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잊어라. 여기는 판도라라는 걸 명심하도록. 지옥도 판도라에 비하면 휴양지나 다름없다. 여기에사는,‘ 나비’라불리는외계종족은신경을마비시켜 1분 내에 심장을 멈추게 하는 독화살을 사용한다. 그들의 뼈에는 탄소섬유 성분이 들어 있어 죽이기 아주 힘들지.”(영화‘아바타’중 대사)기지 사령관 마일즈 쿼리치 대령은 이 같은 경고를 날리며 판도라 행성에 새로 온 해병대원들 기를 죽인다. 영화에서 나비족은 사람보다 훨씬 커 키가 3m나 된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만큼 뼈대도 굵고 몸집도 코끼리처럼 거대해야 정상일 그들이 의외로 날씬하다는 점이다. 비밀은 쿼리치 대령이 말한 그들의뼈,‘가벼우면서도 튼튼한’ 탄소섬유에 숨겨져 있다.

 

 

실제 탄소섬유는 무게가 철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강도는 10배, 탄성은 7배나 된다. 가벼운데 강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녹이 슬지 않고 열에 잘 견디며 전도성까지 좋다는 장점도 있다. 철을 대체할 ‘차세대 산업의 쌀’‘꿈의 신소재’로 각광받고 있는 이유다.

탄소섬유 단단함의 비결

탄소섬유는 탄소로 만든 실이다. 그렇다고 탄소로만 만든 건 아니고, 원사(실) 안에 탄소가 92% 이상 함유된 섬유를 말한다.

탄소섬유 한 가닥 지름은 7㎛(마이크로 미터^100만분의 1m)에 불과하다. 머리카락(50~70㎛)의 10분의 1 정도이고, 아주 작아 이름 붙여진 미세먼지(10㎛)보다도 작다. 전자현미경으로 봐야 확인할 수 있는 이 가느다란 실을 수천에서 수만 가닥 모아 탄소섬유 다발을 만들게 된다. 원사 2만6,000가닥을 모은 탄소섬유 한 다발의 단면적이 1㎟에 불과한데 이 실은 700kg의 경주용차를 매달고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다.

탄소섬유를 만드는 방법은 팬(PAN^폴리아크릴로니트릴)계와 피치(PITCH)계 두 가지로 나뉜다. 일반적으로팬계탄소섬유가많이사용되는데,‘ 중합-방사-소성’세 단계를 거쳐 만들어진다.

중합은 섬유 원료인 아크릴에 높은 열과 압력을 가하는 과정이다. 중합을 거쳐 꿀처럼 진득해진 원액을 직경 수천~수만 개 구멍에 통과시키는 공정이 방사다. 가래떡을 뽑아내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이렇게 뽑은 원사를 1,000도가 넘는 고온에서 열처리해 섬유에 있는 질소나 수소원자를 거의 다 없애고 92~95% 정도의 탄소원자만 남기는 공정이 소성이다. 효성 탄소재료연구팀 정희록 수석연구원은“수천~수만 가닥의 아크릴 원액을 모두 일정하고 균일하게 뽑아내야 강도가 좋아진다. 방사 과정이 탄소섬유 제조의 핵심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탄소섬유가 왜 단단한지는 다이아몬드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로 꼽히는 다이아몬드는 탄소를 고온고압 상태로 응축해서 만든다. 탄소 원자 한 개가 4개의 다른 원자와 결합할 수 있는데 다이아몬드는 탄소 원자끼리만 결합해 그물 구조가 치밀하고 강하다. 마찬가지로 탄소섬유 역시 다른 원자 거의 없이 탄소 원자끼리 강하게 결합한 상태다.

탄소섬유 제조 방식을 말로는 쉽게 설명할 수 있지만, 실제 만들어 내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세계적으로도 탄소섬유를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나라를 손에 꼽을 정도다. 탄소섬유는 항공, 우주, 방산 등에 사용되는 소재인 만큼 전략물자로 분류돼, 기술이전도 쉽지 않다.

현재 세계 탄소섬유 시장은 도레이와 미쓰비시케 미컬, 데이진 등 일본의‘빅3’기업들이 약 60%를 장악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효성이 유일하게 탄소섬유 제조 기술을 갖고 있다. 효성은 2011년 일본, 독일,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탄소섬유 개발에 성공한 뒤 2013년 고성능 탄소섬유인‘탄섬(TANSOME)’을 선보였다. 현재 국내 탄소섬유 시장은 세계의 4% 정도에 불과 하지만 효성은 5년 내에 점유율을 17%까지 끌어올릴 생각이다. 얼마 전 효성은 2028년까지 탄소섬유 분야에 1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탄소섬유, 금속^플라스틱과 만나다

탄소섬유는 그 자체만으로 물건을 만들 수는 없다. 금속이나 플라스틱 고분자 수지 등 다른 재료에 섞어 써야 한다. 이를 탄소섬유 복합재료라 한다. 효성 복합재료 연구팀 수석연구원 배만억 팀장은“건물을 지을 때 시멘트 안에 철근을 넣어 강도를 높이는 것처럼 시멘트를 고분자 수지, 철근을 탄소섬유라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탄소섬유 복합재료의 쓰임새는 항공기, 자동차, 우주항공, 스포츠 레저용품까지 무궁무진하다. 예컨대 대형항공기 보잉 787기의 경우 전체 중량의 절반이 탄소섬유 복합재료다. 승용차 한 대를 만들 때 탄소섬유 복합재료를 사용하면 최대 85kg까지 무게를 줄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 시 호흡을 위해 어깨에 메고 다니는 산소통도 무게를 줄이기 위해 탄소섬유 복합재료로 된 걸 많이 쓴다.

탄소섬유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수소경제의 핵심 소재이기도 하다. 가벼우면서도 일반 공기보다 수백 배의 고압을 견뎌야 하는 수소연료탱크를 탄소섬유 복합재료로 만들기 때문이다. 실제 현대자동차가 만드는 수소차‘넥쏘’에 들어가는 수소 탱크에도 탄소섬유가 사용되는데, 현재는 일본 도레이 제품이다. 그러나 효성이 꾸준히 기술발전을 이뤄 현재 현대차와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조만간 수소탱크의 국산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탄소섬유는 뼈나 관절에 박는 핀을 지지하는 판이나 X-레이 투과장치의 부품 재료 등 의료 분야에도 활용되고 있다. 인공 뼈에 탄소섬유를 적용하는 연구도 현재 진행 중이다. 조만간 영화 속 아바타가 아닌 진짜 사람이 탄소섬유로 만든 뼈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             <윤태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