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카니니는 세계적인 지휘자입니다. 그는 원래 시력이 대단히 나빴다고 합니다. 그는 지휘자가 되기 이전에는 바이올린 제일 주자 였는데 연주시에 악보가 잘 보이지 않아서 고충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악보를 외웠습니다. 눈이 나쁜 탓으로 다른 사람보다 더 피나는 노력을 해야만 했습니다. 오케스트라의 특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는 다른 파트의 악보까지 다 외웠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지휘자가 사정이 생겨서 연습장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누가 대신 지휘를 할까? 단원들이 논의를 하다가 악보를 다 외우고 있는 토스카니를 앞에 내세웠습니다. 그가 악보를 다 외우고 있었으니 얼마나 자신있께 지휘를 했겠습니까? 이것이 그로 하여금 세계적인 지휘자가 되게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의 시력이 좋았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고통을 부정적인 것으로만 보지 마십시다. 이것 때문에 엄청난 기쁨이 찿아올 수 있습니다. 당신이 안고 있는 고통이 무엇이든지 간에 비관하지 마세요. 시편 126편5절은 우리 가슴에 깊이 새겨두어야 할 말씀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파종이 없으면 결실이 없는 법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지 않는 자는 결코 기쁨의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고통이 선하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어떤 고통을 통해서든지 우리로 하여금 자기가 원하는 자녀로 만들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런 것들을 도외시 하고 예수를 믿기만 하면 만사 형통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을 왜곡하는 일면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고통없이 이 세상을 살 수 없지만 주님은 고통당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가르쳐 주십니다.우리는 이 시각을 가지고 고통을 보아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고통을 선하다고 할 수 있는 근거가 분명히 있습니다. 고통을 선하다고 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두 가지로 생각 해 보면 첫째. 무엇이나 인생의 가치있는 것들은 땀과 눈물을 통하여 온다는 사실입니다. 땀과 눈물의 고통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보람되고 가치있는 것이 생겨나지를 않습니다.둘째는, 고통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매워주신 것이기 때문에 선한 것입니다. 우리가 실령 실수를 해서 끌어들인 불행이라 할지라도 그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불가항력으로 다가오는 고난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자신의 잘못 때문에 불행을 당하기 보다는 어떤 환경과 구조적인 악 때문에 불행을 당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것을 알게되면 불행을 당해도 우리는 긍정적인 눈으로 그 불행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