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Turkey)와 그리스(Greece). 두 나라는 따로 가지 말고 한번에 여행하는 것이 좋다.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는데다가, 역사적으로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번성하던 시절, 그리스는 무려 4백년간 터키의 지배를 받다가 1822년에 이르러서야 가까스로 독립을 이뤄냈다. 유네스코가 선정한 최초의 세계문화유산인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에도 두 나라의 역사가 얽혀 있다.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아테네는 전쟁으로 파괴된 아크로폴리스를 재건하면서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 여신을 위해 파르테논 신전을 세웠다. 당대 최고의 명사들이 설계와 조각, 자문을 맡아 15년간 건축해 완성한 이 신전은 그리스 황금기의 문화와 자신감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걸작이다.

그런데 1687년, 최악의 사건이 발생했다. 베네치아(베니스)와 전쟁중이던 오스만 제국군(현 터키의 전신)은 파르테논 신전을 화약고로 아크로폴리스에 주둔하고 있었다. 베네치아 군대가 아크로폴리스를 포위한 상황에서(공격이었는지 사고였는지 말들이 많지만) 파르테논 신전에 쌓여있던 화약이 폭발하며 지붕이 완전히 박살나버렸다. 게다가 당시 부서진 신전의 조각상 중 90%가 영국으로 반출돼 지금은 대영박물관에 전시돼 있으니 그리스로서는 뼈아픈 과거가 아닐 수 없다.

또한 터키만큼 살아 있는 이야깃거리가 많은 나라도 또 없다. 인류 최초로 철기 문명을 건설한 히타이트인, 아폴로상을 페르시아에 팔아 알렉산더 대왕의 분노를 샀던 이오니아인,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왕이자 이집트 왕국의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 예수의 복음을 전파한 사도 요한과 바울 등 전설에서부터 성경에 이르기까지… 아브라함이 태어난 터키는 성경에서 구약이 시작되는 무대로도 유명하다. 세계적인 기독교 성지이지만, 현재 국민 98%가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 국가다. 1천1백여년간 기독교 문화를 지켜온 비잔티움 제국의 중심이었다가, 이후 6백여년간 이슬람 문명을 대표하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중심지로 판도가 바뀐 탓이다.

이같은 연유로 터키는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독특한 역사와 문명의 자취를 보유한 나라가 됐다. 이른바 ‘세계 문명의 용광로’이자 ‘세계 최대의 야외 박물관’이란 별명이 붙은 배경이며, 필자가 “터키를 만나면 세상의 절반이 보인다” “유럽여행은 터키부터”를 외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터키를 만나면 세상의 절반이 보인다

터키라는 나라가 참 묘한 것이 가면 갈수록, 알면 알수록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도 그럴것이 터키와 고구려 사이에는 상당한 연관이 있을거라 추정된다. 고구려 멸망 후 유민들이 서쪽으로 이동한 흔적이 남아 있으며, 터키인들은 우리를 ‘형제’라 부른다. 에베소서에 있는 사도요한의 무덤터에는 ‘St. John’s mezari’(한국말 ‘뫼자리’)라고 씌어 있다. 6·25사변 당시에는 터키의 현역장군이 형제의 나라를 구하고자 전역 후 지원병을 모아 용맹하게 싸웠다. 고아원 운영에도 열심으로 동참해 아직도 그 후손들은 한국전 참전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한류 또한 널리 알려져 있다. 최신 유행하는 한국 노래나 드라마, 배우들을 필자보다 터키 현지인들이 더 잘 알고 있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다시 여행 이야기로 돌아와 터키 여행의 핵심이 되는 이스탄불(Istanbul)은 터키 그 자체를 상징하는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스만투르크의 황제들이 머물렀으며 이슬람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톱카프 궁전’, 세계 최고·최대 규모이자 비잔틴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인 ‘아야소피아 박물관’, 오스만투르크 고전기 건축의 진수라고 평가받는 ‘블루 모스크’, 로마시대 전차 경기장으로 사용되었던 ‘히포드롬 광장’, 4천5백개 상점이 자리한 실크로드의 종착지 ‘그랜드 바자르’, 336개 기둥이 받치고 있는 ‘지하 저수지’ 등은 터키의 옛 영화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이어 찾을 카파도키아(Cappadocia)는 정말 특별하고 아름다운 여행지다. 약 300만년 전 화산폭발과 대규모 지진활동으로 잿빛 응회암이 뒤덮고 있으며, 그 후 오랜 풍화작용을 거쳐 죽순, 버섯 모양의 기암들이 줄지어 서 있다. 또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시대 종교 탄압을 피해 바위 동굴 속에 몸을 숨기고 신앙생활을 했던 곳이 바로 카파도키아다.

