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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순이 빵돌이를 사로잡은‘인생 식빵’

지역뉴스 | 라이프·푸드 | 2017-10-16 11:11:41

식빵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

심심하고 담백한 본연의 맛도 좋지만

우유·버터 고배합에 충전물 아낌없이…

식사빵에서 간식빵으로 맛있는 진화중

딸기잼과 땅콩버터가 식빵의 짝꿍이던 때가 있었다. 마가린이나 버터를 발라 먹기도 했다. 마요네즈를 바르고 설탕을 뿌려 전자레인지에 1분 딱, 마요네즈 토스트를 먹는 것은 범접할 수 없는 비장의 간식이었다. 식빵은 달고 기름진 것들의 힘을 빌려 입맛을 돌게 하고 배를 채워 주는 요긴한 음식으로 오래간 우리 식생활에 함께하고 있다. ‘식빵’의 뜻은 어려울 것 없이 말 그대로 ‘식사용 빵’이라는 의미이다. 오래 전부터 원형의 식빵은 최대한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뭘 발라도 튀지 않고 든든하게 뒤를 받쳐 주니까. 한국산업규격에서도 식빵을 이렇게 정의했다. “밀가루, 물, 효모 및 기타 필요한 물질을 균일하게 혼합하고 발효시킨 후 구워서 만든 것으로 표면에 당의나 내부에 충전물을 함유하지 않은 것.” 즉, 순수한 밀가루 빵 그 자체로, 밥으로 치자면 백미로 만든 쌀밥이다. 나물과 먹어도 어울리고, 고기와 먹어도 어울리는 그런 담백한 밥 같은 존재. 식빵의 종류와 형태는 점점 다양해졌고, 현재도 다양해지고 있다. 한국산업규격이 분류한 다른 식빵의 종류만 봐도 다양화된 식빵의 족적이 나온다. 유 및 유제품 식빵, 난류 식빵, 과실류 식빵, 서류 식빵, 두류 식빵, 채소 식빵, 견과 식빵, 혼합 식빵까지 무척 다양하다. 우유 식빵과 건포도 식빵, 옥수수 식빵, 밤식빵 등 정겨운 식빵들이 다 표현돼 있다. 처음 이런 식빵들이 등장할 때만 해도 꽤나 화려하고 호화로워 보였을지 몰라도, 요즘 나오는 식빵에 비하면 무명옷을 지어 입은 듯 검약해 보이기까지 한다.

식빵의 변신은 죄가 없다

최근 유행하는 식빵을 규정하자면 ‘네모난 틀에 넣어 구운 빵’이라는 넓은 의미의 정의를 붙여야 어울린다. 한국산업규격의 분류대로 하자면 거의 대부분이 두 종류 이상의 특정성분이 함유된 혼합 식빵이다. 양상은 충전물 경쟁에 가깝다. 이제는 건포도가 아니라 온갖 과일, 심지어 제철인 무화과까지도 들어가고, 옥수수 식빵 대신에는 통밀이나 잡곡 식빵이 자리를 잡았다. 밤식빵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듯이 아몬드나 호두 등 견과류도 듬뿍 넣는다.

또한 식빵은 점점 무거워졌다. 화려한 충전물이 없더라도 요즘 식빵은 우유, 아니면 버터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이 기본을 이룬다. 이런 고배합의 반죽으로 맛이 풍성한 식빵이 점점 당연해졌다. 설탕과 우유, 유지류를 거의 첨가하지 않은 기존의 저배합 식빵은 무엇인가를 발라 먹기보다는 고배합 식빵 그 자체만으로 모든 맛을 해결하려는 간편한 시대에 점차 흔치 않은 존재가 돼 간다.

