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한국 38년(11)
지천( ) 권명오
수필가·칼럼니스트
인민군 천하가 된 서울
친절하고 고마운 학교 선배와 헤어져 고향 선배 소방관을 따라가는 나는 서울과 같은 대도시가 처음이라 어리둥절 했다. 독립문과 서대문 형무소, 중앙청을 지나면서 어마어마 하게 큰 건물과 거리를 보느라 정신없이 따라갔다. 화신 백화점을 지나 종로 3가 단성사 극장 앞을 돌아 좌측 골목길로 들어간 후 기와집 사이를 돌고 돌아 진형구 아저씨 집에 도착했다.
아저씨와 가족들은 나를 보고 놀라며 반갑게 맞아 주면서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고 고향 소방관 형이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 그리고 그 분이 돌아간 후 아저씨와 조카 박영락씨가 다시 전쟁에 대해 물었고 나는 본대로 아는대로 자세히 설명했다. 하지만 두분은 내 말을 믿을 수가 없다고 반문하면서 내말 보다 라디오 뉴스에만 신경을 집중했다.
내가 도착한 그 날이 아저씨 어머님의 장례식이 끝나고 3일째 되는 날 이였다. 효성이 지극했던 아저씨는 직장인 경무대( 청와대 )에 출근치 않고 상청을 지키며 삼오제를 지내느라 전쟁에 대한 상황을 잘 몰랐고 또 그 당시 국방장관과 참모총장 및 정부 요인들이 별일이 아닌 것처럼 무책임하게 거짓 전황 보고를 했으며 또 방송도 계속 허위 보도를 했다. 그리고 경무대 부하 직원들이 찾아와 안심 하라고 해 아저씨는 전황을 살피면서 모친의 상청을 지켰다. 해가 질 무렵부터 부하 직원들이 계속 드나들며 상항 보고를 했고 옆집에 사는 경찰서장 까지 찾아와 돈보따리를 전하며 자기도 피난을 못 간다며 급할 때 쓰시라고 했다.
후에 알게 된 일 이지만 그 경찰서장이 북한과 내통한 공산당원이였다. 밤이 깊어지자 아저씨 경호원들이 긴빅하게 움직였다. 그 순간에도 라디오에서는 서울 시민들은 우리 국군들이 인민군을 격퇴하고 있으니 안심 하라고 했다. 밤이 깊자 포성은 더욱 가까워 졌고 치열 해 졌다. 잠도 못 자고 하루종일 걸어 온 나는 몽롱한 가운데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가정부가 이불을 들고 따라 오라고 해 이불을 가지고 그녀를 따라 방공호로 들어갔다. 그 사이 아저씨네 가족들은 어디론가 피신을 했고 가정부와 나만 방공호에 남게됐다.
그때부터 포탄이 계속 폭발하는 소리가 비 오듯 했다. 포탄이 폭발하는 소리가 요란하면 가정부와 나는 계속 이불을 뒤집어 쓰곤 했다. 그렇게 계속되던 포성이 잠잠해진 후 깜박 잠이 들었던 나는 날이 밝자 방공호에서 나왔다. 해는 말없이 빛났고 집안은 아무 일도 없다는듯 조용하고 평화롭다. 주위를 살펴보니 가정부는 주인없는 빈 집에서 서글픈 콧노래를 부르며 집안 청소를 하고 있다. 그녀가 부르는 아리랑이 너무나 서글프고 애처롭다. 가정부는 18세 정도 되는 예쁜 여성 이였는데 융통성 없고 수줍은 나는 그녀의 뒷모습만 바라 보다가 답답하고 할 말도 없어 밖으로 나와 골목길을 돌고 돌아 큰 길로 나갔다.
그런데 세상이 완전히 변해 버렸다. 밤사이 한강 다리가 폭파 됐고 인민군 탱크가 중앙청 앞에 진을 쳤고 거리는 인민군들과 또 인공기를 들고 인민공화국 만세와 김일성 장군 만세를 부르는 학생들과 젊은이들이 행진하는 세상이 됐다. 어젯밤 국군 장병들이 인민군을 믈리치고 승리를 거듭하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외치던 방송이 기가 찰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