괴뢰메 야외 박물관은 보는 것 만으로 충격 그 자체! 마치 브라이스캐년, 자이언캐년, 모뉴먼트밸리를 적절히 합쳐놓은 인상이다. 대자연뿐 아니라 9세기부터 13세기 초까지 그리스도인들이 건설한 교회의 흔적도 엿볼 수 있다. 파샤바 계곡에서는 영화 ‘스타워즈’와 애니메이션 ‘스머프’에서 보았던 익숙한 모양의 버섯 모양 기암괴석들을 마주하게 된다. 에르지에스 화산 폭발로 형성된 계곡은 이후 화산재 위에 용암이 쌓이고 침식과 풍화작용이 반복되면서 더욱 독특한 형태를 띄게 되었다. 4세기부터 박해를 피해 온 수도자들이 모여 살던 이곳에서는 성 시메온이 15m 원뿔 모양 돌 위에서 수련했던 공간도 볼 수 있다. 또 카파도키아에서는 형형색색 열기구를 타고 상공을 날면서 아래에 펼쳐지는 기암괴석, 계곡, 동굴, 분화구의 장관을 볼 수 있고, 현재까지 발견된 37개의 지하 도시 중 가장 유명한 데린쿠유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다음 목적지는 지중해에 면한 신들의 휴양지 안탈야(Antalya)를 거쳐 파묵칼레(Pamukkale)다. 도시 전체가 눈에 뒤덮인듯 새하얀 파묵칼레는 석회층은 세계자연유산, 유적들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하얀 석회암 지대에 하늘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온천의 색이 대비돼 어딘가 몽환적인 분위기! 과거에는 산등성이부터 온천물이 흘러 넘쳐 어디서나 온천을 즐겼지만, 급격한 호텔 개발로 온천물이 말라 석회풀에 몸을 담그는 호사는 누릴 수 없다. 그래도 클레오파트라와 로마 황제들이 다녀갔던 파묵칼레 이곳저곳에 맨발로 발자국을 남기고, 온천물에 발을 담그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파묵칼레에서 3시간 정도를 남서쪽으로 달리면 고대도시 에페소(Ephesus)다. 1만 년에 걸쳐 20여개의 문명이 탄생한 화려한 역사의 현장은 아직도 영광의 과거를 간직한 채 그 위엄을 자랑한다. 2만5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 화려한 건축미를 자랑하는 셀수스 도서관, 여신 테티스와 메두사의 부조가 새겨진 하드리아누스 신전 등 로마시대 유적은 찬란한 인류의 유산을 두 눈으로 마주할 수 있다. 유적을 벗 삼아 잠시 이 도시에 머무는 것 만으로 찬란한 인류의 신비를 깨우치는 기분이다.

