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다고 정색을 하며 덥석 두 손을 잡는다. 외롭지 않으려는 몸짓이 동정심을 유발케할 뿐 아니라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한 가지 방법이 있긴한데, 한 번 실천해보실래요’ 두 눈이 반짝인다. ‘인간은 어차피 외로운 존재라서 외롭지 않게 사는 절대적인 비결은 없지만, 누구를 대하든 상대적으로 내가 바보가 되면 외롭지 않게 살 수 있어요’ 순간 눈동자가 흔들린다. 적당한 자기 버림이 관계의 윤활유가 되어진다는 것도 나이듦의 불로 소득인 셈이지만 손에 뒤어주듯 설명해 주지 않아도 깨달아가리라 믿어보기로 해야할 것 같다. 외모에서 풍기는 차도녀 느낌 부터 스스로의 존재감을 존중받아야하는 공주과에 속하시는 분이시라 난색을 표하시는게 당연하다 싶다. 계절의 흐름을 느끼고 노을을 만나면 아직은 감동이 일렁이기에 감성을 붙안고 있다는 노년의 작은 기쁨 조차 일상에서 찾게되는 감사가 아닐까. 평범에서 얻어지는 감사로 채워간다면 외롭다는 경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 터인데. 스스로를 고립시키지는 않았는지, 하나님과의 진정하고 올바른 교제가 이루어졌는지, 온전한 내려놓음을 위해 노력은 했는지,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발견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램하며 묵상의 시간을 마련하여 기도로 후원하기로 했다.
외로움도 어쩌면 외롭지 않아보이는 주위와 비교함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외로움을 털어놓으며 호소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다면 이미 외로움에서 벗어났다는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일터인데. 관계의 어려움을 이미 겪어 보았기에 외로움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는 조건들을 알고있다는 것으로도 마음의 겨울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초를 붙든 것이나 진배없는 것이 아닐까. 관계가 가난해 보일찌라도 마음의 풍요를 누리고 있다면 주변에서 외로워 보인다고 한들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곁에서 보기에 부러워할 만큼의 관계성의 여유를 보유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일찌라도 어쩌면 마음의 추위를 겪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추위는 옷을 따뜻하게 입으면 되지만 마음의 추위는 주위가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라서 겉모습만으로 행복의 수위를 가늠할 수 없는 법. 외로워보이지만 행복이 누릴줄 아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부러울 것 없어보이는 유복한 사람으로 보이더라도 마음이 춥고 가난한 사람이 있는 것은 감사의 분량이 그 척도를 구분짓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낳는 법이니까.
감사는 당연히 여기던 평범한 것들에 까지도 우리네 가까이에서, 손 닿는 곳에서 만져지고 있다는 것이다. 노년에 접어들었다며 짙어가는 외로움을 감상하기에는 인생은 짧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이는 들어갈수록 작은 추억에도 감동하고,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소소한 재미도, 인생을 관조하는 넉넉함도 텅 빈듯한 충만함으로 채워지고 있음에도 감사가 우러난다. 황혼녁에 이르도록 이어져온 길동무와의 아름다운 동행까지도. 피아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약한 음치기’ 라고 말했던 음악교사인 번스타인은 피아노를 가르치기 위해 매일 8시간 씩 연습을 한다고 했다. 여림에서 강열한 템포의 마련이 시작된다는 뜻이라 생각된다. 여림이 결코 약한 것이 아니듯, 특별한 것이 행복한 것이 아니며 평범한 것이 결코 불행한 것도 아니란 것이다. 부드러운 모성의 발로를 통해 강한 모성을 이끌어내듯 평범에서 찾게되는 감사를 제일 으뜸으로 삼고싶다.
노년으로 접어들었다는 기존 사실을 잊은 적이 없음에도 마음까지 동동거리며 노년의 둘레로 들어서지 않았음에도 감사하게 된다. 삶을 느긋하게 관망할 줄 알아서 작은 기쁨까지도 즐길줄 알아가는 신비함을 눈치채게 되었지만, 아직은 삶 속에 구석구석 제대로 접목하지 못한 어정쩡하니 구부정한 자세가 못마당할 때도 있다. 윤택한 자신감으로 당당한 품위를 잃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는 딸내들의 삶의 여정에 노년의 삶을 비추어볼 때마다 초라함을 금치못한다. 급 제동을 요란하게 걸기도 하고, 딴에는 가장 합리적인 속도라 자부까지 해가며 주춤주춤 느린 걸음을 고수할 수 밖에 없음에도 감사가 눈치없이 밀려든다. 시니어 아파트의 시간은 조금은 더 은밀한 것 같다. 시니어 아파트라는 여분의 시간이 머무는 곳에서 평범해서 감사하고 특별하지 않아서 감사한 지금의 내 일상이 참 좋다고 말해주고 싶다. 감사의 절기 앞에 외롭다는 그 분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