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주범 가공식품 대신 집에서 요리’연구

“시간·돈 제약받는 가정에는 비현실적”결론


많은 영양 학자들은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는 비만 문제의 원인으로 가공식품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집에서 요리한 음식을 섭취하면 비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최근 몇몇 전문가들이 이 같은 기존 주장이 중산층과 빈곤층 가정이 직면한 현실을 간과한 주장이라며 반박하는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가공식품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은 여전히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지난달에만 염분, 당분, 지방, 화학 첨가제 성분이 높은 가공식품이 비만과 만성 질환 위험을 높이는 원인임을 증명한 신규 연구 결과들이 다수 발표됐을 정도다.


국립보건원(NIH) 측은 냉동식품, 다이어트 음료, 과일 주스, 페이스트리, 구운 감자칩, 캔 푸드, 가공육과 같은 ‘고도 가공식품’(Ultra Processed Food)을 통한 칼로리 섭취량이 늘고 있으며 이에 따른 급격한 체중 증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의학저널 BMJ에도 고도 가공식품 섭취량이 높은 사람의 심혈관계 질환 위험과 사망률이 높다는 대규모 연구 결과 2건이 소개됐다.

가공식품 섭취에 따른 위험을 지적하는 연구 결과가 잇달아 발표되자 NHI의 프란시스 콜린스 박사 등 건강 전문가들은 미국인들의 고도 가공식품 섭취를 제한해야 한다고 즉각 권장했다. 하지만 가공식품 섭취를 당장 줄이는 일은 전문가들의 권장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고도 가공식품은 미국인 섭취 칼로리의 약 60%를 차지할 정도로 주요 식품 재료가 되었다. 사회 경제적 계층 구분 없이 미국인들의 고도 가공식품 섭취량은 이미 증가 추세로 자리 잡았다. 연구에 따르면 특히 빈곤층에서의 고도 가공식품 섭취량이 가장 높다. 빈곤층 가정의 경우 가공식품이 저렴하고 간편하다는 이유로, 그리고 때로는 다른 식품을 선택할 경제적 능력이 없어서 가공식품에 의존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최근 발간된 서적 ‘압력솥(불안감이 커지는 상황을 의미하기도 함): 집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Pressure Cooker: Why Home Cooking Won‘t Solve Our Problems and What Can We Do About it?)’에서 빈곤과 가공식품 섭취와의 상관관계를 다뤘다. 저자는 음식, 가정, 불평등을 연구한 새라 보웬, 조슬린 브렌트, 시니카 엘리옷 등 3명의 사회 학자로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중산층과 빈곤층 168 가구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는 성인 3명 중 1명이 비만, 10명 중 1명이 당뇨병 환자로 만성 성인병 질환 환자 비율이 높은 주다. 저자는 약 5년 동안 수백 시간에 달하는 시간을 투입해 이들 가구의 쇼핑 형태, 음식 준비 형태, 삶의 방식 등을 심층 관찰했다.

이번 연구는 가공식품을 피하고 집에서 요리한 음식을 섭취하면 비만 문제를 해결하고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는 기존 연구 결과를 반박하는 데서 시작됐다. 보웬 박사와 동료 저자들은 일부 가구에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시간과 돈에 제약을 받는 가구에게는 비현실적인 해결 방안이라고 반박했다. 미국인 중 약 48%는 일주일 중 약 6~7일 집에서 저녁을 요리하고, 약 44%는 적어도 2~5일 저녁을 요리한다는 설문 조사 결과를 저자들은 제시했다. 저자들은 또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려고 해도 많은 가구들이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설명했다. 조사에서 건강한 식품 구입이 힘든 이른바 ’식품 사막‘(Food Desert)에 거주하는 가구는 버스를 타고 몇 시간씩 가야 식료품점에 갈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친구나 친척에게 운전을 부탁해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일부 빈곤층은 매달 말 돈이 떨어져 그나마 남은 음식으로 연명해야 하는 실정이고 일부 가구는 요리에 필요한 기본 주방 기구조차 갖추지 못한 것으로 연구를 통해 드러났다. 결국 보관 기간은 길지만 염분, 당분, 기타 첨가제 성분이 높은 시리얼, 파스타, 크래커, 포장 스낵, 통조림 음식과 같은 가공식품이 유일한 식품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 계층 가구들이 안고 있는 여러 어려움들 때문에 비싸고 쉽게 상하는 식품 대신 보관 기간이 길고 쉽게 준비할 수 있는 식품을 선택하게 된다고 저자들은 밝혔다. 보웬 박사는 “연구에서 드러난 많은 가구들처럼 소득이 낮아 매달 식품 부족을 겪는 가구에게는 라면이나 핫도그, 포장 마카로니 앤 치즈와 같은 값싼 식품이 유일한 구입 대상”이라며 “‘소득이 늘면 어떤 식품을 구입을 하고 싶나’라는 질문에 거의 대부분 ‘아이들을 위한 신선한 과일’이라고 말했다”라고 연구 결과를 설명했다.

연방 정부 자료에 따르면 약 1,500만에 달하는 미국 가구가 식품 필요량을 채우지 못하는 ’식품 불안정‘(Food Insecurity)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에 소개된 한 가정의 경우 어머니와 어린 두 자녀, 그리고 할머니로 최근 거주지에서 퇴거 당한 뒤 허름한 호텔에서 수박하게 됐다. 어머니가 일을 찾으러 나간 사이 할머니가 어린 두 자녀를 돌보는데 이들이 식료품을 구하는 유일한 수단은 푸드 스탬프, 메디케이드, W.I.C.(Women, Infants and Children program)이다. 주방은커녕 저녁 식탁도 없는 이들은 침대를 식탁 삼아 마이크로웨이브로만 요리할 수 있는 냉동 피자와 같은 가공식품으로만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집에서 요리를 할 만큼 시간이 충분한 가구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노동인구 6명 중 1명은 불규칙한 근무 일정을 지니고 있는데 비단 빈곤층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 경제적 계층을 불문한 맞벌이 부부 가구의 경우 퇴근 후 과로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갖고 싶어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회사에서 늦은 시간에 돌아온 이들에게 집에 요리를 한다는 것은 제약된 시간 상 거의 불가능한 일로 대신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택하게 된다.

엘리옷 박사는 “사회 각 계층의 가구들은 이미 나름대로의 많은 시간을 할애해 요리를 한다”라며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시간의 제약을 느끼고 요리를 하는 것이 힘들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한 쉬운 해결책은 물론 찾기 쉽지 않다. 그러나 저자들은 ‘포괄적인 자녀 양육비 지원 프로그램’(Universal Child Care), 부모 대상 유급 휴가, 최저 임금 인상, 유급 병가 등의 정책 시행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고용주의 경우 직원들이 자녀를 픽업해 집에 가서 요리를 할 수 있도록 정시 퇴근 제도 등의 도입을 고려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정부 차원에서 무료 학교 급식 프로그램 등을 도입, 아동들이 필요한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도록 돕는 방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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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 가공식품으로 준비한 음식 사진. 지난 6월 이 사진을 공개한 국립보건원은 가공식품 위주의 식단으로 하루 평균 500 칼로리를 추가 섭취하게 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