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 권명오.
수필가 · 칼럼니스트
Ⅰ 한국 38 년(59)
탤런트 합격과 발표작
KBS–TV 탤런트 시험 합격자 발표 날 자신이 없어 불합격에 대비한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전운씨에게 합격자 발표를 보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하루종일 누워서 여러가지 공상을 거듭 하다가 밖으로 나가 무심히 떠도는 구름을 쳐다 보는데 골목길 저쪽에서 전운씨가 나타나 “ 야 합격이야 합격 “ 하고 소리쳤다. 그리고 내게 달려와 축하 한다며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꿈만 같다. 합격이다 성공이다. 앞으로 방송생활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알 길이 없고 또 합격이 됐다고 방송 출연이 보장 되는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서울에서 머물며 연극과 연기 생활을 할 수 있는 명분과 근거가 생긴 것이다.
KBS-TV 2기 합격자는 25명 이었고 1기생과의 차이는 3개월 이었다. 1기생 중 최길호씨와 이완균씨를 제외한 다른 연기자들은 모두 다 내 연극 후배들 이었고 2기 동기생 중에는 신무대 실험극회 이묵원씨와 강부자씨가 포함 돼 있었다. TV 탤런트가 된 나는 정확한 보장은 없지만 잘만 하면 먹고 살 근거가 마련 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오랜만에 마음에 여유가 생겨 안신영씨에게 탤런트 공채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만날 계획도 세웠다. 청량리에 살고 있는 우리는 쉽게 만날 수가 있고 3년간 편지로 별별 세상사를 모두 다 허심탄히 논해 왔기 때문에 정다운 소꿉 친구와 다름없는 사이라 얼굴도 못 본 채 3년동안 편지만 오고 갔지만 극적인 만남이 아무 부담없이 이루어 졌고 대화도 화기애애 했다. 그 후부터 안신영씨와 나는 편지보다 직접 만나는 횟수가 많아졌다.
탤런트 2기생 25명은 기초 교육이 끝난 후 TV 드라마 발표작품이 선정됐다. 극본은 유명 희곡작가인 김희창 선생의 '구두창과 트위스트' 였고 연출은 황운진씨가 하게 됐다. 그런데 그 발표 작품이 2기 탤런트들의 TV 출연에 대한 운명을 좌우 할 중대사가 됐다. 예외도 있지만 발표작을 통해 연기에 대한 평가와 인정을 받아야 드라마에 출연할 기회가 생기기 때문에 배역 선정에 대한 2기생들의 신경이 집중됐다. 3일간의 걸친 합독과 작품 분석을 끝낸 후 연출자가 등장 인물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함께 배역을 발표 할 때 탤런트 25명은 숨을 죽이고 연출자를 주시했다. 그런데 뜻밖에 내가 주인공 '장 영감' 역활을 하게됐다. 동기생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 됐고 나는 선망의 적이 됐다. 감격이 넘치는 최고의 순간이다. 얼마나 벙어리 냉가슴 앓듯 혼자서 기다리고 원했던 꿈같은 일인가. 그리고 그동안 남몰래 그 역활이 나에게 주어 지기를 얼마나 빌면서 애간장을 태웠든가를 생각하니 너무나 감사하다. 나는 부족한 놈 이지만 역시 억수로 운이 좋은 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