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봄 무렵이면 온 성도가 힘을 모아 봄 맞이 교회 대청소를 하게된다. 선교회별로 나누어서 실시하게 되는데 시니어선교회는 힘든 일을 감당해 낼수 없음을 배려 받은것인지 배당목록에 제외되어 있었다. 지난 해에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하는 자책과 아쉬움이 뒤섞여 얼떠름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마음으로 파킹넛으로 나와보니 예배드리는 시간 틈에 꽃가루 테러가 자동차를 노랗게 점령하고있다. 설상가상 집에 돌아와보니 얼결에 창을 열어두고 교회를 다녀온 댓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었다. 도저히 못 본척할 수 없는 정경이다. 꽃가루란 스며들지 않는 곳이 없음이라서 묵은 먼지와 함께 닦아내야 할 곳이 끝이 없어 보인다. 소매 긴 옷 입은 겸에 춤춘다는 속담처럼 아예 봄 맞이 청소라는 명분을 내걸고 집안을 홀딱 뒤집듯 닦아내야했다. 정리 정돈하는 것은 차지몰론하더래도 닦아내는 것으로도 충분히 하루를 보낼 일감이다. 넘어진김에 쉬어가는 것이 아니라 넘어진 김에 넘어진 자리를 닦아내야 하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옷장 바닥 배큠을 위해 바닥을 메운 잡다한 보관품들을 죄다 꺼내고 바닥을 두 차례나 배쿰을 했다. 이런 쓰잘데기없는 것들을 무엇에 쓰려고 꼭꼭 감추어두었을까 싶은 품목도 다소 발견된다. 아 그 때 여기 있는 줄 모르고 엉뚱한 곳을 뒤졌구나 싶은 품목도 발견된다. 일목요연한 옷장 속 리스트를 정비해야할 것 같다. 주로 가족사진이 주류를 이룬 중 소형 액자들 먼지도 알뜰하게 닦아낸다. 책상 위에 놓인 책들이며 카셋플레이어도 전등 스탠드 갓도 필기도구통이며 탁상용 달력까지도 구석진 부분에 스민 꽃가루를 닦아낸다. 남편은 벽을 긴 먼지털이로 슥슥 닦아낸다. 꽃가루가 나 잡아봐라는 식으로 집안 곳곳에 포복하듯 날아들어와 있다. 창을 열어둔 실수가 블랙홀을 만든셈이다. 주택에서 시니어아파트로 옮겨오면서 정든 가구며 집기들의 90%를 버리고 나눈 탓에 쓰지 않는 물건이나 입지 않는 옷가지 같은 정리가 미진한 부분은 없는 편이다. 계절이 바뀌면 집안 구석구석을 닦아내는 일을 정기적으로 해온터이긴 하지만 봄 맞이 청소가 꽃가루와의 씨름이 될 줄이야. 그야말로 숨어있는 꽃가루 찾아 삼만리다.
얼마전, 딸아이의 인테리어 감각으로 소파를 옮겼더니 방안이 훨씬 넓어진 것 같다. 시각 효과뿐 아니라 효용면적이 넓어진 카펫바닥에도 소파에도 어김없이 꽃가루들이 착지하고 있다. 책장 책을 한단한단 꺼내가며 열심으로 닦고 있는 남편에게 냉장고를 꺼내달라고 부탁을 해본다. 바닥에 쌓인 먼지 사이로 꽃가루가 은근슬쩍 동거를 하고있을 것 같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닦아낼 생각을 못했더라면 찝찝한 부엌이 되었을텐데 개운하고 다행이다 싶다. 살짝 찾아든 시장끼를 외면하고 블라인더를 닦아낸 김에 방충망에 까지 눈길이 간다. 고층이 아니었다면 신문지를 스프레이해서 발라두었다가 떼어내는 방법을 시도 해보고 싶었지만 청소기로 꽃가루가 뒤섞인 먼지를 여러차례 빨아들이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한층 맑은 공기가 스며드는 것을 느낄만큼 마음까지도 맑아지고 개운하다. 꽃가루 덕분에 집안이 상쾌한 변신을 가뿐하게 해낸 격이다. 집안으로 흘러드는 빛과 공기가 바뀌었다. 후련하고 가뜬하다. 마음까지도 가뿐하다. 땀흘린 기쁨도 만만찮다. 시니어 아파트의 자그마한 면적이지만 상황이 만들어낸 봄맞이 대청소 행사였다. 모두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우리는 하이파이브를 하며 봄 청소의 개운함을 자축했다. 살아가는 낙이 별거던가. 소소한 일상에 느끼는 즐거움이나 재미가 낙이 아닐까. 땀흘리는 맛의 짜릿함을 맛본 시간이었다. 먹는 낙으로 사는 사람도 있고 고통없이 하루를 보내는 편안한 즐거움을 낙으로 삼은 삶도 있고, 자식들이 커가는 것을 낙을 삼는 부모도 있다. 남다른 특이한 쾌락을 넘보거나 추구하지 않았기에 무구하고 순박한 희열로 인생이 빛나는 길목으로 다가가는 게 아닐까. 소탈하고 질박한 일상에서 아담한 보람을 여분으로 누려본 수수한 봄 날이다. 어느새 해가 설핏하니 하루를 다한 빛살이 숨을 죽인다. 무언가 충족되었을 때 느껴지는 흐뭇하고 흡족한 마음이 된다. 수더분한 봄 맞이 청소의 오붓한 보람을 누려본 행운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