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사람들과 완전히 다른 하나님을 선포합니다.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사람들에게 옵니다. 왜냐하면 사람으로서는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그 어떤 것도 요구할 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랑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찾습니다. 드러내놓고 자랑은 하지 않지만, 넌지시 겸손한 자랑을 하기도 합니다. 부모는 자녀 자랑이나 자녀의 성공으로 대리만족을 누리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합니다. 또한 자기 출신학교를 자랑하면서 “나는 꽤 괜찮은 사람, 나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오직 “십자가만 자랑”함으로 성도의 현주소를 찾고 기뻐하며 그 자존감으로 감사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자랑하는 복음"으로 기쁨과 감사를 누리게 됩니다.
복음만 자랑합시다! 십자가만 자랑합시다! 이 말은 오늘의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말이지만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참 이상한 말로 들렸을 것입니다. 사형장의 사형수가 마지막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전기의자를 자랑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사형당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라!” 참으로 이상한 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인류에게 하나님의 속성을 알려줌으로써 그들이 어떻게 신성하게 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종교적 메시지가 아닙니다. 복음은 오직 십자가를 알려주고 자랑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부르심입니다. 그래서, 본문 14절은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랑”('카우카스싸이, καυχᾶσθαι/ to boast; I boast, glory; I glory (exult) proudly')이란 헬라어 단어는 신약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즐거움이나 기쁨이란 의미로 번역되고 사용되었습니다. 그렇게 14절을 다시 번역해 보면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 “십자가만 기뻐하고 자랑하기…” 과연 십자가만 자랑하고 즐거워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십자가 말고 다른 자랑은 절대로 하면 안 되는 것일까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본문의 말씀으로 오늘 교회들에게 도전합니다. “오직 복음으로 부흥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기 위해 “내가 자랑하는 복음--십자가만 자랑하라!”라고 하는 권면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십자가만 자랑하라!"는 권면은 다른 것들을 자랑하면 안 된다는 그런 의미일까요? “자랑한다. 혹은 즐거워한다.”는 단어가 사용된 성경적 근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롬5:2) “다만 이뿐 아니라 환난 중에도.”(롬5:3)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롬5:11)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12:9)
바울 사도는 성도라면 모든 자랑을 "복음 안에서" “십자가 안에서” "예수 안에서"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모든 예배의 기쁨은 십자가 안에서만, 복음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라는 뜻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광의 소망으로 기뻐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오직 복음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내가 자랑하는 복음은 오직 십자가만으로 빛을 발할 것입니다. 그 십자가가 없었다면 오늘의 교회도 없고, 내일의 천국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