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동포라는 이름을 얻기 전까지 바다를 찾고 싶을때면 언제고 찾아나서도 기다려주는 바다가 가까이에 있었기에 바닷 내음이 사뭇 그리워질 때가 잦았었다. 기회가 닿는대로 바다를 찾아나서곤 했었는데 이번 여름엔 미서부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Half Moon Bay State Beach’를 찾았다. 찾기도 쉬웠고 주차공간이 넉넉해서 좋았다. 청년으로 훌쩍 커버린 손주들도 바다를 찾아나서는 걸음이 동동떠있다. 국도를 따라가는 긴 드라이브 끝에 흠씬 풍겨오는 바닷 내음만으로도 가슴이 열린다. 바다가 가까웠음을 알려주듯 끼룩대는 갈매기 소리가 환호처럼 반겨준다. 해변 따라 뻗어있는 차선으로 접어들어 짧은 숲길을 지나자 짙푸른 바다가 펼쳐져있다. 파킹을 하고 해변 쪽을 둘러본다. 파킹넛에서 몇발짝 떨어지지 않은 곳에 깍아지른듯한 절벽 아래로 해안이 펼쳐져있다. 벼랑에서 절벽을 타고 해변 아래로 아슬아슬하게 이어진 좁디 좁은 오솔길을 타고 해변을 만나러 가야한다. 모험을 하는 묘미 또한 절묘하겠지만 주춤거릴 노인네는 아예 제외되기로 자청했다. 모두 도전을 즐기듯 위험한 절벽을 타고 해변으로 내려갔다. ‘함무니이’ 하는 손주들의 함성 소리가 들린다. 해변에 도착했나보다. 모랫사장에서 멀려드는 파도를 따라 이리저리 뛰고있는 손주들과 어루러진 바다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흡족하기 그지없다.

망망한 바다는 그득히 하늘을 안고, 모랫결을 거슬러 오르던 파도는 미끄러지듯 해변을 빠져나간다. 일상에서 벗어난 길손들이 해변을 거닐고 있다. 바닷바람이 촉촉한 갯내를 실어나른다. 파도는 바다를 찾는 길손을 품어야 한다는 소명을 다하듯 쉼없이 출렁이고 있다. 부서지는 파도가 있어 바다는 살아있는 풍경이 될수 있다고 토로하는 몸짓 같다. 파도의 쉼없는 리듬이 마음을 뻬앗으며 일상을 잊게 헤준다. 해변이 반달 모양으로 해안을 품고있어서인지 깎아지른 벼랑과 길게 드리워진 고운 모랫벌이며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와 바닷바람이 오붓한 풍경이되어 포실하게 머물러 있다.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 하얀 돗대가 눈부신 요트들이 영상처럼 펼쳐져있다. 바다 곁에 머문 풍경들이 햇살에 반짝이고 한여름은 나른한 여유 속으로 젖어든다. 애틀랜타에선 쉽게 만날 질수 없는 바다를 만난 것이다. 낙조가 시작되려나 보다. 수평선이 붉은빛을 모으고 있다. 해변 일몰은 황홀함과 감동의 아름다운 서사시다. 노을이 깔리는 해거름의 화려한 배경위에 가족들의 화사한 사랑이 담백한 실루엣으로 사진기에 담겨지고 있다. 해변에 어울리는 해송도 낙조 여운을 받아들이듯 노을 잔영이 머물은채 수평선을 굽어보고있는 정경도, 파도에 마모되고 세월에 깎여진 낭떠리지 벼랑 절벽이 있는 풍경도 일몰의 바다와 함께 풍경으로 담아둔다.

시간이 지나면 느낄 수 없을 황홀한 평온이다. 해넘이 석양이 담긴 하늘 빛살과 푸르른 해변의 조화가 수묘하다. 해가 뉘엿할 무렵까지 해변을 떠날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터에 지친 걸음으로 벼랑길을 힘겹게 올라온 가족들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깎아지른듯한 절벽 앞, 해변에서 찍은 가족사진들이 마치 그랜드캐년 어디메 쯤에서 찍은 사진같다. 그랜드캐년의 신비를 만난 것 같아 감탄사를 연발케 한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장엄 무구한 기암절벽을 가지런히 쌓여있는 지층을 옮겨다 놓은듯 하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퇴적층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죠지아 남쪽에 위치한 providence canyon 도 리틀 그랜드캐년이란 애칭이 있음이라서 신묘하기 이를데 없다.

푸른 파도 겹겹이 여흠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바다 곁에 머문 풍경들이 애틀랜타로 돌아가 일상을 지나는 중에라도 삐죽삐죽 솟아나 일상의 윤활유가 되어 줄 것이다. 창창하게 싱그럽게 출렁이는 바다와 시원하게 부서지는 파도와 바람소리가 어우러지는 소리까지도. 마음을 내려놓게 하는 해변 풍경은 태고로 부터 인생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품고 있기에 아무때나 찾아도 추억을 안고 떠나게 해주나 보다. 그렇게 뜨거웠던 모랫벌의 열기도 서서히 잠재워진다. 해변에 머문 풍경들이 묘한 입체감으로 신비한 명암을 안고 풍경 속으로 잦아들고 있다. 잔잔히 밀려오는 파도의 곡선이 드러날 만큼만 화려한 듯 은밀한 빛을 던지기 시작한다. 해거름 바다풍경이 한껏 더 신비함을 자아낸다. 하루를 소진해버린 햇살이 조용히 자리를 내어주고 해변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운치 또한 무구하다. 파도 마저도 소리를 죽이며 밀려드는 것 같다. 먼 수평선 따라 가물거리며 떠오르는 얼굴이 어른거린다. 반갑다고 볼을 맞대고 정다워했는데 어언 시간이 지나면서 슬그머니 이방인이 되어버린 그네일까. 아니면 바다 곁에 머문 풍경들을 밤새 껏 나눌 수 있을 고향 친구일까. 고향바다 같은 태평양 푸른 바다 앞에서 여락교 시절에 즐겨불렀던 ‘가고파’를 목청 껏 불러본다. 푸른 바다를 앞에 두고 가고파를 불러본지가 얼마만인지. 핑그르르 눈물이 맺힌다. 바다도 고향 바다가 그리움이요 사람도 고향 사람이 그리움인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