이미 기울어 버렸다. 언젠 가는 그 情을 아쉬워하거나 그리워하는 심성이 녹슬어 버리는 건 아닐까 후려가 저어된다. 갈수록 사람에 대한 무섬증이 인다. 낭패롭다. ‘기쁨을 나눴더니 시기가 되고, 슬픔을 나눴더니 약점이 되고, 배려를 했더니 권리인 줄 알고, 양보를 했더니 바보인줄 알더라’는 말이 어쩜 내맘 같을까. 이러한 말이 수긍될 만큼 세상이 갈수록 각박해져 가고 있다.

이 각박함 앞에 더는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응대할 용기가 줄어들 것이라 예감하게 된다.  여전히 세상에는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이웃이 있을 것이지만 다음을 기대하는 미욱은 범하지 않으려 한다. 나이듦이란 이름표가 오히려 젊은이들 앞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모습들을 저만치에서 지켜보게 되는 씁쓸함이 목에 가시처럼 걸린다. 이방인이란 자리 또한 더 없이 휑한 벌판이 되어 다가오더라도 더는 번잡한 주변을 만들고 싶지가 않다. 오랜 이방의 삶 끝에 서로 어깨를 기대며 체온을 느낄 수 있는 지인이 지난 날처럼 그리 많지 않다는 단순한 사실 만으로 큰 물줄기에서 지류를 떠돌고 있는 것으로 치부하거나 단언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차피 혼자서만 살 수 없는 존재라서 이러 저런 연결고리를 습관처럼 일삼아 찾아질 때도 있으려나 싶지만 팽팽하게 앞이 가로막히는 때가 수월찮게 많았기에, 함께 있어도 이해 받지 못하고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불합리가 어차피 번복될 것이라서 마음의 여백을 넓혀가며 할배와 함께 그리 불편하지 않을 만큼으로 유유자적 평안을 고수하며 살아갈 예정이다. 각자 저마다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라서 군중 속에서 지킬 것은 지켜가며, 예절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사람으로, 느낌 좋은 사람으로 부부상을 그려갈 것이다. 방역에 열중한 보상으로 진솔한 삶의 여백에 눈뜨임한 것이다. 아무래도 방역 후유증이나 부작용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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