고배합의 반죽, 그리고 충전물을 아낌없이 넣는 요즘 식빵은 식사 빵에서 ‘간식 빵’으로 이행하고 있다. 식빵이라는 말 자체가 식사를 위한 것인데 ‘간식용 식사 빵’이 되니 존재모순적인 부류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죄다. 생김새가 네모나다고 해서 무조건 심심한 식빵일 필요는 없다. 네모난 틀 안에서 무한의 자유를 꿈꾸는 것이 죄는 아니고, 빵이 주식이 아닌 한국에서 식빵이 간식용으로 진화한 것은 일견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식빵으로 해본 ‘빵지순례’

‘빵지순례’라는 말이 있다. 빵과 성지순례를 합한 말이다. ‘빵순이’ ‘빵돌이’라 불리는 빵 마니아들이 여러 빵집을 옮겨 다니며 빵을 구매하는 일을 말한다. 식빵 하나로 빵지순례를 해 봤다. 이제는 고전이 된 우유식빵 명가로부터 달콤하고 짭짤한 충전물을 가득 넣은 두툼한 식빵을 내세운 신진 명가까지, 요즘 식빵의 스펙트럼을 한눈에 준비했다.

김진환 제과점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촌역과 홍대입구역 사이, 매우 어중간한 위치에 있는 빵집이다. 아기자기한 인테리어가 있는 빵집보다는 안 그래도 조그마한 가게의 대부분 면적이 빵을 위한 주방으로 꾸려진 빵공장에 가까운 모습이다. 김진환 제과점은 1996년 개업한 이래 20년 넘는 세월 동안 매일 아침 똑같은 식빵을 꾸준히 굽고 있다. “난 요즘 식빵은 알지도 못해요. 우리 집 식빵은 변한 것도 없고 쭉 똑같아요. 그냥 전부터 하던 그대로.” 바쁜 일손을 놓지 못하고 김진환 대표가 말했다. 동대문 길가에 앉아 방망이를 깎던 노인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은 비단 착각만이 아니다. 김진환 제과점의 간판 빵은 우유 식빵이다. 요즘 유행하는 기름진 식빵과 달리 꽤 말끔한 맛에 고소한 풍미는 자꾸만 손길을 분주하게 만든다. 균일하고 쫀쫀하게 꽉 찬 질감이 참으로 적당하다. 

리치몬드 제과점

우유식빵은 일본에서 유행하던 다른 빵들과 마찬가지로 1970년대 한국에 상륙했다. 1979년 개업한 리치몬드 제과점 역시 우유식빵을 구웠다. 리치몬드 제과점의 창업자인 권상범 제과 명장은 밤식빵의 ‘아버지’이기도 한데, 이 밤식빵이 탄생하게 된 사연이 재미있다. 밤 농사를 짓던 권 명장의 후배가 찾아와 판로가 없어 난처하게 된 밤을 써 주길 부탁한 것이 계기다. 일단 밤을 다 사 주고 나서 용도를 궁리하다가 식빵에 밤을 넣어 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것. 어려운 사정의 후배를 돕고자 했던 마음이 스테디셀러이자 히트 상품으로 이어진 도시 미담이다. 달달하게 졸인 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듬뿍 들어간 푹신한 밤식빵은 희귀한 기록 또한 갖고 있다. 매장 하나에서만 하루에 1,000개가 팔려 나간 기록인데, 이 기록은 제과업계에서 공식적으로 아직 깨진 적이 없는 엄청난 기록이다.

식부관

최근 문을 연 식부관은 식사빵에 초점을 맞춘 식빵 세 종류만을 만드는 빵집이다. 올해 ‘아시아50베스트 레스토랑’에서 ‘밀레 주목할 레스토랑’(50베스트에 들지 않았으나 떠오르는 별로 기대되는 레스토랑에 주는 상)으로 선정된 프랑스 레스토랑 톡톡의 김대천 셰프가 문을 열었다. 김 셰프가 가진, 빵에 대한 집념은 톡톡을 열던 초창기부터 유명했는데, 당시 무려 6종류의 빵을 레스토랑 주방에서 구울 정도였다. 식당 주방에서 빵 여러 가지를 굽는 것은 참고로 매우 번거롭고 시간을 뺏기며, 어려운 일이다. 많은 레스토랑들이 빵의 종류를 한정하거나 외주로 갈음하는 이유다. 이후 레스토랑에서 쓰는 빵의 종류를 2개로 줄였지만 김 셰프는 여전히 빵을 놓지 않았다. “빵 종류를 줄인 이후에도 스태프 밀(직원 식사)용으로 식빵을 구워 남은 재료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곤 했다.” 어느 레스토랑이나, 그 어떤 메뉴보다도 탐나고 맛있다는 우스개가 통용되는 스태프 밀 식빵을 이제 그가 연 식빵 전문점에서 맛볼 수 있다. 세 종류의 식빵은 플레인, 내추럴, 리치로 각각 특성이 다르다. 플레인은 가장 기본적인 식사빵을 표방해 밀가루, 버터, 우유의 조합을 깔끔하게 맞췄다. 내추럴은 꿀과 요거트를 넣어 은근한 단맛을 이끌어 낸 식사빵, 리치는 고소한 풍미를 앞세운 무거운 맛의 식빵이다. 리치 식빵은 두껍게 썰어 푸아그라 같은 풍부한 맛의 부재료와 곁들여 먹길 권한다. 

