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선 금욕·절제만 가르쳐

TV·영화 왜곡된 이미지 전파

고교생“포르노로 섹스 배워”


안전한 섹스·상대 동의 필요

사춘기 성교육 지침서 발간

 “현실 맞는 교육법 제정”확산



“성 문제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 수 없을 바에야 아예 성교육 자체를 시키지 않았으면 해요.”

콜로라도 주의 공립학교에서 안전한 섹스, 상호 동의와 성적 취향 등에 관한 교육을 의무화할 것을 요구하는 법안을 상정하며 수잔 론타인 주 의원이 던진 말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성교육은 사춘기를 통과 중인 청소년들의 혼란만 가중시킨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수잔 살람이 15세였을 당시 막연히 알고 있었던 사춘기에 대한 지식은 TV와 영화에서 얻어들은 1차원적 이야기가 거의 전부였다.  

당시 그녀는 사춘기 소년들이 손에 든 책으로 자신의 하복부를 가리고 다니는 이유가 무언지(이런 모습은 늘 소녀들 사이에 웃음바다를 만들곤 했다), 여자아이의 볼록해진 앞가슴에 쏠리는 소년들과 아재들의 음흉한 눈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녀의 동료 칼럼니스트인 아만다 헤스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TV 쇼 프로그램 “PEN15”와 “수다쟁이”(Big Mouth), 역시 같은 연령층을 겨냥한 영화 “8학년”(Eighth Grade)을 예로 들며 “대략 1년 전부터 TV의 청소년 프로그램들과 틴에이저용 영화들은 사춘기 소녀들을 성에 집착하는, 다소 복잡하고 어색한 존재로 그리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특성은 보통 사춘기 소년들에게 국한된 것으로 묘사됐다.)

뉴욕타임스 문화 비평가인 헤스는 “TV와 영화에서 욕정에 가득 찬 사춘기 소녀상이 집중적으로 부각되고 있다”며 “사춘기가 여성의 절정기는 결코 아니지만 그들 역시 성에 대해 많은 느낌을 갖고 있고, 그 같은 감정 역시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미국 학교의 성교육에는 여성의 성(sexuality)에 대한 미묘한 뉘앙스와 그에 대한 솔직한 인정이 빠져있다. 전반적으로 성교육 자체가 결여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한 마디로 미국의 성교육은 공백 상태다.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과반수는 성교육을 의무화하지 않았고, 단 13개 주만이 의학적으로 정확한 정보를 담은 교재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아직도 금욕이 대다수 성교육 프로그램의 주축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금욕과 절제는 상대방의 동의, 성적 취향과 성 정체성 등과 같은 복잡한 이슈에 대해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7개 주의 교육자들은 동성관계를 긍정적으로 다루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이와 동시에 포르노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온라인 포르노가 성교육의 공백을 채우면서 미국 청소년들을 위한 실질적인 성교육 지도교사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얘기다. 

매기 존스는 지난해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쓴 글에서 본인이 고교생들을 상대로 직접 실시한 성교육 관련 서베이 결과를 인용했다. 

서베이에 응한 고교생들은 친구나 형제자매, 학교 혹은 부모보다 포르노를 통해 성에 관한 훨씬 많은 정보를 얻는다고 대답했다.  

한 소년은 존스에게 “섹스에 관해 달리 배울 곳이 없다. 포르노 스타들은 그들이 하는 일이 무언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 같다”고 말했다. 포르노를 통해 섹스를 학습한다는 고백이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성교육의 지평을 넓히려는 새로운 노력도 가속화되고 있다.  

한 예가 스타트 스트롱(Start Strong)이라는 프로그램이다. 보스턴에 본부를 둔 스타트 스트롱은 10대 청소년들을 위한 피어-리더십(peer-leadership) 프로그램으로 보스턴시 공중보건국의 재정후원을 받고 있으며 최근에는 여기에 ‘포르노그래피에 관한 진실’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포르노 바로보기 프로그램이 추가됐다. 

콜로라도 주에서는 학생들의 지지를 받는 포괄적인 성교육법안이 주 의회에서 입법화 과정을 밟고 있다. 

이 법안은 금욕만을 강조하는 성교육을 금지하는 대신 안전한 섹스, 동의와 성적 취향에 관해 가르칠 것을 요구한다.  

법안이 통과되면 콜로라도 주는 성 관계에 앞서 상대방의 동의를 구할 것을 가르치는 전국 9번째 주가 된다. 

그리고 바로 오늘, 어린이들을 위한 성 인지적(gender-sensitive)이고 젠더 포괄적인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비영리기구 젠더 스펙트럼(Gender Spectrum)에 의해 최초의 포괄적인 사춘기 성교육 지침서가 발간됐다. 

이 지침서에 담긴 원칙들은 교사들에게 기존 교재에 끼워 넣어 활용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특히 개인의 몸과 정체성, 그리고 표현 사이의 상호관계로서의 성이 지니는 복합성을 강조한다. 

젠더 스펙트럼에 따르면 새로 발간한 지침서의 핵심은 “사춘기를 통과하는 학생들에게 수치스런 낙인을 찍거나 그들을 투명 인간 취급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난주 수 십 년 만에 처음으로 성교육 교과과정에 대대적인 손질을 가한 영국 정부가 이 일에 앞장을 설 것으로 보인다. 

2020년부터 영국은 성교육을 통해 동성애 관계, 트랜스젠더, 월경, 성폭행, 강제결혼, 포르노그래피와 섹스팅과 같은 토픽을 두루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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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Ana Galvan/뉴욕타임스>