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방항공우주국(NASA) 고위직에서 은퇴한 

재닛 카반디 박사는 3번 우주 비행을 했고 우주비행사 

선발위원장으로서 성별 공평성 확립에 기여했다.

 

3번 우주비행 재닛 카반디 박사 민간기업 이직

우주비행사 선발위원장으로 공정성에 기여

큰 족적… NASA 고위직 중 여성은 15%에 불과

 

우주비행사가 국제 우주정거장에서 우주유영을 하기 위해서는 문을 하나 통과한다. 최근 은퇴한 재닛 카반디(60) 박사가 주도해 설치한 문이다.

 

우주비행사로서 그가 후배 비행사들의 우주 작업을 위해 개선해 놓은 것은 그게 다가 아니다. 3번의 우주궤도 비행 임무를 수행한 후 연방항공우주국(NASA)의 행정부서로 자리를 옮긴 그는 우주비행사 선발 과정을 감독하면서 공정성과 다양성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결과가 지난 2013년 사상 처음으로 남녀 동수의 우주비행사 동기생 탄생이다. 

그러므로 카반디 박사가 최근 오하이오 클리블랜드에 소재한 NASA 산하 혁신적 테크놀로지 디자인 시설인 글렌 연구센터 소장직에서 은퇴하면서 남긴 것은 단순히 우주비행의 유산이 아니다. 쉽게 메울 수 없는 엄청난 공백을 항공우주국에 남겼다. 

센트럴 플로리다 대학의 우주정책 전문가인 로저 핸드버그는 카반디 박사가 미래 NASA에서 리더가 될 여성들을 위한 롤 모델이라고 치하했다. 

“다음 여성은 새로 땅을 파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만들어진 길을 따라만 가면 됩니다.”

카반디 박사는 개인적이며 실질적인 이유로 NASA를 떠난다고 말했다. 나이 60세이니 그는 은퇴 자격을 갖췄다. 아울러 가족들을 위해 돈을 좀 더 벌고 싶어 민간기업인 시에라 네바다사 우주시스템 부서에서 일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마침 시기적으로 지금은 트럼프 행정부가 2024년까지 미국 우주인들을 달로 다시 보내기로 결정하면서 인사 개편 등 NASA 내부적으로 변화의 시기이기도 하다. 짐 브라이든스타인 항공우주국장은 지난해 카반디 박사를 부국장으로 제 2인자 자리에 올리고 싶어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우주 테크놀로지 경험이 전혀 없는 제임스 모하드를 그 자리에 임명했다. 

카반디는 부국장 자리가 모하드에게 가서 실망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그가 떠남으로써 NASA 고위직에서 여성 한 명이 줄었다. 로리 가버 전 NASA 부국장은 항공우주국 상층부에 여성은 15%가 채 못 된다고 추정했다. 가버 전 부국장은 브루크 오웬스 펠로우십을 설립해 대학과정 여학생들과 항공우주 산업 인턴쉽을 매치시키고 있다.

“조직 상부에 성불균형이 이렇게 심하니 조직 문화는 남성들을 편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성들의 의견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경청되지 않아 여성들은 고전을 하고 있습니다.”

카반디 박사는 미주리주 캐스빌에서 자랐다. 6살 때 뒷마당 포치에 누워서 소녀는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궁금해졌다. 하늘 저 위에서 내려다보면 우리 집이 보일까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인류가 이미 우주탐험을 시작해 우주 캡슐에서 지구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언젠가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거라고  딸에게 말했다.

“그 말을 평생 마음 한 구석에 담고 있었어요.”

그는 미주리 서던 스테이트 대학에서 화학 전공으로 학사와 석사과정을 마쳤다. 책상 위에 그는 “포기는 없다”라는 말을 쓴 칠판을 걸어두었다. 그리고는 처음으로 사슬 없이 자유롭게 우주유영을 한 브루스 맥캔들리스 사진을 압정으로 박아두었다.

“셔틀과 연결된 사슬 없이 저 위에 자유롭게 떠있다는 것, 그건 너무나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스로 인공위성이 되는 것이지요.” 카반디 박사는 말한다. 

