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 권명오.
수필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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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한국 38년(15회)
날치기 인민 재판
8월 중순 내무소원들이 적성면 일대를 돌며 내일 총궐기대회가 있으니 18세 이상 젊은이들은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국민학교로 모이라고 하면서 불참할 경우에는 책임을 묻고 엄벌에 처할 것이라고 했다. 15 살인 나는 해당이 안되었지만 형은 해당이 됐고 겁이 많은 형은 몸살이 났는데도 궐기대회에 참석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버지가 아픈데 어딜 가느냐고 호통을 치고 못가게 해 할 수없이 궐기대회에 불참하게 됐고 그 때문에 형은 의용군에 끌려 가지 않게 됐다.
그날 궐기대회는 의용군 강제징집 이였다. 청년들을 집합시켜 놓고 인민군 장교가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인민 공화국 충성스러운 적성면 청년 여러분을 환영 합니다. 위대하신 김일성 장군께선 남한을 완전히 해방 시키고 통일을 완수 하기 위해 여러분들에게 조선 인민공화국의 위대한 인민 군대가 될 의용군의 기회를 특별히 허락 하셨습니다. 이 영광스런 기회를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충성을 다 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중에 입대 할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한 청년이 앞으로 나갔다. “ 입대 할수 없는 사정이 무엇이요" “ 예 저는 외아들인데 병약한 노모를 모셔야 하기 때문에 입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요 여러분 인민공화국 의용군 입대를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거부 하는것은 반동 사상 때문인데 이런 반동 분자를 어떻게 하면 좋겠소” 그러자 각본대로 청년들 중에서 “ 그런 반동 분자는 인민의 적이요 그런자들은 당장 처벌해야 합니다. 불순한 반동을 처벌 하시요. 당장 총살 시키시요" 동시에 옳소 옳소가 장내를 압도 했다. 인민군 장교는 장내를 정리한 다음 ‘여러분들의 충성스런 뜻을 잘 알겠소. 다시 한번 묻겠소, 또 입대 할수 없는 사람이 있으면 앞으로 나오시요" 아무도 나오지 않고 말이 없자 “그러면 여러분들이 기꺼이 의용군 입대를 자원한 것으로 알고 환영 하는 바 입니다. 그리고 시급한 사정상 지금 곧바로 인민군 훈련소로 향할 것이니 나를 따르시요" 인민군은 어처구니 없게 궐기대회 현장에서 강제 의용군을 만들었다. 말로만 듣던 날치기 즉석 인민재판 이였다.
그 당시 의용군으로 끌려간 젊은이들 일부는 비행기 폭격을 통해 탈출을 했고 일부는 포로와 전사를 당했다. 날이 갈수록 천인공노 할 인민군의 만행과 발악이 치열해졌고 UN 군의 반격과 폭격이 강력해진 9월 부터 인천에 함포 사격이 시작됐다.
그 와중에 서울 진형구 아저씨 큰아들인 종식 씨가 자전거를 타고 왔다. 아버지는 그를 친절히 따듯하게 환대 했다. 6월 27일 밤 인민군이 서울을 진격 할 때 나를 놔두고 자기네들만 피난을 갔던 일 때문에 나는 마음이 불편 했다. 아버지는 내가 겪은 이야기를 듣고 분개 면서 서울놈들은 의리가 없다고 하셨던 것도 다 잊으시고 종식 씨를 자식처럼 도와주며 최선을 다했다. 종식 씨는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한 날 가정부가 학생이 방공호에 있는줄 알았는데 말도 없이 없어 졌다고 해 걱정을 많이 했다고 했다. 어쨌든 양식을 구 하려고 온 종식 씨에게 쌀을 잔득 실어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