밀도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밀도는 식빵이 틀 안에서 느꼈던 갑갑함을 직접적으로 표출한 결과물이다. 밀도를 창업한 전익범 셰프는 원래 경기 용인시 죽전에서 시오코나 베이커리를 열었던 이다. 이른바 ‘풀 베이커리’라 불리는 부류의 빵집이었다. 대형 주방을 갖추고 100종 이상의 빵을 굽는 빵집을 풀 베이커리라고 부른다. “10년 가까이 풀 베이커리를 하면서 기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품목을 줄이는 선택을 하고, 그 품목에만 집중을 하자는 결심이었죠. 빵집에서 기본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을 하다 보니 답은 식빵이었어요. 식빵이 맛있으면 고객들이 케이크를 사러 오고, 쿠키를 사러 오죠.” 그리하여 서울숲이 멀지 않은 위치에 밀도가 문을 열었다. 식빵만 하기엔 조금은 걱정이 되어 시오코나 베이커리의 시그니처 메뉴였던 스콘도 병행해 역사를 이었다. 무지방 우유로 만든 담백 식빵과 생크림이 들어간 리치 식빵을 기본으로 두고 큐브식빵과 미니식빵을 파생 메뉴로 뒀다. 

오뗄두스

오뗄두스는 빵 시장에서 존재감이 확실한 고참이다. 정홍연 셰프가 만든 식빵 깁펠은 네모난 식빵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밀도, 교토마블과 함께 식빵 돌풍을 이끄는 트로이카 역할을 하고 있다. 깁펠은 스위스 등 지역에서 크루아상과 유사한 빵을 부르는 말. 정 셰프의 빵은 겉이 크루아상처럼 얇은 결이 바삭바삭하다. 속은 촉촉해서 우유나 커피가 없이도 꿀떡꿀떡 삼키기 좋은 빵이다. “한국과 일본의 빵은 촉촉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어요. 빵이 시작된 유럽에서는 목이 메일 정도로 뻑뻑한 빵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만요.” 정확히 표현하자면 깁펠의 식빵은 크루아상과 브리오슈의 장점을 반씩 취한 데니시 식빵 계열이다. 반죽을 여러 차례 접어 수십 겹으로 이뤄져 쫄깃쫄깃하게 찢어진다. 데니시 플레인 식빵은 이 집의 기본형 식빵인데 평을 보자면 “다른 빵들도 다 맛있는데 단순한 데니시 플레인 식빵이 가장 맛있는 것이 신기하다”는 이야기가 압도적이다. 낮은 온도에서 오랜 시간 숙성시켜 맛이 더 좋고 상미기간도 길다는 것이 정 셰프의 설명이다. 

교토마블

교토마블의 삼색 식빵은 요즘 젊은 식빵의 가장 상징적인 모습이라 정의할 수 있다. 딸기, 녹차를 섞은 분홍 반죽과 녹색 반죽이 일반 식빵 반죽과 합체되어 비주얼에서 일단 이목을 끈다. 아닌 게 아니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엄청난 화제다.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서 시작해 현재 현대백화점에 세 군데 매장을 두고 있다. “디저트로 나오는 빵은 쉽게 질려서 트렌드가 자주 바뀌지만 식빵은 매일 아침 질리지 않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빵이기 때문에 식빵 전문점을 생각하게 됐어요.” 아침마다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교토마블의 식빵 역시 데니시 식빵 계열로, 반죽을 손으로 100번 이상 펴고 접어 얇은 결이 밀도 있게 차 있다. 요즘 교토마블에서는 데니시 식빵을 이용한 토스트와 샌드위치 메뉴도 개발 중이다. 

<이해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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