그는 이후 이글-피처 산업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이어 보잉에서 일했다. 일하면서 박사과정을 이수했다. 박사학위 논문을 위해 그는 비행기용 특수 페인트를 개발했고, 후에 발명특허를 받았다. 당시 지도교수였던 제임스 칼리스 워싱턴대 명예교수는 “(그는) 안 된다는 걸 절대로 받아들이는 법이 없었다”고 말한다. 

1994년 카반디 박사는 우주비행사 제15기 선발에 응모했다. 응모한 2,962명 중 최종 합격자 19명 중 한 명이 되었다. 당시 여성은 단 5명 합격했다.

드디어 1998년 그는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를 타고 소련 우주정거장 미르를 향해 우주로 발사되었다. 발사 순간 힘이 너무도 강력해서 눈에서 나온 눈물이 귀로 빨려 들어가 귀안이 물구덩이가 되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아버지가 자신을 자랑스러워 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미르 안에는 번지코드로 벽에 묶인 상자들과 기기들로 운신할 틈이 없었고, 복도마다 곰팡이 핀 지하실 같은 냄새가 났다. 물건들이 그렇게 난장판을 이루고 있는 것이 싫었다. 우주 정거장 창문을 가려서 지구를 바라볼 시야를 방해했다. 

그는 다른 우주비행사들 그리고 국제우주정거장 플래너들과 함께 둥근 지붕모양의 관측 모듈 설치방안을 연구했다. 우주정거장 방문자들이 저 아래 행성을 더 잘 보고 사진도 찍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마지막 셔틀 비행에서 그는 로봇 팔을 사용해 우주정거장의 퀘스트 출입구 설치를 도왔다. 

우주비행사로서의 임무를 마친 후 그는 20여년 NASA에서 다양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고 2013년 휴스턴의 존슨 우주센터에서 우주비행요원 총괄국장으로 임명되었다. 

2013년 우주비행사 선발위원회 위원장이 된 그는 개방적 생각을 갖겠다는 다양한 멤버들을 선택했다. 그는 패널들에게 공정성과 다양성에 기초한 선발을 간절히 촉구했다. 남성만큼 여성들도 뽑자는 말을 대놓고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결과는 남녀 동수였다. 지원자 6,300명중 남성 4명과 여성 4명이 선발돼 사상 첫 성별이 균형을 이룬 비행사 동기가 탄생했다. 

지난 4월 그는 미국 우주인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여성 중에서는 10번째였다.(NASA 우주비행사 중 여성은 57명에 불과하다.)

이제 그는 민간기업에서 우주 관련 일을 계속하게 되었다며 흥분한다. “여전히 인간의 우주비행에 기여할 수가 있어요. 우주정거장에 여전히 공급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이 분야에서 인류의 발전에 상당히 인상적인 기여를 할 수가 있습니다.”

NASA에서의 그의 업무는 끝났지만 그가 항공우주국에 남긴 흔적은 남아있을 것 같다.

여성으로서 최초로 달 표면을 걷게 될 우주비행사 후보들 중 강력한 후보 최소한 두 명은 지난 2013년 카반디 박사의 선발위원회에서 뽑은 여성들이다. 크리스티나 코치와 앤 맥클레인이다. 2024년 달 착륙 우주비행 때는 남녀 각 한명을 보낸다는 방침이 정해져 있다. 

<By Jillian Kramer>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NASA 글렌 연구센터 디렉터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재닛 카반디 박사. 우주비행사 출신으로 여성들을 위해 우주의 길 닦은 그는 지난 9월30일 NASA에서 은퇴했다.    <Allison Farrand for The New York Times>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NASA 글렌 연구센터 디렉터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재닛 카반디 박사. 우주비행사 출신으로 여성들을 위해 우주의 길 닦은 그는 지난 9월30일 NASA에서 은퇴했다.
카반디 박사가 지난 1998년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를 타고 우주정거장 미르로 비행하기 전 준비를 하는 모습.           <KSC/NASA>
카반디 박사가 지난 1998년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를 타고 우주정거장 미르로 비행하기 전 준비를 하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