●살아있는 고대 국가 전시장, 그리스

국경을 넘어 그리스어로 ‘공중에 떠 있다’는 뜻의 메테오라(Meteora)를 찾는다. 피니오스강 상류에 기둥 모양으로 우뚝 솟은 기암들이 줄지어 있는데 그 정상에 수도원이 아슬아슬하게 자리잡고 있다. 눈앞에 펼쳐진 이 불가사의한 광경에 감탄하지 않을 사람은 단연코, 아무도 없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장관이지만 정작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곳은 수도원 내부다. 작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교회, 휴게실, 기도실 그리고 정원까지 아기자기하게 갖추고 있다. 특히 평생을 암벽 위에서 선과 악, 회개와 기도를 거쳐 영원한 기쁨과 도덕적 자유를 얻고자 했던 수도사들의 유골이 보관된 방이 눈길을 끈다. 유네스코는 이곳의 기묘한 자연경관과 경이로운 종교 건축물의 가치를 인정해 1888년 세계복합유산으로 등재했고 영화 007 시리즈 ‘포 유어 아이스 온리’(1981년작)에 수도원이 등장하면서 메테오라는 더욱 유명세를 탔다.

수도인 아테네(Athenae)는 에게해의 섬들로 향하는 기점이자, 그리스 문명의 완성작이라 할 수 있다. 세계문화유산인 아테네의 유적들은 신화를 간직한 채 아크로폴리스 일대에 흩어져 있다. 아테네에서의 경험은 신기하기 그지없다. 고개를 들면 고대 그리스의 흔적인 아크로폴리스가 눈에 들어오고 도로 위 버스는 대수롭지 않은 풍경이라는 듯 제우스 신전 옆을 스쳐간다. 아테네에서의 하루는 과거와 현대가 복잡하게 뒤엉켜 도무지 예측이 불가능한 미지의 시간이 아니겠는가….

고대 아네테를 수호하던 가장 강력한 존재이자 시민들이 사모했던 신은 지혜의 여신 아테나(Athena)였다. 아크로폴리스에서 가장 빛나며 위대한 유산으로 칭송받는 파르테논은 아테나 여신을 기리는 신전이다. 도리아식 건축양식의 진수를 볼 수 있는 걸작으로 푸른 하늘을 지붕 삼아 46개의 기둥이 떠받드는 모양새인 파르테논은 세계문화유산 1호이자, 유네스코의 엠블럼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언뜻 보기엔 직선과 평면으로 이루어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곡선과 곡면으로 구성, 착시 효과까지 계산해 기둥의 간격을 곧고 균일하게 보이도록 만들어졌다.

신전 내부의 신상들은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파손된 채 보존돼 있다. 비너스상은 파리, 얼굴을 쳐다보기만 하면 뱀으로 변해버린다는 메두사신상은 이스탄불 저수지, 나이키신상은 터키의 에베소스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그리스의 후손들은 문화재를 지키지 못했다. 나라가, 민족이 힘이 없으면 과거의 흔적이 함께 사라지는 것이 역사적 현실이다. 정복자들이 종교부터 말살함으로써 그들의 문화를 지우고 지배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중국과 일본이 역사를 수정하고 왜곡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그래도 아테네는, 메테오라는, 파르테논 신전은, 아크로폴리스는 그리스에 남아있다

다음 여행지는 고린도(Korinthos)다. 성경에도 나오는 그 유명한 고대 도시 고린도! 고린도에서는 세계 3대 운하 중 하나인 고린도 운하가 압권이다. 이오니아해와 에게해 사이에 놓인 육지를 두동강 내어 깎아지를듯 파인 절벽 밑으로 눈부신 비취빛 바닷물이 흐른다. 운하에서 8㎞ 떨어진 고린도에는 고대 도시 유적과 박물관, 아폴론 신전 등이 있다. 기원전 6세기에 세워져 몇 차례 지진이 발생, 유적의 상당수는 폐허가 되었지만 과거 로마의 흔적이 남아있다.



b22-硫뷀뀒_ㅻ씪.jpg

절벽 위의 수도원 메테오라. 자연과 인간이 빚어낸 신비로운 풍광이다.



b22-_뚮Ⅴ_뚮끉.jpg

아테나 여신에게 바쳐진 파르테논 신전은 그리스의 위대한 유산이다(세계문화유산 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