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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세월 속의 아버지

지역뉴스 | | 2019-06-15 21:21:27

칼럼,김정자,행복한아침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

아버지께서 편찮으시다고 울상이 된 친구를 보며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밥 맛이 없으시다며 식사양이 줄어들고 기운이 없으신 아버지가 안쓰러워 밥상을 대하기가 힘들다는 울먹임이 귀에 맴돌아 마음이 아프다. 최근들어 지팽이를 짚고 다니시느라 수척해지시는 아버지가 측은해서 견딜 수 없다는 친구의 눈시울이 그리움을 불러들인다. 수심어린 마음을 위로해주면서 끝내 하지 못한 말을 꿀꺽 삼킨다. ‘모실 아버지가 생존해 계시다는 행복을, 다시는 오지않을 세월을 아끼며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을 누리시라.’고. 병간호를 해드릴 아버지도,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드릴 아버지도 곁에 계시지 않음이라서 밤 낮 없이 간호해드릴 수 있는 시간을 얻을 수만 있다면, 지팽이를 짚으시더래도 팔짱을 끼고 공원을 잠깐이라도 걸을 수만 있다면’. 여식의 서리앉은 마음이 깊어질대로 깊어진다. 떠나실것이라는 생각을 미처하지 못한 가없는 여감(餘憾)이 이리도 마음을 저리게할 줄이야. 세월을 헤아릴 줄 알았더라면 이같은 회한을 조금은 덮을 수 있었을터인데.

아버지께서 떠나신지 반세기를 넘겼지만 지워지지도, 잊혀지지도 않음이라서 마음으로 모시고 생을 다하는 날까지 동행할 수 밖에 없음이다. 아버지 뒷모습을 발견하고는 달려 가기도하고, 군중 속에서 옆모습을 보게되고, 문득문득 음성도 듣게되고,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들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세월 속에서 예측없이 만나지곤하는 내 아버지께서는 지금 까지 내 삶을 지탱시켜 주신 든든한 기둥이셨고 비빌 언덕이셨다. 늦은 결혼이셨던 아버지께서는 첫 자녀로 맏딸이 태어나던 날 집안이 사람사는 것 같다시며 기뻐하셨단다. 아버지와 나는 이렇게 서로의 선물이 되는 만남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값진 선물임을 자라는 과정에서 마음으로 눈짓으로 서로를 확인하는 행복한 부녀관계를 이어 왔었다. 영민함이나 재치가 뒤쳐지더라도 걸림돌이 될 수 없었고, 강가로나 바닷가로 나가 곧잘 환호하기를 즐겨하는 멋쩍은 딸과 동행해주시는 일을 마다하지 않으신 감성이 남다르신 분이셨다. 풀밭에서 토끼풀을 귀에 꽂아주시고는 꽃반지며 화관을 만들고 주렁주렁 목걸이도 만들어 주셨다. 맏이가 딸이라는 시대적 석연찮은 불편한 자리매김 에서도 할아버지에게 반론을 들이대지 않으시면서도 은근히 옹위해주셨던 아버지셨다.

청보리 줄기 잎으로 풀피리를 부시며 풀피리 부는 법을 애써 가르치려 하셨던 아버지의 바램을 끝내 이루어드리지 못했던 송구함이 청보리밭 풍경을 만날 때 마다 살푸시 고개를 든다. 빛바랜 가족사진 속의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모비딕의 그레고리 팩으로 저장되어 계신다. 군사정권이 들어선 광란의 세월에 휘말리시고 그 소용돌이를 헤치고 오신 모습이 맏이의 가슴엔 또렷한 영상으로 진하고 깊은 낙인으로 선명히 남아있다. 아물지 않은 환부가 되어 깊은 찔림이 덧나는 날엔 소롯히 밤을 밝히곤 한다. 세상을 떠나시던 날은 사방을 헤아려보아도, 돌아보아도 아무것도 없었다. 안일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께서 계시지 않는 공간에 익숙해지기까지, 마음을 가다듬으려 몸부림하며 허공을 휘저으며 손에 잡히는 시간들을 기록한 조각글들이 상자 가득이다. 삶의 우선권을 자식에게로 돌리시고 자신의 공간을 꾸밀 세트나 소품은 언제나 낡은 것이었고 빛바랜 것이었고 자신을 위한 투자는 불문율처럼 인색하셨다. 자식들 입에 들어가는 것이 아깝지 않은, 무탈하게 자라주는 새끼들의 대견한 모습에서 맛보게 되는 희열 때문이셨으리라.

오남매의 작은 재롱을 벙그는 환희로 각색하며 삶의 마디들을 수놓아 가셨으리라. 하지만 아버지의 기대엔 곤궁한 맏딸의 자리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께서 묵묵히 견디어 오신 삶의 무게를 반백이 되어서야 헤아릴 수 있는, 그 굴레의 무게를 덜어드리지 못한 여식의 모자람이 빚은 자책이 헤아릴 수 없는 나부낌이 되어 지금껏 펄럭이고 있다. 아버지께서 일러주신 대로 낮은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려 한다. 아버지의 딸로써 기죽지 않으며, 큰 자리에 앉은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을 모색하려 한다. 미국에선 해마다 6월 셋째 주일을 아버지날로 지키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과 희생을 일깨워주는 날이다. 모성 본능의 어머니 사랑에 가리워진 아버지들의 사랑은 결코 드러내려고 하지도 않으려니와 묵묵히 등뒤에서 묵직하고 굵은 든든한 사랑으로 존재하고있음을 더러는 간과 해온 터였다. 어버이날에도 어머니 사랑만 돋보인다해서 투정할 수도 없는 아버지들의 소리없는 함성이 들리는 Father’s Day이다. 어머니날과 나란히 아버지날도 차별 없이 마련하게 된것은 어머니 아버지 역활의 정형화 된 차이가 최소화 되어가고 있는 시점으로 다가가고 있음이 아닐까. 세상 모든 아버지들께서 특별한 존재감을 인정받으시는 날로, 감사와 존경을 누리시는 날이시기를 바램하는 마음들이 하늘 구름처럼 사시사철 두둥실 떠있기를 정성껏 기도드린다. 보고 싶어도 만날 뵐 수 없는 단 한번 뿐이셨던 아버지의 인생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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